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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뿔난 토끼 Mar 28. 2021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야.

암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몰랐을 것들

 

남편이  매일 아침마다 눈을 뜨면 맨 처음 하는 일은 공복혈당을 체크하기 위해 혈당기로 자가 혈당 측정을 하는 것이고, 혈당 체크를 한 후에 인슐린 주사를 맞으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남편에게 아침 공복혈당 체크는 그날의 일기예보나 다름없다.

아침밥을 먹기 위해서는 혈당이 낮은지 높은 지를 먼저 알아야 그 날 아침밥을 어떻게 먹을 것인지가 결정되기 때문에 남편은 매번 혈당을 체크해서 혈당이 높으면 가벼운 아침식사를 하거나, 혈당이 낮으면 자제하고 있던 식탐까지 소환하여 밥을 넉넉히 먹어주고, 혈당이 생각보다 아주 높으면 아예  한 끼를 굶는 경우도 있다.

평소에도 식탐이 많은 남편인데, 아프기 전에는 생각 없이 마음껏 먹었던 음식들이 1형 당뇨환자가 된 이후에는  빵 한 조각을 먹더라도 당지수를 계산해가며 먹어야 하니 때에 따라서는 서글플 때도 있다고 했다.

살기 위해서 먹던지  먹기 위해서 살던지, 먹는 즐거움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기본이 되는 행복의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지만  당뇨로 인해  먹는 즐거움을 통제당한 남편은 늘 먹거리에 대한 갈증이 있다.     

췌장암에 걸리기 이전에도 먹는 것을 좋아해서 군것질도 곧잘 했는데, 췌장암 수술 후에는 당뇨환자가 되었으며, 그 후에는  매번 허기가 지고 일 년 삼백 육십 오일 중에 삼백 육십 육일이 한결같이  배가 고프다고 한다.

이런 남편이니 가끔씩은 마누라의 눈치를 보며 과자 부스러기나 빵조각을 입에 넣다가 강제로 압수당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남편의 큰 눈에 아주 잠깐씩 이슬이  비친다.

이럴 때마다 남편의 일용한 양식인 먹거리를 낚아채야 하는 마누라의 멘트는 한결같다.

"나도  웬만하면 이러고 싶지 않은데 팔십까지 버티려면 이 정도는 참아야지."

"안 그래도 딱 하나만 먹고 참으려고 했어."

마지못해 먹거리를 내주면서도  남편은 무척 아쉬워한다.

"참아줘서 고마워."

"나도 고마워."

이런 식의 대화가 남편이 당뇨환자로 등극한 이 후에 벌어지는 사랑으로 가득 찬 우리 부부의 일상적인 대화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늘 그렇게 남편의 겁 없는 식탐을 견제해주는 바람직한 조력자인 마누라를 남편은 결코 서운해 하지 않고 순응해준다.     


아프고 나서 남편과 내 생활에는  절제해야 하는 것들이 늘어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삶은 한없이 감사하기만 하다.               

그동안 남편이 췌장암에 걸리고 나서  우리 부부가 암 치병을 하며 걸어온 지난 길은 어쩌면 실수투성이이고 허점투성이 였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매 순간마다 주어진 우리의  삶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을 했다.

어느 길이 최선인지는 모르지만 단 한 번도 희망을 포기한 적이 없었고,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절망을 생각하지 않았다.   

  

아프기 전에도 늘 자상하고 사려 깊었던 나의 든든한 백이었던 남편.

세상 사람들이 다 네가 틀렸다고 비난해도 마지막까지 네가 옳다고 나를 감싸줄 영원한 내편.

그런 내편이 많이 아파서 나는 내 하나밖에 없는 명품 백을 잃어버리게 될까 두려웠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의 소중한 명품 백인 남편은 아직까지 건재하고, 비싼 명품 백 값어치를 하느라고 가끔씩 치병하는 중에 돌발 상황으로 이런 저런 신경을 쓰이게 만들기는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 명품백과  마주 보고 앉아서 밥도 먹고 수다도 떨고 커피도 마실 수 있다.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모르긴 해도 남편이 암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런 평범한 일상이 진정한 행복인 줄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오늘도 남편과 마주 보고 밥을 먹으며 문득 드는 생각.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 기도를 들어주셔서요.

제 명품 백을 거둬가지 않으셔서요.

덕분에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도 귀한 선물처럼 잘 쓰고 앞으로도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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