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감자 한 박스를 집사 혼자서 깎고 있더군. 나는 집사 옆구리를 이마와 코로 문질문질하며나랑 놀자고 칭얼거렸지.
집사는 한숨을 푹푹 쉬며 말하더군.
"할머님 손이 아파서 내가 대신해줘야 해.신라야 다음에 놀자?미안."
내가 먹지도 못하는 감자를 깎고 있느니 슬슬 부아가 나더군. 지금 시간이면 집사랑 술래잡기를 하며 노는 시간인데.내 노는 시간을 뺏어 가다니.그리고 집사에게 힘든 일을 시키다니.
할마시 보살이 얼마나 아픈가 하고 몰래 숨어서 바라보았지.
헐!! 아프다는 할마시가 대나무 바람이 시원히 불어오는 방 안에서 선풍기까지 틀고서는시원한 수박을 먹어대면서 전국 노래자랑을보고 있더군.
"청춘아~내 청춘아~어딜 갔느냐~"
줸장, 노래까장 따라 부르고 있더군.내 집사는 선풍기도 없는 공양간에서 땀을 삐질 흘리면서 그 많은 감자를 깎고 있는데...
그 할마시는 나한테 콱찍혔지. 나한테 찍히면 끝장나는 거야.그 할마시는 내가 집사와 놀고 있으면
"저리 가? 이 해코지하는 나쁜 종자 놈, 저리안 가?"
하면서 나를 때리려 하거나 돌멩이를 던지곤 했지.내 집사에게도막말을 하더군.
"짐승새끼좋아하는 것 아녀.아무짝에도 쓸모없어.저리 갔다 버려.내 옆에 오게 하지 마."
아니, 할마시 당신이 내 집사한테 왔잖아!
내 집사 옆에는 당연히 내가 붙어 있는 거고.아, 이 할마시가 나를 모르는구나,두고봅세.
이제 절간에 쥐새끼는 찾아볼 수가없게 되었지. 내 소문이 쥐들에게 다 퍼진 거지. 그렇다고 다른 집에까지 들어가서 쥐새끼를 가져오고 싶지는 않았지.
마침 여름이고 장마진 뒤라 고것들이 기어 나올 때가 된 것 같아서 좀 기다리기로 했지. 고것은 자칫 역으로 내가 당할 수도 있어서 껄끄럽긴 하더군. 내 친구들도 겁 없이 덤볐다가 퉁퉁 붓거나 독이 올라 고양이별로 떠나곤 했지. 하지만 여기는 8천 평 절간이 모두 내 나와바리. 이 절간에 미친 괭이는 나. 누구 하나 담그려면 내 불꽃같은 인생도 함께 걸어야 하는 법이지. 그래! 내집사는 내가 지킨다!
그래 너! 나와봐라!
그 할머니가 사는 방은 이미 알아뒀지. 왼쪽 끝방에서 두 번째. 댓돌 위엔 항상 검정 고무신이 놓여있지. 마침 그날은 비가 오려는지 습기가 많아서 그것들이 기어 나오기에는 안성맞춤이더군. 그것들이 있을만한 돌담과 수풀을 눈여겨보았지.
아니나 다를까
'스스스~스스슥~~낼름~낼름~스스슥~쎄~~에~~엑.'
댕~~~ 댕~~~
새벽 예불을 알리는 범종이 울렸지.할마시도 새벽밥을 하려고 방 안에서 나오더군.
누구를 한방 먹이려면 상대가 가장 무방비 상태일때, 먼저 공격해에만 한다는 것을 난 이미 숱한 싸움의 기술로 터득해버렸지. 지금이 바로 그런 운명의 시간이지.
할마시가 마루에 걸터앉아 고무신을 신으려고막 댓돌 위에 발을 내리려는 찰나,
"옴마!!!옴마!!!으어억!!!아이고~~ 하나님!! 관셈보살!! 으어억!"
얼마나 소리를 꽥꽥 질렀던지 바로 옆에서 범종을 치던 행자님도 깜짝 놀라서 그만 종 치는 당목을 놓치고 말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