칠족령, 큰 산에 있는 고개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92)

by 이무완

겨울에는 불광동이/ 여름에는 냉천동이 생각나듯/ 무릉도원은 도화동에 있을 것 같고/ 문경에 가면 괜히 기쁜 소식이 기다릴 듯하지/ 추풍령은 항시 서릿발과 낙엽의 늦가을일 것만 같아// 춘천이 그렇지/ 까닭도 연고도 없이 가고 싶지 (……)


유안진이 쓴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라는 시 앞 부분이다. 시인처럼 땅이름을 보면 그곳이 어떤 곳인지 말밑이 자못 궁금하고 그립다. 그런 이름 가운데 하나가 ‘칠족령’이다. 칠족령은 평창군 미탄면 문희리와 정선군 신동읍 덕천리 제장마을(위 사진에서 보이는 강마을) 살피에 있다. 먼 옛날부터 두 마을 사이를 이어주던 고개다.

여기저기 땅이름 유래를 찾다가 정선교육지원청에서 낸 초등학교 사회과 도움책이라고 할 ≪정선을 담다≫(2024, 85쪽)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었다.


칠족령은 덕천리 소골과 제장마을을 둘러싼 웅장한 병풍과도 같다. 옛날 제장마을에서 옻을 끓이던 이 진사집 개가 발바닥에 옻을 묻힌 채 고갯마루를 올라가며 발자국을 남겼다고 해서 ‘옻 칠(漆)’ 자와 ‘발 족(足)’ 자를 써서 ‘칠족령이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칠족령 능선 위로는 평창군 미탄면 양지 뉘룬마을과 덕천리 제장마을로 넘어가는 길이 나 있다. 백운산 정상에서 칠족령 능선을 타고 가다 보면 소골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세가 험한 만큼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아서 곳곳에 동식물의 자연 생태계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다시 말해, 제장마을 사는 이 진사네 개가 보이지 않아 찾는데, 옻 진을 담은 항아리에 들어갔다 나왔는지 옻 진이 묻은 발자국을 찍으며 올라간 고개라고 해서 ‘칠족령’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이야기 틀을 띠었지만 한자 풀이일 뿐이다. 내 보기에 칠족령은 ‘개’나 ‘옻’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설령 옻으로 칠갑한 개가 고개에 실제로 올라간 일이 있다고 한들 그 일로 고개 이름을 짓진 않았으리라.

칠족령 (조선지형도, 1917)

칠(漆) 자는 ‘옻’ 말고도 ‘옻칠하다’, ‘검다’는 뜻도 있다. 땅이름에서는 ‘검다’의 말줄기인 ‘검-’을 받아적은 글자가 칠(漆)일 뿐이다. 족(足) 자는 ‘발’로 새기는데, 산을 가리키는 ‘불’, ‘부리’를 적은 한자로도 곧잘 쓴다. 바꿔 말하면 ‘칠족령’은 아래아로 쓴 ‘’ 붙이 땅이름이다. ‘’은 ‘감, 곰, 검, 금, 굼’ 따위로 나타난다. 더욱이 '검다'는 말줄기인 '검-'을 한자로 바뀌면서 칠(漆), 흑(黑), 묵(黙, 墨), 현(玄), 검(黔) 같은 여러 가지로 나타나는 까닭에 말밑을 짐작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칠족령(530m)은 애초 큰 산에 있는 고개란 뜻으로 생겨난 이름이다. 높기로 치면 백운산(883.m)보다 낮은데 무슨 말이냐 하겠지만, 제장마을 뒤쪽으로 우뚝한 큰 산 고개다. 모르긴 해도 ‘높다, 크다’는 뜻으로 쓴 ‘’과 산을 뜻하는 ‘’을 붙여 ‘++재→ 검재→ 검발재’를 거쳐 ‘칠족령’으로 되었으리라.


※ 위 사진은 칠족령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제장마을 풍경이다. 마을 앞으로 동강이 굽이져 흐르고 강 건너편엔 깎아지른 듯한 뼝대가 있다. 뼝대 뒤로는 고성산(425m)이다. 고성산 꼭대기엔 산성이 있는데 점판암으로 고구려 때 쌓은 성이라고 보며, 강원특별자치도기념물이다.


배달말 한입 더

옻칠(옻漆) [1]옻나무에서 나는 진. 처음 나올 때는 회색이지만 물기를 없애면 검붉은 색으로 변한다. 물건에 칠하는 원료나 약재로 쓴다.=옻. [2] 가구나 나무 그릇 따위에 윤을 내기 위하여 옻을 바르는 일.

옻오르다 살갗에 옻의 독기가 생기다. 옻이 올라서 살갗이 붉어지고 부풀어올라 물집이 생기고 터져 진물이 나며 가려움증을 일으키는 피부병을 옻병이라고 한다.

칠장(漆匠) 조선 시대에, 옻칠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장인.

칠하다(漆하다) 가구나 나무 그릇 따위에 윤을 낼 요량으로 옻을 바르다.=옻칠하다.

칠기(漆器) 옻칠을 한 나무 그릇.=옻그

나전칠기 광채가 나는 자개 조각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박아 넣거나 붙인 칠기.

칠갑하다 물건 겉에 다른 물질을 흠뻑 칠하여 바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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