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34)
누구라도 ‘도사곡’은 ‘도사골’에서 온 말이라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도사’를 어떻게 풀이하느냐에 따라 그 땅의 모습이 사뭇 달라진다는 데 있다.
도사(道士)는 무엇이냐? 도사는 바람을 다스리고, 마른 하늘에 비를 내리고, 땅을 접어 달리며, 날카로운 검을 바람처럼 휘둘러 천하를 가르고 그 검을 꽃처럼 다룰 줄 아는, 가련한 사람을 돕는 게 바로 도사의 일이다!
영화 <전우치>에서 도사로 나온 강동원이 하는 말처럼, 도사라고 하면 내남없이 도술을 부리는 도인이나 선인을 먼저 생각한다. 어쩌면 삿갓(송낙)을 눌러 쓰고 흰 수염을 늘어뜨린 채 도포를 입고 지팡이를 든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도 있다. 물론 어떤 일에 도가 튼 사람을 ‘○○도사’라고 비유하는 말로도 쓴다. 이런 생각 때문에 ‘도사골’이나 ‘도사곡’이라 하면, 그 골짜기에 어느 도사가 조그만 집(암자)를 짓고 도를 닦았다거나 도를 깨쳤다는 이야기가 옛이야기로 분칠해서 전해온다. 실제로 도사골이 자리한 곳을 보면 대개 깊은 골짜기여서 이러한 해석이 정말 그럴듯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땅이름이 생겨난 과정을 차분히 따져 보면, 이런 설명은 뒷사람들이 덧붙인 해석일 때가 많다. 무엇보다 땅이름은 그 땅에 엎드려 나물 뜯고 약초 캐며 살아온 평범한 백성들 입에서 먼저 생겨났을 것이다. ‘도사(道士)’라는 한자말은 배달말을 소리 나는 대로 받아 적을 문자가 없던 때에 어설프게 받아적기한 것일 수도 있고, 조선 조에 들어 바람소리, 학 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까지 소리 나는 대로 받아 쓸 <훈민정음>을 있었지만 쓰지 않았다. 그러다 식민지 조선을 샅샅 훑어갈 요량으로 일제가 벌인 토지조사사업 과정에서 엇듣고 잘못 옮겨 적은 탓에 이름이 뒤틀린다.
도사곡은 본래 도사골이다. ‘골’은 골짜기를 뜻하면서 동시에 마을을 가리키는 말이다. 골짜기 어귀에 마을이 자리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골’은 자연스럽게 마을 이름으로 쓰였다. 여기서 ‘도사’는 결론부터 앞질러 말하자면 도를 닦는 사람을 뜻하는 ‘도사’가 아니라, 산을 뜻하는 옛말 ‘돋’과 사이를 뜻하는 ‘샅(삿·새)’을 붙여 만든 말이다. 산과 산 사이에 있는 골이라고 해서 ‘돋샅골’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 ‘돋샅골 → 도삿골 → 도사골 → 도사곡’으로 바뀌어온 셈이다. <조선지형도>(1917)를 보더라도 도사곡은 해발 1000미터에 가까운 높은 산들이 맞닿은 깊은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다. ≪정선읍 지명유래≫(정선읍, 2012, 209쪽)의 설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웃구진베리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덕산기 마을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다. 옛날 덕산도사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수양하였다 하나 ‘도’는 ‘산’을 뜻하는 ‘돋’이 ‘도’로 변한 말이고, ‘사’는 ‘사이’를 뜻하는 말로 ‘도사골’은 산자락이 돌아가는 곳의 ‘산과 산 사이로 난 비교적 큰 골짜기’라는 뜻이다. 지금의 덕산기는 일제강점기 도사골과 동쪽의 덕산기로 이루어진 큰 마을이었다.
이쯤에서 에잇, ‘돋’이 산이 아닐 수 있지 않냐고 고개를 삐끗 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배달말은 본디 닫힌 소리에서 열린 소리로, 때로는 된소리로 바뀌어 왔다. ‘산’이나 ‘높다’는 뜻으로 쓰인 옛말 ‘달(達)’은 ‘돋(닫·돋)’을 뿌리로 한다. 된소리 ‘딷’은 ‘따’나 ‘땅’과도 이어지는데 땅 지(地) 자를 예전엔 ‘따 지’로 새겼다.
이러한 까닭으로 ‘돋’이 한자 ‘도(道)’로 적힌 땅이름도 적지 않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정선읍 회동리의 도룡골, 덕송리의 도투골, 남면 낙동리의 도장골이 그러하다. 이들 땅이름에서 ‘도’는 길이나 도술의 ‘도’가 아니라 산을 뜻하는 옛말 ‘돋’에서 말미암은 말로 보아야 땅 모양새와 말짜임이 어긋나지 않는다. 도룡골은 ‘돋+안+골’이 ‘돋안골→도단골→도란골→도롱골→도룡골’로 바뀐 것이고, 도투골은 ‘돋+으+골’이 ‘돋으골→도트골→도투골’로 소리바꿈이 일어났다. 도장골도 ‘돋+안+골’이 ‘돋안골→도단골→도잔골→도장골’로 둔갑한 보기라고 하겠다. 이를 뒷받침하듯 ≪조선지지자료≫를 보면, 골 이름, 마을 이름으로 ‘道士谷 도새골’(군내면 덕산기)로 적었다. 더욱이
이렇게 보면 도사곡은 도술을 부리는 도사가 살던 곳이어서 붙은 이름이 아니다. 산과 산 사이에 깊게 패인 골짜기나 그 골짜기에 자리한 마을을 가리킬 요량으로 산을 뜻하는 ‘돋’과 사이를 뜻하는 ‘샅’을 붙여 만든 ‘돋샅골’이 말밑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소리가 닳고, 한자로 옮겨 적는 과정에서 뜻이 좋아 보이는 ‘도사(道士)’가 끼어들었을 뿐이다. 도사곡은 땅 생김새를 살펴 땅이름을 짓던 옛사람들 말과 삶이 그대로 담겼다.
[일러두기] ‘돋’처럼 붉고 굵은 글씨는 아래아(·)를 홀소리로 쓴 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