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 6

함께 간 여행 다른 기억

by 파도타기

고딕 지구에 관한 내 글을 읽던 남편이 한마디를 툭 건넸다.


왜 그 노숙인과 개 이야기는 빠졌어?


그러고 보니 그랬다. 고딕 지구의 굽이진 골목마다 노숙인들이 있었다. 그중 유독 눈길을 끌던 이는 커다란 셰퍼드를 곁에 둔 사내였다. '개를 위해 도움이 필요하다'는 문구를 적어둔 그는 구걸이 아닌 사랑을 구하고 있었다.

평소 베란다에서 식물들을 정성껏 가꾸는 식집사이자 강아지를 아끼는 남편의 눈에는, 추운 밤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잠들 그들의 모습이 불쌍하기보다 차라리 행복해 보였다고 했다. 나 역시 곁에서 그 풍경을 보고 대화까지 나누었지만, 남편이 일깨워주기 전까지 내 기억은 그 장면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며느리는 유독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대한 기대가 컸다. 성당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며느리의 목소리엔 힘이 실렸고 얼굴엔 환한 미소가 번졌다.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성당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며느리는 이미 그 기대감 섞인 표정으로 예견하고 있었다.

구엘 공원을 둘러보고 난 첫날 저녁, 우리는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향했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성당의 외벽은 형체를 온전히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저 겉면을 도는 것만으로도 셔터를 누르게 만드는 위압감이 있었다.


결국 이틀 후 그 성소를 다시 찾았다. 가우디의 천재성은 전 세계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수세기에 걸쳐 여전히 공사가 진행 중인 이 미완의 걸작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각기 다른 조각 양식들이 층층이 쌓이며 독특한 시대적 서사를 써 내려가고 있었다.

성당 내부는 유럽의 전형적인 고딕 양식과는 궤를 달리했다. 거대한 버섯을 닮은 흰 기둥들이 숲처럼 솟아올라 높은 천장을 단단히 받치고 있었다. 그 경이로운 풍경 앞에서 나는 매 순간 탄성을 삼키며 셔터를 눌렀고, 찰나의 감동이라도 놓칠세라 동영상에 담았다.


평소 나는 고대 성당의 창을 통해 스며드는 자연의 빛, 스테인드글라스의 빛깔에 매혹되곤 했다.

가우디가 펼쳐놓은 빛의 향연은 시공간을 초월한 완벽한 예술의 정점이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 대해 내가 더 보탤 말은 없었다. 언어의 한계를 절감하며 그 대목을 비워두려던 찰나, 며느리의 눈동자 속에서 반짝이던 빛을 기억했다. 그 빛나는 표정은 내가 미처 다 적지 못한 성당의 감동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고, 비로소 나는 이 글을 써 내려갈 마지막 실마리를 찾았다.


아들은 유독 캄캄한 밤에 올랐던 벙커를 인상 깊게 기억했다. 그곳에서 내려다본 도시는 마치 은하수처럼 고요하게 반짝였다. 벙커는 주로 젊은 연인들로 붐볐지만,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소란스러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연인들은 둘이 하나가 된 듯 사랑을 나누며, 발아래 펼쳐진 별밭 위에서 천상의 데이트를 만끽하고 있었다. 이제 막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던 아들 내외 역시 그 눈부신 풍경의 일부가 되어 사랑을 속삭였으니, 그 밤은 아들에게 더없이 행복한 기억으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벙커에서 보는 화려한 야경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곳으로 향하는 길목에 늘어선 가난한 집들이었다. 단칸방들이 줄지어 선 골목, 먼지 나는 이불을 털던 한 청년의 모습을 보았다.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고단함을 터는 행위였을 그 몸짓이, 내게는 척박한 삶을 이어가려는 치열한 의지처럼 읽혔다. 고단한 생의 한 조각을 마주할 때마다 나의 걸음은 늘 연민이라는 감정 앞에 멈춰 서고 만다


우리 넷이 함께 통과한 바르셀로나는 저마다의 색채로 남았다. 신혼부부는 반짝이는 야경 아래 사랑을 속삭이던 언덕과 달콤한 와인의 풍미로 도시를 기억한다. 같은 시간, 고딕 지구의 골목에서 나는 오래된 벽이 주는 깊은 감동에 젖어 있었으나, 남편의 시선은 묵묵히 노숙자의 곁을 지키는 어느 이름 모를 개에게 머물고 있었다


남편은 50대 후반에 접어들며 부쩍 신혼 시절을 그리워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그의 낭만적인 회상은 내 안의 상처를 건드렸고, 그 간극만큼 우리는 멀어졌다. 나의 감옥은 그의 천국이었다.


​'고딕 지구의 슬픔'을 읽은 남편은 이제 다 쏟아내라고, 쓰고 싶은 대로 편하게 쓰라며 나를 다독인다. 가족의 마음을 다치게 할까 봐 벼리고 다듬었던 문장들이 드디어 제 주인을 찾아간 기분이다.


어쩌면 나는 아픔의 실체를 말하는 대신 투정만 부려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쏟아낸 뒤에야 비로소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왜 그 시절이 남편에게는 천국으로 기억됐는지도 비로소 이해가 갔다.


여고생 동생들만 시골에 두고 대학을 다니고 있던 장남인 남편은 동생들이 얼마나 가여웠을까? 그러다 8년 만에 지하 방이지만 온 가족이 복작거리며 함께 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매일 좋은 식재료로 갖은 음식을 해서 먹이는 기쁨이 어떠했을까,


돌 지난 아들은 장기알을 구별하고 달력 숫자를 읽어낸다. 평신도 교회에서 전도사를 하며 대학원을 다니는 남편에게 그곳은 안락한 도피처이자 천국이었으리라.
밤이 되면 그의 천국은 절정에 달했고, 나는 중학교 때 읽은 나도향의 소설 '불'을 떠올리며 순이가 왜 제 집을 태워야 했는지 처절하게 이해했다.

그들의 완벽한 천국을 위해 나라는 존재가 통째로 소멸해 가는 밤의 공포. ​나는 내가 바로 그 순이라고 소리 없는 비명을 삼키며 어둠 속에서 숨을 죽였다.


시동생도 종종 들렀다. 시동생은 저녁을 먹었다고 했다. 잠들기 전 나는 시동생이 가만가만 라면을 혼자 끓여 먹는 것을 알았다. 시동생은 나를 배려했고, 나는 시동생의 그 마음을 평생 고마워했다.


그러나 초보며느리가 6 식구의 뒷바라지하는 것을 '결혼한 여자의 당연한 도리'로 치부하던 가족들의 무심함이 내게는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박혔다. 남편에게는 안식처였던 그 집이, 내게는 창살 없는 감옥이 된 것이었다.


결국 나 혼자 그 고단한 불행을 짊어졌던 것이 맞다. 미리 헤아릴 수 있었다면 조금은 덜 아팠을 것이다. 나의 인내가 한 가족의 온전한 행복이 될 수 있었다면 나는 그 무게조차 기꺼이 품었을 것이다.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우리는 같은 길을 걸었지만, 서로 다른 풍경을 보며 각자의 방식으로 아파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함께 여행하고 서로 다른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 엇갈린 기억들이 겹쳐질 때 비로소 우리 가족의 온전한 지도가 완성된다.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고 그 결핍마저 긍정하며, 우리는 다시 다음 여정을 꿈꾼다



*사진은 당시 현장에서 직접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