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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뿔난 토끼 Mar 05. 2021

이웃의 불행은 나의 행복?

제발 그러지 좀 마!


남편이 췌장암 진단을 받고 난 후에 워낙 입소문이 안 좋은 암이기도 해서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면 무슨 짓이라도 다 시도하고 싶을 만큼 절박한 마음으로 암 카페에 가입해서 질문도 하고 정보도 구했다.     

어차피 세상은 나 혼자만이 사는 세상이 아니라서 그런지 암 카페에는 이미 암을 경험해 본 암환우 선배들도 다수 있었고 나처럼 가족이 암에 걸려 정보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연일 문전성시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매일 올라오는 새 글이나 지난 글들을 뒤적거리며 암 치병에 도움이 될 만 한 정보를 모으고 또 모았다.     

그러나 워낙 예후가 지랄 맞은 췌장암이라서 그런지 희망적인 단서보다는 극심한 암성 통증을 줄이는 데에는 어떤 진통제가 잘 듣는다는 등의 암울한 정보들이 눈에 잘 띄었다.     

정말 두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메일을 열었다가  내게 날아온 쪽지를 여러 개 발견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랬다.     

"안녕하세요? 제가 잘 아는 암 환우분이 이  치료받고 효과를 많이 봤어요. 여기는 부산입니다.  연락 주세요. 010-000-0000"     

"카페 글 보고 연락드립니다. 췌장암은 어떤 치료보다도  일본의  중입자 치료가 살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수술하면 살 수 있는 확률이  20%이고,  중입자 치료는  50%  확률이 있습니다. 관심 있으면  연락 주세요. 010-000-0000."     

내가 모르는 낯선 이들이  내게 쪽지를  보내서 췌장암 환자에게 도움이 돼주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고마웠고 뭔가 살 수 있는 희망적인 방법이 이것들 중에 하나라도 있을 것 같은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이어 여러 고심 끝에  의료선진국인 일본의 중입자 치료 쪽에 마음이 끌려 전화를 했다.     

상대방은 내게 현재 남편의 췌장암 진행상태를 물어봤고, 열흘 후에 병원 수술 일정이 잡혀있다는 말을 듣더니 잠깐 실망감을 내비치며 당장 급하게 중입자 치료를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전문가적인 지식까지 곁들여서 자신 있게 내게 충고를 했다.     

"동맥이 있는 부분의 암을 수술로 없앤다고요? 그게 가능해요? 절대로 못해요. 병원을 어디까지 믿어요? 이제 보니 당신 남편은 병원 실험용이네. 병원에서 수술 받다 죽어도 의사들 아무도 책임 안 져요. 내 말대로 중입자 치료받아요. 어차피 췌장암은  열 명 수술하면 아홉 명은 도로 재발해서 결국엔 다 죽으니 수술해도 살 확률은  20%도 안돼요. 그러니 중입자 치료를 받아야지요."               

나는 원래도 공부 쪽으로는 머리가 전혀 발달을 못해서 학창 시절 성적도 늘 밑바닥이었지만 특히나 수학을 잘 못했다.  그래도 50%와 20%의 살 수 있는 확률을 놓고 고르라고 하면 바보 천치가 아닌 이상 50% 쪽을 골라야겠지.      

수술인지 중입자인지 둘 중 하나를 선택했을 때,  쓰리 고는 못 먹어도 피 박은 면해야 하니까.     

결국 수술을 포기하고 중입자 치료를 받으러 가기로 결정을 했다.     

중입자 치료를 받으려는 절차는

환자가 병원에서 검진 받은 검사 결과를 담은 CD와 200만 원의 수수료를 일본으로 보내면 그쪽 병원에서 검토해보고 일주일 만에 중입자 치료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답변이 온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의 경우에는 이미 열흘 뒤로 수술 일정이 잡혀있어서 중입자치료를 시도하기에도 시간이 촉박했다.     

더군다나 췌장암은 천천히 진행되는 다른 암과는 달리 성질도 더러워서 빨리빨리 진행되는 암이니 한시가 급했다. 그래서 더욱 서둘러서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당장 남편의 중입자 치료를 도와줄 사람과 만날 약속을 잡았다.               

그러나 인생이 늘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나는 그 당시에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일본의 중입자 치료를 도와주는 사람과 만나기로 약속한 날에 하필이면 어린이집에 학부모 모니터링이라는 점검이 있었고,  학부모 모니터링 점검을 받고 나니 우리의 중입자 치료를 도와주기로 했던 사람과 만날 약속시간을 지킬 수가 없었고,  이 쪽에서 진료내용이 담긴 CD가 출발해도 시원찮을 시간에 나는 어린이집 점검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중입자 치료는 시도도 못해보고 막을 내릴 수 밖 에 없었다.               

이제 가지고 있던 두 가지의 패 중에서 중입자는 물 건너갔으니 우리에게 남은 한 패는 싫든 좋든 수술밖에 없었다.     

하지만 중입자치료를 도와주겠다던 사람이 했던 말처럼 내 남편이 수술실에서 병원 실험용이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에 숱한 불면의 밤을 보내는 고통의 시간이 지속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수술날짜는 서서히 다가왔다.     

수술 전날 밤, 수술절차에 대한 안내를 해주던 인턴의 말로는 수술실에 들어가서  한 시간 전후로 보호자 호출이 없으면 수술은 무사히 끝나는 것이고 만약에 보호자 호출이 있을 경우에는, 두 가지의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배를 열었는데 암이 전신에 퍼져 있어서 손도 못 대고 다시 닫아야 할 때와 수술 도중에 쇼크사로 죽음에 직면했을 때라고 했다.

