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46)
가리왕산은 정선읍과 북평면, 평창군 진부면에 걸친 해발 1,561미터에 이르는 높은 산이다. 산림청은 가리왕산을 100대 명산 가운데 하나로 꼽으며, “경관이 수려하고 활엽수 극상림이 분포해 있으며 전국적인 산나물 자생지로 유명”하다는 점과 “산림유전자원보호림과 자연휴양림으로 지정될 만큼 경관·생태적 가치가 크다”는 점을 높이 쳤다. 그러면서 “그 모습이 큰 가리(벼나 나무를 쌓은 더미)같다”고 하여 가리왕산이 되었다고 이름 유래를 말한다.
하지만 ≪정선읍 지명유래≫(정선읍, 2012, 254~255쪽)는 아주 다르게 말한다. “옛날 맥국(貊國)의 갈왕(葛王)이 이곳에 피난하여 서심퇴(西深堆)라는 곳에 도읍을 정하고 성을 쌓고 머물렀다고 하여 ‘갈왕산’ 또는 ‘가리왕산’이라고 불렀다”고 하면서, “조선후기에 펴낸 <해동지도(海東地圖)> 등 옛 지도에 ‘가리왕산(加里王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가리왕산(加里旺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적었다. 그렇다면 두 설명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믿을 만할까.
이를 따져보려면 앞선 기록을 살펴보아야 한다. 18세기 중엽 ≪해동지도≫에는 ‘가리왕산(伽俚王山)’, 19세기 초 ≪광여도≫에는 ‘가리왕산(伽里王山)’, 1894년 ≪여지도≫에는 ‘가리왕산(加里王山)’으로 나온다. 그런데 ≪대동여지도≫(1861)에는 ‘가리왕산’이 아니라 ‘가리산(加里山)’으로 나온다. ‘가리산’ 옆에 ‘벽파령’이라는 고개 이름이 함께 적어 놓은 데서 보듯, 이때만 해도 그저 높은 산 정도로 본 듯 하다. 오히려 정선에서 한양으로 넘어가는 교통로로서 벽파령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도 ‘가리왕산’은 한번도 나오지 않다. ‘가리산’이 나오긴 하지만 홍천 가리산(1051m)이다. 중종 22년 5월 29일 기사에 임금이 기우제를 지내라고 하는데, 강원도에서는 간성 오음산, 홍천 가리산, 안협 제당연, 이렇게 세 곳을 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라에서 남달리 생각하던 산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하겠다.
산 이름을 적은 한자를 봐도 뒤죽박죽이다. ‘가’ 자는 더할 가(加)와 절 가(伽)를 오가고, ‘리’ 자도 마을 리(里)와 속될 리(俚)를 뒤섞어 썼다. 이는 뜻을 담아 고른 글자라기보다, ‘가리’라는 소리를 옮겨 적는 과정에서 생긴 흔들림이다. 이에 견줘 ‘왕’ 자는 줄곧 임금 왕(王)만 썼지 성할 왕(旺) 자로 쓴 사례는 없다. 이런 까닭으로 성할 ‘왕(旺)’ 자는 일제가 땅이름에 일부러 일본을 상징하는 ‘日’ 자를 덧붙였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래서 2007년 1월 1일 건설교통부 고시로 왕(旺) 자를 지우고 왕(王) 자로 바꿔 가리왕산(加里王山)으로 되돌린다. 실제로 일제강점기에 평창 발왕산, 서울 인왕산, 창녕 화왕산 같은 산이름에 ‘일왕(日王)’을 떠오르는 성할 ‘왕(旺)’ 자를 바꿨다.
그렇다면 ‘가리산’이 어째서 ‘가리왕산’으로 되었을까. 기록이 없어 단정지어 말하긴 어렵지만, 주봉을 중심으로 중봉, 하봉, 중왕산이 이어지는 산줄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임을 드러내려는 뜻으로 ‘왕’ 자를 덧대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보면 ‘갈왕(가리왕)’에 얽힌 이야기는 역사 사실이라기보다 현대에 와서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유래로 볼 수 있다. 그리곤 갈왕이 대궐을 삼았던 곳이라고 해서 대궐터, 갈왕을 따라온 시녀들이 부모형제를 그리워 올랐다는 시녀암 들을 마치 역사 사실인 냥 끌어들여 엮지 않았나 싶다.
