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앤 피스

사랑과 평화

by 이성대

사랑과 평화

러브 앤 피스


시대와 같이 낡아버린 듯한, 되감아지다만

늘어진 카세트테이프 같은 문구


나는 요즘 연필로 테이프를 다시 되감지 않게 되었다.

되감기만을 사용하는 오디오


그렇게 서랍 속에서 꺼내 옛날 노래를 듣는 것처럼

가끔 입안에서 되뇌이곤 하는 그런 문구였다


사람들은 글에 말과 힘이 있다고 믿고 자주 말한다

러브 앤 피스


조금 더

세상이 사랑하고, 서로를 더 돌아보라고

촌스럽게도 말해본다


사랑의 손동작을 뻗어본다.

하늘 달에 사는 달토끼는 소원도 들어준다고,

내 방에도 토끼 하나 채워본다.

러브 앤 피스


2025년, 9월

혐오가 흩날리고, 존엄은 발밑에서 구르는 거리

지구 반대편

화염에게 빼앗긴 별의 자리

그림자를 아이들에게 과시하는 생명 없는 날갯짓


러브 앤 피스

사랑과 평화가 멀어져 버린 그런 밤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직장 동료들과 함께한 태국여행은 마치 항해 중의 쉬어가는 마도로스의 항구들 중 하나같이 느껴졌다.

태국의 음식들은 6시간의 비행거리와는 무색하게 입에 잘 맞았고, 보행자 신호가 없는 8차선 왕복도로와 골목에서 풍기는 대마냄새는 입을 텁텁하게 만들었다.


태국의 카오산로드는 화려했었다.

국적, 인종, 언어, 어쩌면 성별까지도 모든 게 뒤섞인 듯한 인파들의 거리는 2개 정도의 블록을 가득 채웠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서로의 구분선, 정해진 듯한 구역, 조금만 걸어 다니고 들여다본다면 느껴지는 것들.

인종의 도가니라고 불리는 나라들 조차 사실은 계층화, 조각화 되어있는 사실은 모두 알고 있지만, 굳이 꺼내고 들여다보지 않는 것들.

나는 큐브를 완성해서 보관하지 않고, 뒤섞어 놓은 채로 책상 위에 자주 두곤 하는 사람이었다.


맥주와 칠리와 고수를 곁들인 새우요리를 먹고 나서 250바트(한화 약 만천원)의 발마사지를 인파가 잘 보이는 간이 의자 위에 누워서 받고 있을 때였다.

눈앞에서 소란이 일었다. 흑인관광객 무리와 큰 봉투를 안고 있는 사람과의 언쟁이 보였다.

봉투를 안고 있던 사람은 태국 현지인처럼 보였지만,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의 땀에 젖은 얼굴은 이 열대 기후의 익숙한 사람들의 이목구비의 형태는 거리가 멀었고, 한국보다 더 북쪽에 있을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검은 눈동자, 부드러운 반곱슬 머리, 입체적인 이목구비 어딘가 여성적인듯한 몸선은 여기 카오산로드에서만 이해받을 수 있을까. 얕은 생각이 지나갔다.


관광객과 그 남자는 각자의 언어로 대화를 시도해보려 했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관광객 무리가 그를 밀쳐내며 지나가는 것으로 소란은 잠잠해졌다.

관광객들은 곧장 댄서가 춤추고 있던 펍으로 들어갔고, 남자는 인파 사이로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눈앞에서 작작지는 동안 나는 한참을 고민하였다. 그가 밀쳐지며 넘어질 때 떨어트린 듯한 붉은색 스카프를 주워서 전해주어야 할까


나는 사진만을 찍었을 뿐이었다.






집에 있는 오디오로 이전의 노래들을 들을 때, 빨리 감기 버튼을 누른 적이 오래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