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옷장을 공유할 수 없는 이유
한 때 공유경제 붐이 일었었다. 그리고 패션 산업에도 해당 트렌드를 반영한 서비스들이 출시됐었다. 바로 '패션 렌탈 서비스'이다. 나도 2020년도쯤에 국내 패션 렌탈 서비스 스타트업에서 첫 인턴을 한 적이 있다. 4년이 훌쩍 넘어서 '패션 렌탈 서비스들 다 어떻게 됐지?'라는 궁금증이 생겨 현황 검색을 좀 해봤다. 내가 다니던 스타트업 서비스 페이지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활발히 운영 중인 느낌은 아니다. 1호 패션 렌탈 서비스 기업이자, 상장까지 했던 미국의 Rent the Runway의 2024년 반기 Ebitda는 16% 수준이다. 이 마저도 진짜 렌탈로 이익을 봤다기보다는 중고거래로 이익을 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정수기 렌탈도 잘 되고, 자동차 렌탈도 잘 되고, 가구/ 전자기기 렌탈도 있다는데 왜 '패션'과 '렌탈'은 같이 갈 수 없을까? 물과 기름 같은 패션과 렌탈 산업의 특성에 대해 알아보자.
패션렌탈 사업은 말 그대로 기본적으로 옷, 가방, 액세서리 등 패션 아이템을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 사업이라는 점에서 수익모델은 유사하다. 다만, 렌탈 상품들을 어떻게 마련하느냐, 그리고 렌탈 과정의 어디까지 관여하느냐에 따라서 사업 방식이 조금씩 상이하다.
먼저, 가장 상상하기 쉬운 모델은, 상품을 직매입하고 모든 물류 과정을 내재화한 경우다. 해당 모델은 렌트 더 런웨이 (Rent the Runway)가 취한 방식이다. 재고 부담을 떠안고 옷을 매입해서 고객에게 옷을 보내고, 반품을 준비하고, 드라이클리닝하고, 창고에 보관하는 전반적인 물류 시스템을 모두 내재화한 케이스이다. 하지만, 이렇듯 물류시스템을 모두 내재화하면, 투입되는 비용이 엄청나다. 특히, 패션 렌탈 회사들이 대부분 소규모 스타트업임을 감안하면 더욱이 그렇다.
이에 제시된 대안들이 물류 벨류체인의 일부를 아웃소싱하거나 상품을 직매입하지 않고 P2P 방식으로 운영하는 by Rotation과 같은 모델이다. 그렇다면, 비용 부담을 덜어낸 모델을 가져갔던 기업들은 지금 건재할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직 기업 재무정보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매출이 발생되고 있는 기업도 없을뿐더러, 대부분 적자를 빠져나오지 못해 결국 중고거래 플랫폼이 되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고를 언급하니까, 문득 당근마켓, 번개장터, 베스티에르 컬렉션, 후르츠패밀리, 크림 등등 중고거래 잘 된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는데, 왜 그보다 가격이 싼 렌탈은 잘 안될까 하는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왜 패션 렌탈이 근본적으로 공급자 / 소비자 관점에서 지속가능하기 어려운 구조인지 분석해 보자.
패션 비즈니스 수익 창출 사이클과 렌탈 사업의 수익 창출 사이클이 불일치한다. 패션사업 감사할 때 회계사들이 가장 먼저 보는 것이 바로 재고자산이다. 패션은 트렌드가 매우 빠르고 트렌드는 통상적으로 정반합으로 진행된다는 속성이 있다. 때문에 이전 시즌에 유행했던 것을 다음 시즌에 팔기 어렵다. (Y2K 난리였다가 갑자기 올드머니다 뭐다 하고 있고, 미니백, 마이크로백 심지어 나노백 나왔다가 지금 빅백이 나와서 많은 패션피플들이 텅장이 될 위기에 쳐했다.)
