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조음 Jul 07. 2024

고양이 훈련병


말랑이는 올 2월쯤 태어난 고양이다.

이제 소녀에서 소년, 소년에서 청년으로 급성장 중이다.

'꽃보다 고양이' 화보를 찍은 지가 엊그제인데 이젠 국방 의무를 다하는 훈련병으로 거듭나고 있다.


장마가 시작되면 야생에 살고 있는 동물들도 수난을 당하기 마련이다. 주변에 빈 농가가 많아서 비 피할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밥은 내가 차려준다지만 안에 들일수는 없는 환경이다.

 고양이들은 영역동물이라 한번 자리를 잡으면 좀처럼 옮기는 법이 다. 태어난 곳이 바로 고향이자 홈인 것이다. 잘 지내던 마당 냥이가 오지 않는다면 십중팔구는 고양이별로 떠났거나 위험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밥 터를 떠날 고양이들은 없다. 말랑이는 그런 면에서 천상 집고양이다. 언제나 내 주변 가까이에 있다.


비가 속수무책으로 내리다 보니 고양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걱정이 되어 이름을 불렀더니 목소리만 가늘게 들려온다. 목소리는 들려오는데 어딘지 알 수가 없다. 좀처럼 보이지 않아서 두리번거리니 아, 글쎄 위험 천만한 곳에서 나를 애처롭게 바라본다. 오늘, 갑자기 장맛비가 쏟아져서 말랑이도 미처 비를 피할 사이가 없었나 보다. 지상에서 대략 8~9m 위에 놓인 일주문이다.

나를 발견하고서는 배가 고픈지 더더욱 소리를 높인다.

제 딴에는 처음 어찌어찌 올라갔으나 내려올 일이 걱정인 것 같다.

내가 보기에도 위험천만이다. 집사와 밥이 있으니 더 내려오고 싶어서 안달이다.  

자꾸 나를 바라보며 도와달라는 표정이다. 무작정 뛰어내릴까 봐 걱정이 되었다.  계속 보고 있으면

말랑이가 위험해질 것 같아서 몸을 숨겼다. 집사가 보이지 않으니 두리번거리다 조금 진정이 된 모양이다. 

이리저리 궁리를 하고, 길게 목을 빼고, 넘을 듯 말 듯 발을 내밀었다가 거두면서 머릿속으로 측량을 하는 것 같다. 매우 진지하다. 높은 천장 나무조각 사이사이를 이동하면서 각을 잡더니

층층이 조각된 조형물들을 계단 삼아 조심히 내려온다.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몇 배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이미 올라갈 줄 안다면

내려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제 거의 다 내려왔다. 저곳에서 담장으로 점프하며 안전하게 내려앉으면 끝난다.

굉장히 지능적이다. 굉장히 꼼꼼하다. 무작정 돌진하지 않는다. 무작정 뛰어내리지 않는다. 착지할 곳을 빠르게 숙지한다. 안전하게 천천히 머리를 쓰면서 천천히 유연하게  내려온다.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가거나 주춤하지 않는다. 내려갈수록 땅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말랑이가 뛰어내린 난간과 담장 기왓장까지의 거리는 족히 2m 정도 되는 높이다. 사진으로는 가까워 보이지만 말랑이가 머리를 굴려야 할 정도로 높은 위치이다.  


무사히 뛰어내렸다. 비가 오고 있어서 담장 위의 기왓장이 미끄러울 텐데 안전하게 착지한다. 숨어서 지켜보면서 순간순간을 찍고 있었는데 허공에 머무는 사진을 건지지 못했다. 아주 아쉽다. 그랬으면 말랑이 인생샷하나 건지는 건데... 뛰어내리는 자세에 찍었다가 다시 누르려하니 이미 내려와 버렸다. 찰나의 순간은 지금을 두고 말하는 것 같다.


잘 내려와서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그 밥이 뭐라고 목숨을 걸면서 내려올까나!

살아있는 목숨하나가 참 장하게 느껴진다.

배고픔이 위험을 이긴다.

밥은 생존이다.

그 누구라도 예외는 없다.

이제 말랑이는 저 높은 곳을 다람쥐처럼 자유자재로 오르내릴 것이다.

오늘 말랑이 어깨에 계급장 하나를 달아준다.

잘했어! 말랑상병! 쉬엇!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