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이후에도 그는 우리보다 한 발 앞서있다.
"Love dares you to change our way of Caring about ourselves."
사랑에 관하여 이러한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아티스트는 대체 어떤 사람(존재)일까?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보위를 알게 된 건 2007년쯤 독일 친구집에 놀러 갔을 때, 앤디워홀과 같은 하얀 은발머리를 하고 계시던 친구 아버지가 보위의 음악을 들어보았냐고 물어보았을 때였습니다.
그의 LP컬렉션을 둘러보며 글램록? 이게 뭘까 하며 휘황찬란한 메이크업과 의상으로 치장한 록뮤지션을 바라보던 제 흥미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 유행했던 비주얼록에 영향을 끼친 분인가 보다.. 정도로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앨범 커버에 나타난 강한 시각적인 페르소나는 음악을 들어보지 않은 이들이 입문하는데 거리감을 들게 하는 요소였던 것이죠.
그때 그 분께 좀 더 진지하게 질문을 해보았다면, 독일의 6070세대가 갖는 보위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한 번쯤 인터뷰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기엔 너무 어렸습니다. 이렇게 예술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는 미래는 전혀 알 수 없던 천진난만한 시기였죠.)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된 건, 존경하는 선생님이자 대부로부터입니다. 어느 날 카톡으로 "Heros" 라이브 영상에서, 대디(보위)가 딸(베이시스트) 역할과 서로 Joke를 던지는 재밌는 장면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보위와 같은 록전사들의 투쟁과 헌신... 변방의 문화인 록을 인류애의 중심에 놓은 힘의 원천..." 등으로 그의 선지자적 위상을 되새겨주셨습니다.
2023년 초겨울 방문한 런던에서 헤매던 골목길들, 마주한 길목마다 보위의 유산을 가까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음악계에만 존재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박물관과 미술관, 폐허가 된 상점의 그래피티...
그의 영성은 여전히 예술이 자리한 모든 곳에서 호흡하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예술인가, " "예술가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 가, " "끊임없이 자신을 화형대에 서있는 것처럼 앉은자리가 편치 않아야 하는 예술가의 태도"를 이야기하는 그의 표정에서는, 세계적 록스타라는 명성의 자신과
거리 두기 하며 성찰적 입장을 견지하려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그는 음악가이면서 문학가이고 미술과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공부했으며, 손에 닿는 모든 질료와 매체를 이용하여, 미래지향적 예술 비전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이제부터 데이비드 보위의 Imaginary Future를 쫓아가보는 연재를 해보고자 합니다.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 마주친 보위, 2023년 11월
이 연재의 부제는
"Here am I floating 'round my tin can, far above the moon.
Planet Earth is blue, and there's nothing I can do."
난 내 양철 깡통 주변을 유영 중이야. 달 위 저 높은 궤도 속에서,
지구는 푸르고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 “Space Oddity,” (1969, 앨범 Space Odd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