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로 태어난 건 불행?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둘째 고모가 이혼했다.
고모는 20살에 결혼했는데 3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마무리한 것이다.
어느 날 아버지가 고모네 집에 가서 고모를 데려왔고, 고모는 울고 있었다.
고모부가 폭력을 한 것을 안 아버지가 화가 나서 여동생을 데려왔단다. 난 아버지가 당신은 폭력을 하면서 동생이 맞는 것은 못 참나보다 했다.
고모는 상냥하고 싹싹한 성격으로 항상 밝은 표정이며 미모도 빠지지 않는다.
고모가 처음 결혼 할 땐 우리 모두에게 경사였다. 고모부는 키가 큰 미남이었고 흰 피부를 지니고 있어서 귀공자 같았다. 무엇보다 부자였다. 시어머니는 모자 도매업을 하였고 큰 집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이 예쁘고 상냥하니 좋은 집으로 시집가는 것이 당연했다.
고모도 결혼하여 시댁사업을 함께 했다. 서울에서 물건을 떼다 제천 중앙시장 상가나 난전 장사꾼들에게 물건을 넘기는 것으로 시장상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시어머니도 며느리를 좋아한다고 하며 자기가 얼마나 시댁 사업을 번창하게 했는지 자랑했다. 나는 그런 고모가 부러웠고 나도 커서 그런 집에 시집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고모의 이혼 소식은 나에게 너무 큰 충격이었다.
사실은 고모가 아기를 낳을 수 없어서 이혼한 거란다. 고모는 어릴 적에 크게 넘어진 적이 있는데 그때 잘못되어 아기를 낳을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고모부는 미용실 여자와 사귀고 있었는데, 시어머니가 그 여자를 반대하여 이루어지지 않았고, 참한 우리 고모와 결혼시킨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고모부는 계속 옛 연인을 만났고 이혼 후에는 결국 그 여자와 산다고 하였다.
23살 꽃다운 나이에 이혼한 고모가 너무 안타까웠다.
1975년 23살 이혼녀의 삶은 어떠했을까? 고모는 항상 씩씩했지만 안 해 본 것이 없는 참으로 고단한 삶을 살아왔다. 김밥장사도하고, 건강식품도 팔았다. 각종 방문판매에 성과를 보여서 한 때는 잘 살기도 했지만, 여전히 애쓰며 산다. 이런 고모가 늘 애잔하다.
내가 처음 회사에 다닐 무렵 고모가 큰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나는 매일 병원과 회사, 집을 삼각형으로 다녀야 했다.
수술실에서 축 늘어져 나온 고모의 모습은 길거리에 버려진 참새 같았다. 그 작은 몸에 까칠한 얼굴, 쪼그라든 고모의 모습이 몹시 슬펐다.
중학교 시절 나는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토마스 하디의 테스 등에 빠져있었다. 이 책들의 공통점은 여자들이 모두 비련의 주인공이라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로 함부로 취급되어 버려지고, 배반당하며 불행한 삶을 산다.
난 내가 여자라는 사실이 참으로 억울했다. 여자의 일생은 그렇게 비극이어야 하는가? 엄마를 보면 소설과 다르지 않다.
그러던 중에 고모가 이혼을 했고, 아기를 낳지 못한다는 게 이유라니... 난 절대 결혼하지 않으리라. 아버지를 비롯한 남자들 모두가 싫었다.
특히 테스가 자신의 미모가 재앙의 원인 이라면서 오래된 옷을 입고, 눈썹을 깎고 머리를 짧게 자르고 헝클어 버리는 장면은 진짜 공감을 자아냈다.
그래 절대 아름답게 꾸미지 않겠어. 미모 때문에 남자들한테 당하는 일 없도록. 아름답지도 않고, 예쁜 옷을 입지 않은 자신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15살 사춘기 소녀는 고모의 이혼과 소설 속 주인공과의 강한 동일시로 비혼주의를 선포했다. 그래서 고등학생 때는 수녀가 되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건 내가 22살 첫사랑에 빠질 때까지만 유효했다.
최근 고모들 돈으로 우리 집 방앗간을 산 것이라 하여 처음 듣는 소리라 엄마한테 확인을 했다.
무슨 소리? 땅 팔아서 샀는데..
그 땅은 무슨 돈으로 샀냐고 하니 우물쭈물 돈을 벌어서 샀겠지 한다.
고모는 구체적으로 말했다. 이혼 위자료로 300만 원을 받아 우리 아버지한테 맡겼다가 130만 원 정도는 혼자 살 방을 얻기 위해 찾아갔단다.
아버지는 그 남은 돈으로 땅을 40평 샀고, 몇 년 후 그 땅을 팔아 방앗간을 산 것이다. 큰고모도 여기에 돈을 보탰다고 했다.
합리적 주장 같다. 우리는 저축할 여유가 없었다. 어쩌다 돈을 가져오면 엄마는 한 달 살 연탄과 쌀, 간장, 식용유 등을 샀다. 언제 또 돈이 들어올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찌 땅 살 여유가 있을 것인가?
나는 명절에 고모들에게 용돈을 조금 보냈다.
엄마는 인정하지 않지만 그래도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싶었다.
큰고모는 당연히 동생으로 할 일을 한 것인데, 그래도 조카가 고맙다고 하니 눈물이 난다고 훌쩍였다.
한 번도 고맙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단다.
둘째 고모한테도 용돈을 보내고 문자를 보냈다.
서울서 고모한테 신세 진 것 잊은 적 없어요. 늘 고마웠지요. 그런데 너무 힘드니 내색도 못했지요.
난 생각도 안 했어.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 난 생각하면 너무 잘못산 거 같다. 너처럼 어떻게 해서라도 배웠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가 된다. 조금만 더 배웠더라도 이리 힘들진 않았을 텐데.
그러게요. 고등학교를 가지 않으니 아무리 똑똑해도 월급 1만 원 받는 점원이고 심부름꾼이고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고등학교를 다시 내 힘으로 갔지요. 그래도 고모는 참 잘 살았어요. 언제나 세련됐고. 멋쟁이로 대학 나온 사람 같았어요.
대학을 나와도 고모처럼 살기 힘들어요. 고모 나름의 험난한 삶을, 희망을 잃지 않고 늘 새롭게 도전하며 살았잖아요. 참 고생 많이 했어요.
너라도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다!!
내 딴엔 죽어라 열심히 살았다. 남들은 잘 봐주고 알아봐 주는 편인데 우리 형제들은 안 그런 거 같아서 속상했지.
그리고 잘 살 땐, 나도 하느라 했는데 몰라주는 것이, 어떤 때는 서운하고 서러웠다.
역시 나는 혼자인가 보다고, 그래도 난 힘 잃지 않고 씩씩하게 살 거다. 희망도 있고 뭐든지 자신감은 있다.
고모, 그렇게 사는 거예요!
멋있어요. 짱! 아무도 욕하지 않아요
살아보겠다는데... 누가 감히...ㅎㅎ
어쩌면 처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고모의 서러움이 가득 묻었다.
우린 친지라도 마음을 열지 못했고, 고마움을 표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늘 인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