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왜 이다지도 두려움이 없는 걸까. 그 작고 무한한 세계에는 도대체 어떤 것들을 담고 있을까.
아이에게 포커스를 준 영화를 보다 보면 종종 드는 생각이다. 미완의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흡수하고, 미약한 바람에도 거세게 흔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신념이나 고집은 단단하게 들어차 있다.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하고 섬세한 세계.
주인공 폴은 천진한 말썽꾸러기이다.
아이는 자꾸만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형과, 엄한 아빠, 다정하지만 강단 있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아이에게는 그의 세계를 열렬히 지지해주는 할아버지가 있는데, 그는 폴에게 있어 가장 큰 산이자 든든한 버팀목이다. 할아버지는 어린 폴의 세계를 함부로 무시하거나 우습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존중해주려 하고 한 마디마다 귀를 기울인다.
폴은 학교에서 문제아로 불리는 흑인 남자애, 죠니와 친구가 된다. 죠니는 학교의 어른들에게 투명인간 또는 철저한 문제아로 분류된다. 유급을 한 멍청하고 모자란, 치기 어린 아이.
폴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며, 언젠가는 유명한 화가가 되는 자신을 상상한다. 학교에서 갔던 뮤지엄 한가운데에 폴은 모두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제 생명을 담은 작품을 공개한다. 달콤한 상상은 이내 현실로 돌아오고 폴에게 쏟아지던 조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폴과 죠니는 학교라는 틀에서 벗어나 모르는 거리를 달리고, 확신할 수 없는 약속들을 쌓는다. 아이들의 우정은 덧없고 무해하게 확장된다.
할아버지는 이따금,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해준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받았던 핍박과 고난. 너희만큼은 그런 걸 대물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간절함.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사회의 이면을, 할아버지는 자신의 손자에게 조곤조곤 들려준다.
사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단계의 차별과 불평등이 존재한다.
폴과 죠니가 범법을 저지르고 경찰서에 끌려갔을 때, 폴은 모두 자신이 계획한 것이라고 고백한다. 경찰은 폴에게 묻는다.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말해 달라고. 오갈 곳이 없어 거리를 전전하는 죠니에게는 단 한 번도 내비치지 않았던 도움의 말을, 백인인 폴에게는 선뜻 건넨다. 나는 이 대목에서 신발이 없어 찢어진 양말 틈으로 피가 덕지덕지 비치던 죠니의 가여운 발을 떠올린다. 경찰은 아이의 발을 정말 보지 못했을까. 자신이 신경 쓸 부분이 아니라 생각하여, 철저히 배제하고 시선에서 넘겨 버린 것은 아닐까.
폴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당하고 있다 생각한 불평등을 두 눈으로 목도한다. 아이의 눈이 뒤흔들린다. 어차피 바뀌는 것은 없다며 체념하는 친구의 눈은 까맣게 가라앉아 있다. 아이는 세상을 포기하는 것을 너무 빨리 배웠다.
시대에 따라 차별은 대상을 바꿔갈 뿐. 절대적으로 존재한다. 사람은 타인의 불공평은 관심 두지 않지만 저에게 끼치는 차별에는 세상이 무너지는 고통을 받는다.
영화에 나오는 폴과 죠니는 객관적인 시선 안에서 답이 없는 문제아들이다. 아이들은 자꾸만 세상과 싸운다. 두려움이 없어 대항하고 또 반항한다. 그 끝이 결국 투항일지라도 멈추지 않는다.
나는, 우리는 이 아이들을 마냥 비난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