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선생님들은 무엇을 하나?
자기 어디까지 해 봤어?
저요, 평생 처음 김장도 해보고, 고추장도 담갔어요. 매실청도 담갔고요.
하하하
나도 그거 다 했다.
그리고 산에서 도토리 주워서 도토리묵까지 해봤다.
정말요? 와~전 그건 꿈도 못 꿨어요.
먼저 은퇴한 선배하고 전화를 하면서 다 똑같다고 웃었다.
선생님들은 연금 받아서 생활하니 좋겠다고 부러움을 받는다. 물론 그건 철가방 직업이라 30~40 년 이상 근무할 수 있었고, 근무하는 동안 엄청나게 많은 액수를 기여금이란 명목으로 일종의 연금저축으로 대비한 결과다. 대신 퇴직금이 적다. 대기업 회사원 들은 수억을 받지만 우린 그런 게 거의 없다. 1억 도 안된다.
다 알다시피 교직원 연금은 노후를 즐기기에 부족하지 않다. 둘이 연금을 받으면 특히 그렇다. 물론 소비를 거의 안 하니까 그렇다. 옷도 구두도 살 일이 없다. 운동화와 평상복으로 족하다. 그래서 앵겔지수는 높다.
30년 전 유럽에 여행을 갔을 때 만난 관광객 중 많은 사람들이 유럽과 미국의 노부부였다. 그들은 평온한 표정으로 걷고 자연을 음미하기도 하고, 낯선 도시를 천천히 걷는다. 가끔 반려견과 함께하는 부부도 있었다.
참 부러운 풍경이었다. 나도 노년에는 남편과 둘이 천천히 산책하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을 느끼며 여행하는 행운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은퇴한 교장이나 교사들은 해외여행이나 국내여행을 많이 간다. 나는 해외여행도 갔지만, 주로 국내여행을 한 달에 한 번씩 갔다. 강원도 속초나 강릉을 갔고, 서해안도 자주 갔다. 부산과 제주도도 여러 번 갔다. 주로 바다를 찾는다. 꿈은 이미 이루어져 있다. 남편과 모래밭에 앉아서 하염없이 몰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다 해변을 산책한다.
그리고 남편과 매일 산책을 한다. 두물머리, 다산공윈, 하남 미사리 뚝방길, 고덕생태 공원 한강변을 다닌다. 모두 한강변에 있는 곳이다. 물은 치유의 어머니이다. 강과 바다가 우리를 치유하고, 다시 호흡하게 한다.
동료들은 자전거도 타고 등산도 가고, 화실이나 취미교실을 다닌다. 다들 운동은 빠지지 않는 것 같다.
나는 직장에 다니면서 살림에 소홀했고 무능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주로 살림살이에 재미를 붙였다.
TV에 보면 엄마가 결혼한 자녀에게 반찬을 해서 가져다주는 것이 많이 나온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요리 솜씨가 좋은가, 나도 요리를 잘해서 자식들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유튜브는 최고의 요리스승이다.
우엉조림, 멸치볶음, 연근조림도 배워서 하고 각종 김치도 잘한다. 고기요리도 하고 김치찌개, 미역국 끓이는 법까지 새로 배워서 한다. 덕분에 나도 가끔 시어머니와 자식들에게 반찬을 나눠준다.
처음엔 실수가 많아서, 가족들은 언제까지 우리가 실험대상이어야 하는가 했다. 차츰 내가 한 김치가 제일 맛있다고 아부하는 가족도 생겼다.
요리뿐만 아니라 빨래를 개는 법, 정리하는 법도 새로 배워서 오나가나 정리를 하려 든다.
시어머니 댁에서도 서랍을 다 뒤집어서 배운 대로 개고 정리하면서 정리된 서랍에 만족했다.
새댁 시절 배워야 할 살림을 노년에 새로 배우면서도 기분이 너무 좋다.
늘 가족들에게 미안했는데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그다음에 한 일이 수채화를 그리는 것이었다. 역시 유튜브 선생님한테 배운다.
배울 땐 무엇이든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유튜브를 참조하고 내 맘대로 한다. 화가가 되어서 전시회를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더 이상 성취목표에 메이고 싶지 않다. 혼자 만족하면 그만이다.
우리 집은 나의 갤러리다. 다이소 액자에서 내 그림들이 여기저기 빛난다.
요즘에 새로 한 일이 브런치 작가다. 46일째 매일 글을 올린다. 남편이 어떻게 매일 글이 나오냐고 한다.
나도 신기하다. 글을 쓰기 이전에는 곧 치매가 오려나 했다. 단어들이 기억이 안 나서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자꾸 잊는 내가 한심한데 그것을 자각하는 일은 더 힘들다.
글을 쓰면서 신기하게 단어들이 생각난다. 문장이 줄을 맞추어 내려오는 느낌이다. 나는 그것을 놓칠세라 마구 받아쓴다. 그래서 내 글은 호흡이 빠르다. 수사를 넣을 시간이 없다. 스토리 쓰기도 벅차다. 잠시 놓치면 길을 잃는다.
브런치북을 내고 싶지도 않다. 하긴 며느리가 '나중에 책 내연 좋겠어요'한다.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나의 삶을 책 한 권으로 요약하는 일은 멋질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없다. 그 험한 세월을 다 쓸 수 있을까?
그래도 확실히 치유에는 최고다. 글을 쓰면서 상처라고 생각한 것들이 나오고 햇빛에 널어놓은 상처들은 순식 간에 치유된다. 뱀을 잡았는데 지렁이다.
대단하지 않은 일들을 상처라고 꽉 움켜쥐고 부끄러워하면서 속상해하고, 억울해하고, 분노하고, 숨었다.
나는 마라톤을 못한다. 100m 단거리만 가능하다. 무엇을 오래 하지 못하고 싫증 낸다. 요리도, 그림도 글쓰기도 그럴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새로운 놀거리를 찾을 것이다.
노년은 참 평안하고 행복하다.
출근하지 않고 늦잠을 자도 좋고,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업무로 인한 갈등도 없다.
자식교육에서도 해방되었다.
손자손녀는 나의 기쁨의 원천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가끔 친구들도 만난다.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없다.
지금이 나의 리즈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