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오빠와 나는 차별을 받고 자랐다 생각했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 때는 눈이 잘 오지 않는 내가 사는 지역에 눈이 펑펑 쏟아진 날이었다.
오빠와 나는 물론이고 부모님도 상당히 들떠있었던 것 같다.
부모님은 집 밖에서 카메라로 오빠와 나를 찍어 주셨는데 처음엔 못 느꼈지만 점점 오빠 이름만 부르며 오빠만 계속 찍는 게 아닌가.
나는 뒤에 서있고 오빠이름만 부르는 엄마에게 화를 냈다.
-엄마는 오빠야만 찍어주고!!!
순간 머쓱한 엄마의 표정.
뒤늦게 내 이름을 부르며
-**아 니도 여기 서봐라~~
-싫어!!!
옷이나 학용품등도 오빠가 먼저, 그리고 좋은 것으로 사다 주셨다.
그때는 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아들과 딸의 차별이라 생각했다.
지금 아들만 둘인 나에게 둘째는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엄마는 형아만 좋아하고!!!
잠들 때 뒤척이다 첫째 쪽으로 돌아누우면 90%의 확률로 듣게 되는 멘트.
지금 생각해 보니 아들과 딸의 차별이 아니라 첫째와 둘째의 차별이었다.
첫 아이는 내 인생에 한 명뿐이고
첫 아이의 모든 순간은 나에게도 처음이다.
그 시간들은 나도 낯설지만 소중하고 중요하기도 하며 빛나기도 한다.
넘어질까 엉덩이뒤쪽에 언제라도 받치게 내 손이 준비되어 있었고 울면 얼른 안고 아파서 주사라도 맞으면 눈물이 났다.
낮잠 잘 때는 발소리도 내지 않았고 손발톱도 잠들었을 때나 살살 깎을 수 있었다.
옷과 신발도 매번은 아니지만 시즌마다 한 번쯤은 아웃도어키즈코너에서 사고 어린이집, 유치원 준비물은 고르고 골라 좋은 것으로 준비했다.
그렇지만 이런 과정을 겪고 나니 둘째를 맞이하는 나의 태도는 굉장히 달라져 있었다.
느긋한 엄마가 되었고 가성비를 생각하고 조바심 내지 않게 되었다.
덜 소중하고 덜 사랑해서 그런 것이 아니란 걸 어릴 때의 나는 몰랐고 지금 둘째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둘째는 첫째의 아기 때 느끼지 못한 육아의 기쁨을 느끼게 해 주고 아기를 키우는 것은 대체적으로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가만히 저 먼발치의 기억을 더듬다 보면 부모님은 오빠보다 나를 귀여워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나조차도 지금 둘째가 확실하고 명확하게 완전히 귀엽다.
뭘 잘해도 귀엽고 뭘 못해도 귀엽고 아무것도 안 해도 귀엽다.
하지만 둘째들은 엄마아빠가 자기를 이렇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본다는 사실을 절대로 모른다.
둘째들이여 서러워하지 말라.
우린 생각보다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을 수도 있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을 비로소 부모가 되어야 알게 되는 진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