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힘겨울 때에는 사람의 본성이 드러난다. 정신적 혹은 이상적인 것들에 대해 개인들이 저마다 맺고 있는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비록 맛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외적인 삶을 익숙하게 뒷받침해 주던 것들이 사라지거나 파괴되었을 때 그것들은 비로소 진가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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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하고 고통스러운 시기만이 진정한 우리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우리를 떠나지 않고 충실하게 남아 있는지 알 수 있다. 좋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괴테의 글이나 성서의 글귀가 훌륭한 강의 자료나 좋은 음악이 될 수 있지만, 궁핍과 굶주림과 근심으로 인해 삶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을 때에는 아무것도 소용이 없다. 그런 사람은 문화가 가지고 있는 가치를 그저 즐기고 누리는 것에만 두고, 막상 어려운 시절이 닥치면 그런 가치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는 책이 없으면 정신세계를, 콘서트 정기권이 없으면 음악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불쌍한 사람일 뿐이다. 그는 분명 좋은 시절에도 정신세계와 올바르고 참된 관계를 맺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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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시간을 살아가면서 하늘 한 번 쳐다보지도 않고, 하루 동안 기분 좋고 생기 넘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도 없다. 일터로 향하면서 좋은 글귀를 읊조리거나 콧소리로 아름다운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는 죄수는 도처에 널린 화려한 아름다움과 달콤한 유혹에 심신이 지쳐 있는 사람보다 마음속 깊이 아름다운 것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다.
삶을 견디는 기쁨 중 / 헤르만 헤세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들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글을 씁니다.
문득,
비록 맛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외적인 삶을 익숙하게 뒷받침해 주던 것들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진가를 드러냈던 그것들을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정신적으로 궁핍했을 때 느꼈던 가난이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움의 부족으로 온, 내면의 허기란 것이 비참했던, 그 순간도 함께 떠올립니다.
책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진가들을 깨닫고 새긴 후, 소중한 것들을 대부분 되찾은 지금 너의 내면은 그때보단 부유해졌니?"
"응. 아주 조금은.."
언젠가는 이 물음에 '그래, 당연하지'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할 수 있는 '내면이 부유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순간에도 마음만은 부른 그런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