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24)
정선군 북평면 북평리에 가면 ‘도첨지맹건골’라는 재미난 골짜기 이름이 있다. ≪정선 북평면 지명유래≫(북평면, 2007, 102쪽)을 보면 땅이름 유래를 이렇게 말해 놓았다.
옛날 도(都) 씨 성의 첨지가 나물과 약초를 캐기 위해 산에 들었다가 호랑이에게 잡혀먹히고 호랑이가 첨지가 썼던 망건만 골짜기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도첨지’는 성이 도씨인 첨지를 말한다. 첨지는 본디 ‘첨지중추부사’라고 해서 조선 시대 정3품에 이르는 무관 벼슬아치를 말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이 들어 할 일이 없는 남자를 낮잡는 말이 되었다. 뒤따르는 ‘맹건’은 망건을 가리키는 지역말이다. 상투 튼 어른이 머리카락을 걷어 올려서 흘러내리지 않도록 말총이나 곱소리, 머리카락으로 만들어 머리에 두르는 그물처럼 생긴 물건이다.
전하는 말대로라면 도첨지가 이 골짜기에 들었다가 범한테 잡아먹혔는데 첨지가 썼던 망건만 골짜기 어느 바위에 있었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범이 사람을 잡아먹거나 자주 나타나는 골이라고 한다면 ‘범골’이나 ‘범울이’, ‘범우리골’이라고 했을 테고, 도첨지가 호환을 당해 죽은 골짜기라면 ‘도첨지 죽은 골’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범이 도첨지가 썼던 망건만 남겨둔 바위라면 ‘도첨지바위’나 ‘맹건바위’, ‘도첨지맹건바위’라고 하면 몰라도 ‘도첨지맹건골’처럼 골 전체를 싸잡는 말이라니 고개를 삐끗 꼬게 한다. 백 걸음 물러나 ‘도첨지’가 죽고 ‘맹건’만 놓인 ‘바위’가 있는 골이라고 하면 ‘도첨지맹건바우골’이 되어야 했다.
내 보기에 ‘도첨지’도 ‘맹건’도 애당초 없는 말로 어금지금하게 소리나는 골짜기 이름에 뒷날 이야기가 덧칠해져 ‘도첨지맹건골’로 굳었을 수 있다. 이를테면 맨 돌 천지인데다 물도 흐르지 않는 마른 골짜기라서 ‘돌 천지 맨 건골’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도첨지맹건골’로 바뀌었을 수 있다. 망건을 ‘맹건’뿐만 아니라 ‘맹근, 망근’이라고도 했으니, ‘맹건-골’로 볼 수도 있다.
지역말에서 ‘맨(맹)’은 ‘온통, 모조리’라는 뜻이 있다. “맨 풀이고 맨 돌메이 천지다” 하고 말하거나 ‘맹물, 맹탕’에서 보듯, ‘맨(맹)’은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돌천지 맹 근골’은 돌 말고는 나물도 약초도 없는 골짜기라는 뜻이 된다.
남은 기록이 딱히 없으니 이런 해석도 걸상을 뒤로 빼고 나무늘보처럼 앉아 땅이름에 새롭게 덧칠하는 책상물림 말일 수 있다. 다만 별다른 근거는 없지만 별 시답지 않은 말들이 모이고 모여 오늘날 ‘도첨지맹건골’이란 땅이름을 빚어냈는지 모른다.
곱소리 코끼리의 꼬리털. 가늘고 부드러우며 망건, 탕건 따위를 만드는 데 쓴다.
말총 말의 갈기나 꼬리의 털. 갓을 만드는 데 쓴다.
망건 상투를 튼 사람이 머리카락을 걷어 올려 흘러내리지 아니하도록 머리에 두르는 그물처럼 생긴 물건. 보통 말총, 곱소리, 머리카락으로 만든다.
탕건 벼슬아치가 갓 아래 받쳐 쓰던 것. 말총을 잘게 세워서 앞쪽은 낮고 뒤쪽은 높게 턱이 지도록 뜬다. 집 안에서는 그대로 쓰고 밖에 나갈 때는 탕건을 쓰고 그 위에 갓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