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25)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알뜨르’라는 곳이 있다. ‘아래(알)에 있는 넓은 들판’이라는 뜻으로, 제주에서는 ‘들’을 ‘뜨르’라고 한다. 이 말을 정선에서는 ‘들’을 ‘뜰’, ‘뜰우’, ‘뜨루’, ‘두루’, ‘드루’라고 했다. ≪훈몽자회≫(1527)에 “郊 드르 교, 甸 드르 뎐, 坪 드르 평”이라 적은 데서 보듯, ‘들’은 예부터 ‘드르’라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지지자료≫(1911) ‘정선’ 편에서 ‘평(坪)’이 붙은 땅이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柯坪(가평) 가두루 ― 북면 장열리
北坪(북평) 뒷뜨루 ― 북면
細坪(세평) 간는드루 ― 북면 어라전
長坪(장평) 진두루 ― 북면 어라전
上坪(상평) 웃뜰우 ― 서면
月坪(월평) 다래뜰 ― 서면 벽탄리
(※ 뜨나 뜰처럼 초록색으로 쓴 글자는 ≪조선지지자료≫에서는 ‘ㄸ’을 ‘ㅅㄷ’으로 썼다.)
‘가두루’는 장열마을 북쪽, 조양강 철교를 건너 철길과 국도를 사이에 두고 밭이 길게 이어진 곳이다. ‘가두루’는 ‘가+두루’의 짜임으로, ≪정선 북평면 지명유래≫(북평면, 2007, 76쪽)에는 이를 ‘가드루’라고 나온다. 이 책엔 ‘갈나무가 많아 붙은 이름’이라는 설을 들면서도, 물굽이가 많은 산지에서 굽이치는 조양강 물길 아래쪽에 모래와 흙이 쌓이면서 땅이 넓어졌기에 생긴 이름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옛말에서는 가장자리를 ‘갓(아래아(•)와 반치음(▵)을 썼다)이라 했고, 오늘날 물가, 냇가, 바닷가, 길가 같은 말에 흔적이 남았다. ‘갓’은 ‘가사’, ‘가재’, ‘가자’ 따위로 소리바꿈하여 여러 땅이름에 나타나는데 당장에 ‘가장자리’도 ‘갓자리’에서 말미암은 말이다. 동해·삼척 지역말에서는 ‘가상사리, 가생이, 가새이’로 나타난다. 결국 ‘가드루(가두루)’는 조양강 가장자리에 흙과 모래가 쌓여 생겨난 평평한 땅을 가리킨다.
‘뒷뜨루’는 정선읍에서 볼 때 북쪽에 있는 들판이기 때문이다. 한자로 ‘북평(北坪)’이라고 적었다. 한자 ‘북(北)’은 방위를 가리키는 말이면서 동시에 ‘뒤’라는 뜻도 있다. 우리 조상들은 집터나 묘터를 정할 때 산줄기 흐름을 먼저 살폈다. 산을 등지고 물을 마주한 자리를 좋은 터로 여겼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앞은 남쪽, 뒤는 북쪽이 되었고, 북쪽과 뒤쪽은 서로 뜻이 통했다. 북풍을 뜻하는 ‘뒷바람’나 ‘뒤울이’, 어느 지방을 기준으로 해서 북쪽에 있는 지방을 ‘뒤대’라고 했는데, 이들 말도 이러한 생각에서 생겨난 말이다.
‘가느드루’는 ‘가는드루’라고도 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간는드루”로 적어 놨다. 가느두르는 정선군 북평면 나전리에 있는데, ≪정선 북평면 지명유래≫(2007, 161쪽)는 마을 터의 폭이 가늘고 좁다고 해서 가늘다의 ‘가느’와 들을 뜻하는 ‘드루’를 붙여 만든 이름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한자식 이름은 ‘세평(細坪)’이라 했다.
‘진드루’는 ‘진+드루’인데, 이때 ‘진’은 길다의 매김꼴인 ‘긴’의 소리바꿈이다. 지역말에서 ‘기름, 기와, 겨드랑이’가 ‘지름, 지와, 져드랑이’로 소리가 바뀌는 현상은 매우 흔하다. 따라서 ‘진드루’는 표준어로 하면 ‘긴들’이다. 이를 한자로 옮기며 ‘장평(長坪)’이라 적었다. 진드루 동쪽 오대천 건너편엔 ‘졸드루’가 있다. 작고 좁다는 뜻으로 ‘졸’을 붙여 ‘졸두루’라고 했고, 한자로는 ‘졸평(卒坪)’이라고 했다.
잣드루는 정선읍 덕우리에 있다. 진등 너머 여탄리와 살피에 있는 마을로 한자 이름은 ‘백평(柏坪)’이다. 오래 전 잣나무가 많던 동네라서 생겼다는 유래가 떠도는데, 이때 산의 옛말인 ‘잣’이다. ‘잣드루’는 산 아래에 펼쳐진 들인 셈이다. ‘상평(上坪)’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데, ≪조선지지자료≫에는 정선 서면에 이를 ‘웃뜰우’로 적어, ‘윗쪽에 있는 들’이라는 뜻을 분명히 한다.
정선읍 벽탄리 ‘월평(月坪)’은 ‘다래뜰’이라고 했다. 높은 데를 뜻하는 ‘달’과 ‘뜰’을 매김토씨 ‘의’를 붙여 만든 땅이름이다. ‘달의뜰’이 ‘다래뜰’이 된 셈인데 높은 데 있는 들로 ‘웃뜰우’와 의미가 같다.
이처럼 ‘가두루·뒷뜨루·가느드루·진드루·졸드루’ 같은 땅이름은 모두 ‘들’을 뜻하는 옛말 ‘드르’에서 나온 땅이름이다. 여기에 가장자리, 위아래, 넓고 좁음, 길고 짧음 같은 특징을 보태 땅이름이 생겨났고, 다시 평(坪), 장(長), 세(細), 상(上), 북(北) 같은 한자로 뒤쳐 한자식 땅이름이 나타났다. 곧 땅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틀에는 언제나 배달말이 있었다.산이 높으니 골이 깊고 논이고 밭이고 적을 수밖에 없다. 콩 심고 수수 심고 감자 놓을, 손바닥만한 밭이라도 있으면 눈물겹게 고마운 곳이다. 자연히 구석구석 살아온 흔적이 밴 땅이니 이름이 없을 수 없다.
갈나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갈나무’를 찾으면 ‘=떡갈나무’로 나오는데, 정말 그럴까 싶다. ≪삼국유사≫에 ‘加乙木(가을목)’이란 말이 보여 오래전부터 써온 말로 보지만 ‘갈’이 무엇을 뜻하는지 흐리터분하다. 그래서 넓은잎나무에서 떨어진 잎을 뜻하는 ‘가랑잎’이나 ‘갈잎’과 뜻이 닿아 있다고 보기도 하고, ‘대신하여 바꾼다’는 뜻으로 쓰는 ‘갈다’로 보아 가랑잎이나 갈잎이 마른잎으로 바뀜을 뜻한다고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