결국 ‘가리왕산’의 말밑을 풀 열쇳말은 ‘가리’일 수밖에 없다. 우리 땅이름에 나타나는 ‘가리(갈)’는 여러 갈래로 해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갈리다’에서 나온 말로 보는 해석이다. ‘갈리다’의 옛말은 ‘가리다’이며, 여기서 ‘가리’가 줄어 곧잘 ‘갈’로 둔갑한다. 산줄기나 물길, 길이 갈라지는 곳에 있다고 해서 갈말, 갈골, 갈내, 갈고개, 갈뫼 같은 이름이 흔한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가리왕산을 보면 동서로 중왕산–마항치–가리왕산–중봉–하봉이 이어지고, 남북으로도 산줄기가 사방으로 뻗어 있어 이러한 해석과 제법 잘 들어맞는다.
또 하나는 낟가리, 볏가리, 장작가리처럼 차곡차곡 쌓은 더미를 뜻하는 ‘가리’에서 말미암았다는 설명이다. 홍천군 두촌면과 춘천시 동면 사이에 있는 가리산이 그렇게 붙여진 산이름이라고 한다. 가리와 비슷한 말로 ‘노적가리’가 있다. 이슬 내리는 마당이나 들에 쌓은 가리다.
서릿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공회당 마당에 있는 노적가리를 타고 놀았다.
동산처럼 높은 노적가리는 민들머리 아이들의 제일 좋은 해바라기 장소.
동네의 햇빛은 모조리 노적가리 근처에만 쏟아지는 것 같았다. 곧잘 아침잠에 취하곤 하던 나는 언제나 느즈막에 그곳을 찾았다. 노적가리에는 민들머리 아이들 못지않게 참새떼도 몰려들었다. 창황히 무리 지어 왔다.(박용래 산문전집, 문학동네, 2022, 39쪽)
‘가리’를 닮았다고 할 때는 대개 ‘노적가리’를 말하며 땅이름으로 쓸 때는 노적봉, 노적산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다소 망설여진다.
그리고 ‘갈(가리)’을 머리에 쓰는 ‘갇’에서 온 말로 보는 해석도 있다. 오늘날 말로는 ‘갓’이다. 여기서 ‘갈(가리)’은 ‘대가리’에서 보듯 ‘높다, 크다’는 뜻으로 나타낸다. 이를 ‘가리왕산’에 엮어 보면 높은 산들 가운데 더 높은 산이란 뜻으로 붙은 이름일 수 있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가리왕산은 해발 1,561미터로 정선군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한반도 남쪽에서는 열 손가락에 들 만큼 큰 산이다. 더구나 가리왕산은 중봉(1,433m), 하봉(1,380m), 중왕산(1,375m)을 거느린 ‘주봉’을 가리키는 말이면서 동시에 이들 봉우리까지 모두 싸잡는 대이름씨이기도 하다.
더러 산이름에 쓴 ‘갈’은 삿갓이나 갈모를 닮았다고 해서 ‘갇뫼, 갇산’이라고 하다가 갈산, 갈야산, 갈미봉, 갈모봉 따위 바뀌기도 한다. 삿갓은 대오리나 갈대로 거칠게 엮어서 비나 햇볓을 막으려고 쓰는 갓이라면, 갈모는 비가 올 때 갓 위에 덮어 쓰려고 기름을 먹인 종이로 고깔 비슷하게 생긴 것이다.
이 밖에 칼끝처럼 뾰족한 봉우리라고 해서 칼을 뜻하는 옛말 ‘갈ㅎ’에서 뿌리를 찾거나 땅모양이 목 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형국이라는 풍수지리 설명 따위가 보태지면 해석은 더욱 분분하다.
결국 여러 해석들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믿을 만한지는 결국 그 땅이나 산의 앉음새를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가리왕산은 정선에서 가장 높고 큰 산이며, 동시에 산줄기가 사방으로 갈라져 뻗어 나간다. 이러한 모양새로 보면 ‘가리(갈)’는 ‘갈라짐’과 ‘크고 높음’을 동시에 품은 땅이름으로 해석할 때 가장 자연스럽다. 땅에 얽힌 옛이야기엔 그 땅에 살아온 백성들 마음과 삶이 담긴다. 귀하게 갈무리하여 지켜야 한다. 다만 이야기보다 먼저 산이 있다. 산이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았는가를 살펴야 산 이름이 품은 뜻을 온전히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