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바르셀로나 1주일 살기를 하면서 현지 여행사를 통해 1일 여행도 했다. 몬세라트와 시체스를 다녀왔다. 나는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고 따라갔다.
바르셀로나에서 여행사 차량으로 한 시간 남짓 달렸을까. 고도가 높아지며 시야 끝에 거대한 기암괴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설악산의 울산바위를 마주한 듯 반가우면서도 생경했다. 울산바위가 날카롭고 매서운 기개를 뽐낸다면, 이곳 몬세라트는 훨씬 거대하면서도 둥글둥글한 질감으로 다가왔다. 멀리서 우러러봐야 하는 울산바위와 달리, 몬세라트는 차로 그 품속까지 깊숙이 파고들 수 있었다. 거대한 바위들은 마치 성당을 포근히 감싸 안은 웅장한 병풍 같았다.
몬(Mont)'은 산, '세라트(Serrat)'는 톱니 모양이라는 뜻으로, 멀리서 보면 바위 봉우리들이 마치 톱으로 자른 듯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란다.
성당 밖으로 나서니 아담한 전망대가 우리를 맞이한다. 난간 너머로 시선을 던지자 산 아래 세상이 아득히 발아래 놓였다. 우리가 얼마나 높이 굽이쳐 올라왔는지 실감이 났다. 사방으로 탁 트인 풍경 속으로 마음 한구석에 고여 있던 상심들이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과 뺨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 덕분일까, 곁에 선 아들과 며느리의 미소가 유난히 눈부셨다. 나는 그 찬란한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동영상 버튼을 누르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지금의 기분을 물으며 이 평화로운 찰나를 기록에 담았다.
좋습니다. 너무 좋네요.
남편의 짧은 소감이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다. 어떤 수사가 필요하겠는가.
바르셀로나의 천재, 안토니오 가우디는 이 몬세라트의 독특한 바위 형상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수직적 신비와 '카사 밀라' 굴뚝의 기묘한 곡선을 길어 올렸다. 숙소 창밖으로 매일 마주하던 카사 밀라의 투구 모양 굴뚝들이 이 거대한 바위산의 봉우리들 사이로 겹쳐 보이는 듯했다.
자연이 빚은 이 비정형적인 조형미야말로 가우디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토양이었을 터다. 내 안에도 그 경이로운 형상들이 기분 좋은 탄성이 되어 차곡차곡 저장되었다.
수도원을 뒤로하고 산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이보다 더 완벽한 전망대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굽이치는 길마다 절경이 펼쳐진다. 속세의 소란함은 어느덧 아득해지고, 마치 구름 위 하늘길로 들어선 듯한 묘한 고요가 찾아왔다.
다들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길 위에서 마주친 여행자들이 하나둘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높이 뻗으며 가볍게 날아오른다. 대자연의 품속에서 중력을 잊은 채 자유를 만끽하는 몸짓들이다.
어느새 아들도 하늘길의 주인공이 되어 날아오른다. 남편은 아들의 비상을 박제하듯 담아내려 차가운 땅바닥에 엎드리는 수고조차 마다하지 않는다. 수차례의 힘찬 도약 끝에, 마침내 아들은 하얀 배꼽까지 드러내며 허공 한복판에 멈춰 섰다.
오늘처럼 중력을 거슬러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가려던 아들의 그 기백이, 삶의 고단한 고비마다 생동하는 에너지가 되어주길 마음 깊이 빌어본다.
산을 내려와 시체스 지중해의 눈부신 여유를 만났다. 몬세라트의 영성 깊은 분위기와 대비되는 시체스의 활기찬 에너지가 넘치는 까닭인지 아들과 며느리가 해안을 뛰며 지중해의 윤슬에 흔들린다.
'푸른 바다의 전설'이라는 드라마 속 인어. 전지현이 처음 육지에 발을 내디딘 광장에 섰다. 지중해는 영상보다 훨씬 아름다운 색채를 품고 있었다.
평소 작업할 때 즐겨 쓰던 코발트블루의 실체를 마주한 기분이다. 시린 푸른 바다와 하얀 성당이 만들어내는 선명한 대비 덕분에 머무는 내내 설렘이 가라앉지 않았다.
가족들은 성당의 좁은 골목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바다를 찾아 숨바꼭질을 했고, 술래가 된 나는 그 찰나의 행복을 렌즈 속에 담아내느라 분주했다. 어느덧 태양도 졸음이 밀려오는지 노란 눈을 뜨고는, 하얀 성당 벽면에 마지막 사랑의 온기를 비추고 있었다.
저녁이 다 되어 근처 유명한 맛집 '부에노스 아일레스'로 이동했다.
네 명의 시선이 바비큐 세트 메뉴판에 머물렀다. 치밀하게 계산하고 연구한 끝에 '2세트면 충분하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주문을 마쳤다. 하지만 잠시 후 테이블에 놓인 고기 더미는 우리가 상상한 양의 정확히 두 배였다.
어딘가에서 착오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언어의 장벽 때문이었을까, 혹은 모르는 척 넘어간 누군가의 노련함이었을까. 하지만 우리는 그 원인을 파헤치는 대신, 이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너무나 저렴한 가격, 그리고 입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풍미가 모든 의구심을 잠재웠기 때문이다.
남은 음식을 호텔로 싸 들고 와 이튿날 다시 마주했을 때, 그 고기는 전날보다 더 깊은 맛을 냈다. 여행지에서 수없이 먹었던 정갈한 식사들보다, 이 '배부른 착오'가 훨씬 더 오래, 그리고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갔다면 이 식사는 수많은 여정 중 하나로 스쳐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쏟아져 나온 고기 더미 앞에서 우리가 선택한 '기꺼운 수용'은 여행의 만족도를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 되었다. 여행은 결국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을 즐거운 추억으로 치환해가는 과정이며, 가끔은 그 사소한 어긋남이 여행을 완성한다
때로는 정답보다 오답이, 정확한 해석보다 기분 좋은 오역이 여행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그날의 배부른 착오는 우리에게 완벽한 계획보다 훨씬 더 긴 여운을 남겼다.
*사진은 당시 현장에서 직접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