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쌓인 먼지, 화장실의 물 때들

by 윤슬

나는 대한민국 30대 후반의 평범한 가정 주부다. 사실 내가 평범한 가정주부인지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가정주부인지는 잘 모르겠다. 요즘 우리나라 주부들의 평범함의 기준은 대체 뭘까?


평소 집안일, 음식, 육아, 글, 부업을 병행하면서 매일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다. 완벽은 아니더라도 어느 것 하나라도 티 나게 잘하고 싶지만, 모든 걸 병행하다 보니 이것도 저것도,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 것이 힘든 것 같다.





나는 19살 때부터 30살 결혼 전까지 스스로의 경제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했었다. 때문에 처음 결혼하고 오롯이 남편 혼자 벌어 오는 돈을 쓰는 게, 이상하게 조금은 눈치가 보이고 익숙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내가 벌어 내가 쓰던 돈에서 아무리 신랑이라고 한들, 타인이 번 돈으로 내가 쓴 돈에 대해 얘길 나누는 일에 괜스레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그러다 집에서 부업을 시작하고 스스로 조금이라도 경제활동을 다시 시작하니 한결 고민스럽고 답답하기만 했던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그 당시 왜 육아와 살림을 맡아하고 있음에도 그런 생각에 계속 사로잡혔던 것일까?




고열에 시달린 지 3일. 열이 오르면 정신이 아찔하게 아프고 또 약을 먹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약빨(?)로 잠시 글을 쓰고 쌓인 일들을 처리했다.


그 시간 동안 밀린 설거지와 빨래들, 쌓여버린 급한 업무들을 대충 해치워도 매울 수 없는 '티'들이 눈에 띄었다. 집안 곳곳에 쌓인 먼지, 그리고 화장실의 물 때들이 그것이었다.




"내가 뭘 한다고 맨날 이리 피곤한 거지?"
"지금은 애만 키워도 피곤해서 몸살약을 달고 살 때가 맞아. 네가 뭐 원더우먼이나 되는 줄 아냐?"



엄마는 늘 내게 피곤한 게 당연하다고 말씀하셨지만, 평소엔 일인 다역을 하며 그 모든 것들을 소화해내면서도 스스로 왜 이토록 피곤한 것인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오늘 내 눈에 들어온 집 꼬락서니를 보니 평소 내가 피곤할 게 당연하구나 싶다. 시간에 쫓겨가면서 나를 괴롭히더라도 모든 걸 티가 나지 않게 해내고 있었던 스스로가 비로소 보였다.


매일 반복하면 티가 나지 않는 일들, 그래서 우린 이 부분의 노동의 크기와 중요성을 너무도 쉽게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하루만 집안일을 내려놓아도 집안은 엉망이 되었고, 아픈 와중에 짬짬이 밀린 일들을 해치워도 3일이 지나니, 대충대충 매워선 꾸준히 내 손이 닿지 못한 티들이 쌓여만 갔다.




화장실 세면대에서 손을 씻다 문득, 난 무엇에 자꾸 쫓기는데.. 분명 무엇이 날 쫓는데 그 실체를 알 수 없으니 나 혼자 바보가 된 느낌이 들어 잠시 멍했다.


집안에 쌓인 먼지, 그리고 화장실에 낀 물 때들이 내게 말해준다.

이 멍청아, 이 답답아. 너 지금 진짜 아픈 게 맞아.



나는 왜 계속 무언가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나를 쫓고 있는 건 정말 나의 조바심뿐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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