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스승과 교사와 선생 사이

제44회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by 윤근관쫑아빠

작년 5월의 따스한 햇살이 교정을 비추던 날, 교무실 책상에 놓인 카네이션 한 송이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누군가 살짝 두고 간 작은 정성이었습니다. 그 꽃을 바라보며 문득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과연 '스승'이었을까, '교사'였을까, 아니면 그저 '선생'에 불과했을까?"


우리말에는 가르치는 사람을 일컫는 세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스승', '교사', 그리고 '선생'.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깊이가 다릅니다.


선생(先生): 먼저 태어나 길을 안내하는 이

'선생(先生)'이란 말 그대로 '먼저 태어난 사람'입니다. 인생이라는 길을 앞서 걸어온 경험자로서 후배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역할입니다. 제가 교직에 첫 발을 디뎠을 때, 저는 그저 '선생'이었습니다. 신임 교사 시절, 아이들과는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저는 교과서의 내용을 전달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수업 준비에 밤을 새우고, 시험 문제를 출제하느라 주말도 반납했지만, 그것은 '지식 전달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었습니다.


지금은 희미해져 이름마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늘 장난 많고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던 우리 반 학생 하나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왜 우리는 이런 재미없는 걸 배워야 하나요?"


질문을 던진 아이는 호기심에 그냥 큰 의미 없이 던지는 물음이었지만 저는 그 단순한 질문 앞에 저는 당황해하며 제대로 된 답을 주지 못하고 허겁지겁하며 제 얼굴이 붉어졌던 기억이 납니다. 교과서에 있으니까, 시험에 나오니까... 그 당시에는 그저 그런 답변밖에 떠오르지 않았으니까요. 그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선생'이라는 타이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교사(敎師): 가르치는 기술자

'교사(敎師)'는 '가르치는 스승'이라는 뜻으로, 교육 방법론과 기술을 갖춘 전문가를 의미합니다. 저는 점차 '교사'로 성장해 갔습니다. 대학 때부터 교육학을 공부하고, 다양한 교수법을 연구했습니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수업을 설계하고, 개별 학습 스타일에 맞는 지도법을 고민했습니다. 같은 교과를 가르치는 여러 선생님들의 사이트를 찾아다니며 자료를 모으고 고민하며 더 나은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노력 덕분에 제 수업은 점점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변해간다고 느꼈습니다. 학생들의 수업 만족도도 향상되어 갔고, 교육청에서 시행하는 장학지도 연구수업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아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늘 있었습니다.


기억의 한편에는 졸업한 제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학교 다닐 때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선생님, 제가 선생님 수업은 다 기억하는데, 그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아마도 제자의 말은 당시의 제 수업 분위기는 기억을 하였지만 세세한 기억들은 지워졌다는 의미의 대화였던 것 같은데, 그 말에 저는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교사'로서의 완성도는 높아졌을지 몰라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스승(師): 삶을 이끄는 안내자

'스승(師)'은 단순히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 제자의 인생과 사람됨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입니다. 저는 교직 생활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스승'의 의미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승은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사람입니다. 스승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배우는 사람입니다. 스승은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지혜의 안내자입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대략 25년 차 교직을 넘기고 있을 무렵, 저는 수업 시간에 교과서의 세밀한 지식보다는 도덕 윤리교사로서 제가 느끼는 삶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실패했던 경험, 고민했던 시간들, 그리고 그 속에서 배웠던 교훈들을 나누었습니다. 때로는 "선생님도 모릅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학생들과 함께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겼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지 10년이 지난 제자가 찾아와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때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는 그 말을 한 기억이 없었습니다. 스승의 작은 한마디가 제자에게는 삶을 바꾸는 큰 울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경계에서 배우다!

57년의 삶, 30여 년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있는 지금, 저는 여전히 스승과 교사와 선생 사이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때로는 단순한 '선생'으로, 때로는 전문적인 '교사'로, 그리고 가끔은 진정한 '스승'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완벽한 스승이 되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 여정 자체가 의미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모두 배움과 가르침의 경계에 서 있는 존재니까요.


스승의 날을 맞아, 저는 제게 가르침을 주신 모든 스승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제게 스승이 될 기회를 준 모든 제자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선생은 지식을 전달하고, 교사는 방법을 가르치지만, 스승은 삶을 나눕니다. 가르침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것임을, 제 교직 생활의 마지막 페이지에 기록해 봅니다.


그리고 후배 교사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선생으로 시작해, 교사로 성장하고, 스승을 지향하는 여정을 즐기시길. 그 여정에서 여러분도 저처럼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하고, 행복을 찾게 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