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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zu Jan 04. 2023

영화 3000년의 기다림 ‘오랜 시간을 넘어 당신에게’


영화의 주인공, 알리테아는 완벽하진 않지만 충만한 삶을 살고 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무수한 이야기를 듣고 학습한 그녀는 이야기에는 통달한 저명한 학자다.



3000년의 기다림은 알리테아가 강연 후 방문한 골동품 가게에서 유리병을 구매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조심스레 유리병을 잡고 닦아내면 입구가 열리며 신비로운 연기가 퍼져 나간다. 알리테아는 짐짓 당황한 눈으로 그것을 보지만 이내 침착하게 대응하려 애쓴다. 유리병에서 나온 것은 소원을 들어주는 정령, 진이다. 알리테아가 오랜 시간 봉인되었던 정령을 깨어나게 한 것이다.


진은 세상을 살피며 알리테아에게 소원을 빌기를 권유한다. 허나 안타깝지만 알리테아에게는 갈망할만한 소원이 없다. 헤어진 남편에게 잠깐의 배신감을 느꼈지만 이내 밀려오는 해방감을 맛봤기 때문에 그와 재결합할 이유가 없다. 또한 그녀는 수많은 이야기를 마주했다. 소원의 끝이 늘 좋지 않았다는 걸 알리테아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제 진은 그녀를 설득해야만 한다. 제 할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진의 이야기는 300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바야흐로 아득히 먼 옛날, 그가 왜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게 되었는지.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시공간을 넘나 든다. 결코 만날 수 없는 시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문화적 유산과 신화, 전설적 인물들을 재해석한 이야기는 모두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이다. 진은 그가 소원을 들어주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펼쳐내며 알레티아에게 자신의 필요성을 입증하려 한다. 허나 얼핏 들어서는 진에게 소원을 행한 자들은 모두 실패를 반복한다. 영화는 신화와 판타지 장르를 넘나 들며 시각적으로 화려하게 사람을 매혹시킨다.


마지막 이야기까지 들은 알레티아에게 비로소 소원이 생겼다. 머뭇거리던 그녀는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스스로를 봉인시켰던 진의 그 순전한 사랑을 갈망한다. 생각지도 못한 소원을 받든 이처럼, 진은 자신이 들은 소원을 다시금 확인한다.



이야기를 처음부터 훑으면 알레티아와 진의 공통점이 하나 교차한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고독 위에 뒹굴던 이들이다. 너무 오래되어 온몸에 붙은 그 감각을 생처럼 끌고 온 자들이다. 그렇기에 둘은 오랜 시간과 모든 이야기를 건너 나의 고독을 해방해 줄 수 있는 당신을 갈구하는 것이다.


둘은 사랑은 행복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한 여름밤의 꿈처럼, 욕망에 잠긴 천일야화처럼 사라져 버리지는 않을까.


알리테아는 말한다. 사랑보다는 증오가 더 쉽게 번지고 오래가는 감정이라고.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허나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라는 것을 기꺼이 찬양한다. 색이 바래거나 결국에는 탁해지더라도 사랑의 조각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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