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2018년 7월의 어느 무더운 날 저 멀리 한강의 뷰가 아름답게 펼쳐진 7층 어느 병실에서 남편의 췌장암 선고를 받았다.
그동안 직업상 숱한 환자와 보호자에게 암 진단을 전달했을법한 담당 의사는 무미건조하게 말끝을 흐리며 일단 항암부터 시작하자고 말을 했다.
짧지만 간단명료한 의사의 설명으로는 병의 진행상태로 봐서 항암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6개월 정도를 살 수 있고 항암을 해서 길게 버티면 2년까지도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적인지 절망적인지 도무지 분간도 안 되는 여명에 대한 안내를 암 진단의 별책부록처럼 전해주었다.
남편과 내가 그렇게 암 진단을 받고 있는 시간에 한강에서는 유람선이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유유히 강물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제 막 사랑하는 사람의 암 진단을 받아서 지옥문에 들어가려고 지옥문의 손잡이를 잡고 있는 나의 처지에 안 어울리게 유람선은 너의 절망은 내 알바 아니라는 듯이 평화로웠고 수면 위를 비추는 반짝이는 햇빛은 찬란하고 눈이 부셨다.
그 순간은 모든 것이 정적이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같은 병실의 다른 사람들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이고 병원 밖으로 나왔고 어느 나무 그늘 아래에서 남편과 나, 그리고 우리 집 장남은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 부둥켜 앉고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하필.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암 이름 중에서 가장 듣기 싫었던 두려운 췌장암이라니.
하나님, 당신 너무한 거 아냐?
혹시 당신 치매야?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
왜, 우리에게 이렇게 가혹한 형벌을.
그동안 드라마에서나 봤음직한 그 잔인한 췌장암을 직접 만나고 나니 나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올라오는 고통과 억울한 심정은 뭐라 표현조차 되지 않았다.
남편을 병원에 남겨두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가로수 잎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예쁘다.
소곤소곤 자기들끼리 사이좋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
이런 날, 길거리를 숱하게 지나다니며 봤을법한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조차도 내게는 낯선 손님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아! 어쩌면 내년 이맘때에는 남편이 내 옆에 있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짧으면 6개월을 산다 했으니 아마도 내년 이맘때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 도 있겠구나.
그러면 내 남편은 이 아름다운 나뭇잎들이 바람에 살랑거리는 모습들을 절대로 볼 수가 없겠지.
서러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내 남편은 나한테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백인데. 그동안 그 든든한 백 때문에 내가 맘 편하게 살았는데 이제는 그 하나밖에 없는 명품백도 거둬간다네.
세상 참 얄궂다.
난 혹시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꿈이라면 제발 빨리 깨어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