그런데 수술 도중에 쇼크사로 죽을 확률은 거의 미비하니 안심하라는 친절한 안내도 곁들여줬다.

‘그래, 별일 없을 거야, 췌장암은 수술만 할 수 있어도 운이 좋은 거라 했으니 분명 수술은 잘 될 거야.“          

남편이 수술실에 들어간 후 나는 평소에 잘 믿지도 않는 여러 신들을 모조리 호출하여 기도를 하고 있었다.     

하나님, 부처님, 산신령님, 조상님, 제발 이번 한 번만 제 남편을 살려주세요. 제발.....               

그러나 나이롱 신자의 기도 빨은 역시나 먹히지 않았을까?     

수술 들어간 지 정확히 한 시간이 지났을 때 수술실에서 보호자 호출이 왔다.

나는 눈앞이 캄캄하고 절망감에 맥이 풀렸다.

‘역시 병원을 믿는 게 아니었구나. 내 남편은 진짜 병원의 실험용 환자였나 보다. 그러지 않고서야 수술 들어간 지 한시간만에 보호자를 호출하다니. 이제 어쩌지? 인턴의 말로는 거의 확률에 없다는 쇼크사로 내 남편은 죽는 것인가? 이렇게 허망하게 남편과 헤어지다니.’     

남편을 만나러 수술실로 향하는 길이 너무 멀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똑바로 걷기도 힘들고  눈앞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내가 수술실에 도착할 때까지 남편이 숨이라도 쉬고 있어야 살아있는 얼굴을 보고 마지막 배웅을 해줄 텐데 내가 갈 때까지 남편이 나를 못 기다리고 저세상으로 건너 가버리면 어떡하지?'          

머릿속에서 온갖 불길한 상상을 하며 가까스로 수술실에 도착했고, 

수술실에서는 기다리고 있었던 의사 선생님이 침착하게 남편의 상태를 내가 이해하기  쉽도록  췌장의 그림까지 그려가며 자세히 설명을 했다.     

"개복을 하고 보니 암이 췌장 전체에 꽉 차있어서 췌장을 남겨둘 수가 없어요. 애초에는 췌장 반과 비장만 절제하기로 했지만 췌장을 전부 절제하는데 보호자 동의가 필요해요."

그 순간 나는 남편이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일말의 안도감을 느꼈다.

‘휴, 다행이다.  적어도 남편이 저세상으로 간다는 쇼크사에 대한 통보는 아니었구나.’

그런데  남편이 현재 살아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지만 곧바로 또 다른 걱정이 생겼다.

"저 선생님, 췌장이 없어도 사람이 살 수 있나요?"

"네. 당뇨가 생겨서 불편하지만 사는 데는 지장 없어요."

췌장이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에 나는 가까스로 안도감을 느꼈다.

"그럼 제발 살려만 주세요. 췌장이 없어도 살 수 있다면 괜찮아요."               

이때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신과 잘 알지 못하는 모든 신에게조차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부처님, 산신령님, 조상님 그밖에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모든 신 들님, 모두 감사합니다.

제 남편을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기도를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동안 남편이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까지 혹시라도 병원의 실험용 환자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숱한 불면의 밤을 지새웠지만 남편은 그때 무사히 수술을 잘 받고 순탄하게 회복되어 지금은 건강한 모습으로 어느덧 췌장암을  진단받은 지 3년의 시간을 지나오고 있다.               

만약에 그때, 나에게 학부모 모니터링이라는 점검이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나는 췌장암을 극복하고 살수 있다는 20%의 수술 확률을 포기하고, 살 수 있는 50%의 높은 확률을 잡겠다고  일본의 중입자 치료를 시도했겠지.      

그런데 중입자 치료는 수술에 비해 비용도 많이 드니 아마도 돈도 많이 날렸겠지.     

그리고 어쩌면 췌장암 수술 시도도 못해본 상태에서 막연하게 병원에 대한 끝없는 불신만을 품었겠지.          

그날 이후, 나는 가끔 암 카페에서 비싼 일본의 여러 치료들을 부추기는 글을 볼 때마다 나의 경험을 생각하며 불편한 마음이 든다.     

내 경험상으로만 봐도 암 환자들이나 가족들은  암에 걸려서 절박한 상황이 되면 판단력도  흐려지고 이성을 잃는다.     

나 역시도  암이 나을 수만 있다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시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고, 암과 헤어질 수만 있다면 양잿물이라도  퍼 먹이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니 암 환자나 그 가족들의 극한 상황에 처한  심리를 이용하여 교묘하게 돈벌이와 결부시키는 일들은 암 환자와 비례해서  어제도 일어났고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계속 일어나게 될 지도 모른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여기저기 암이 전이가 돼서 중입자 치료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경우에도  돈을 벌기 위해 중입자 치료가 가능한 것처럼 속여서 암 환자를 독일까지 보내 놓고 독일에서 죽음을 맞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럴 경우에 가족이 암 진단을 받은 것도 서러운데 많은 돈까지 탕진해가며 먼 이국땅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경험까지 겪게 된다면 암 환자나 그 가족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극한 고통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쓸데없이 불행한 경험을 축적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암 진단을 받은 환자나 그 가족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이성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암의 치료에 대한 공부를 하여 암의 완치를 위한 노력을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옛 속담에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있지만 암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은 독’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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