그런데 한편, 패션 렌탈 사업은 결국에는 재고자산이 계속해서 쌓이는 구조다. 여타 패션 버티컬 서비스와 동일하게 다양한 브랜드와 다양한 스타일의 SKU를 갖춰야 한다. 하지만 해당 물량을 완전히 팔아버려 재고가 줄어드는 일반 기업들과는 다르게, 렌탈 서비스의 경우 그 많은 SKU 가 재고로 소진되지 않고 기업에게로 돌아온다. 그것도 소모되어서 돌아온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한 시즌 내에 단위 SKU (옷 한 벌) 당 회전율을 극대화하는 것일 텐데, 그것 역시 물리적으로 가능한 구조가 아니다. 렌탈 신청→출고→배송→사용→반납→세탁→재업로드 일련의 과정이 아무리 빨라도 일주일 이상은 걸린다고 가정하면, 한 시즌(3개월) 내 회전율을 극대화해 봤자, 최대 8번 정도일 것이다.
수요가 높은 제품을 잘 Merchandising 해서 회전율 극대할 순 없을까? 타 렌탈 산업 (자동차, 가구, 정수기 등)과 비교해 보면 '옷'의 대여 주기가 너무 짧아서 과금 수준도 낮을 수밖에 없고 사이클이 짧아서 운영비용도 더 많이 들어가는 구조이다.
이렇듯, 공급자 관점에서 패션 렌탈은 구조적으로 한계가 많은 사업이다. 그럼에도 소비자 관점에서 패션 렌탈 사업이 왜 탄생한 건지는 알 것 같다. 나처럼 옷 좋아하는 사람들은 옷을 많이 사도 항상 부족하고 결국 몇 번 안 입고 옷장에 쌓아두게 된다. 사업화되기는 어렵지만 소비자 관점에서는 수요가 있는 사업이 아닐까? 그래서 자꾸 기업들이 미련을 못 버리고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건 내가 직접 경험해 본 결과, 수요자 측면에서도 그 매력이 지속되지 않는다. 나도 처음에 스타트업 들어갔을 때 옷에 미친 사람으로서 '오 이런 서비스 있음 내가 계속 쓰겠는데?' 싶었다. 그런데 막상 서비스를 이용해 보니, 사업모델의 Target Audience의 니즈 및 소비 성향이 사업이 제공하는 가치와 불일치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사업의 Target Audience는 패션 고관여자일 가능성이 높다. 옷을 빌려서까지 이것저것 다양하게 입어보고 싶은 사람, TPO에 맞게 옷을 신경 써서 입는 사람 등. 더불어, 등록 상품들 자체도 회전율 극대화/ 소모 최소화/ 소비자들의 욕망 자극을 위해 럭셔리 혹은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대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재고/ 회전율 이슈를 생각해 보면, 플랫폼에 유행 지난 옷들이 많이 쌓여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트렌드 따라가기 가랑이 찢어지니까 렌탈해 볼까 하는 건데 막상 들어가 본 사이트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인기 있는 옷들은 사람들이 너무 빌려서 허름한 경우가 많다는 문제도 있다.
그럼 역설적으로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는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이익에 초점을 맞추는, 예를 들어 결혼식을 가야 하는데 트위드에 2-30 만원 쓰느니, 무난하고 유행 안 타는 옷을 3-4 만원 주고 빌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서비스를 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기존의 소비 패러다임을 바꾸면서까지 (구매→렌탈) 패션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할 의향이 아무래도 적을 것이다. 여기서 패션 렌탈 사업이 그들의 Target Audience를 제대로 소구 할 수 없는 모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소비라는 것, 특히 욕망의 산업인 패션의 경우 ‘소유’했을 때의 짜릿함 때문에 소비를 하기도 한다. 실제로 나도 옷을 빌리다가 특정 브랜드 알게 되었고 이후 그냥 해당 브랜드의 새 제품을 사거나 비슷한 스타일 검색해서 새 제품을 샀던 경험이 있다. 무난한 옷을 렌탈하자니 ‘그냥 사자’라는 생각이 들고 특별한 옷을 렌탈하자니 특히 한국에는 그런 Occasion 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까지 패션 렌탈 사업의 구조적 한계를 공급자와 소비자 관점에서 살펴봤다. 너무 다 '응 아니야. 응 안돼' 이런 것 같아서 전에 일했던 회사에서 연락이 오는 건 아닌가 후한이 두렵다.
실제로 Vivrelle이라고 드라이클리닝이 필요 없고 감가상각이 좀 느린 고급 액세서리 대여/ 구독 서비스가 있는데, 이렇게 렌탈 산업의 한계를 일부 극복할 수 있는 재화를 선택한 사업모델은 성공할 수도 있겠다. (근데 도난이 일어나면 리스크가 너무 큰데...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