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문율의 발견

-소월삼대목 93-

by 김병주

격자무늬 행을 타고 활자들 뚜벅뚜벅 움직입니다 원고지에도 정문과 후문이 있습니다 활자들 불을 끄고 물을 틉니다 자간에서 밀물과 썰물이 반복됩니다 후미진 곳에 댄 쉼표는 더 출렁거립니다 지면의 활자들 화면을 보며 줄바꿈을 하기 위해 모여듭니다 업어온 감탄사를 가운데에서 벅벅 문지르면 지우개똥이 땅에 떨어집니다 출렁대는 자리에 기대어 자던 소문자가 꿈결처럼 쑥 내리꽂히기도 합니다 한번 땅에 떨어지고 나면 분간이 힘들어집니다 유순할수록 발은 넓고 덜 움직입니다 신앙의 차원에서 검은 점퍼를 갖춰 입으면 여백에 적응하기 불편합니다 최근엔 날이 흐린 탓에 싸구려 종이를 써서 그렇습니다 주방 밖으로 새어 나오는 헛기침 소리가 펜 뚜껑 닫는 소리를 모방합니다 정해진 마감을 지켜도 고료가 체불되면 물음표와 말줄임표를 늘립니다 지면을 갈아타면 새 리듬에 적응하느라 편두통에 시달립니다 따옴표 밖으로 날려 보낸 활자는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얼굴을 가리운 저자가 검은 양장을 걸치고 나섭니다 두 개의 현악 사중주가 연주되고 불이 켜집니다 (여기서 띄어쓰기)

작가의 이전글구오사하사트(Guovssahas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