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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설 Oct 20. 2024

불씨

세상엔 신화의 불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많다.

어떤 이의 마음속엔 푸른 불꽃이 또 다른 이들에겐 붉은 불꽃이 이와 다른 이들은 각기 다른 색의 불꽃을 가진 자들이 정말 많다.

그 색이 옅든, 달라 보이 든 상관없이 마음속에 불꽃을 담아낼 수 있는 거대한 봉화를 가진이들.


난 그들이 정말로 부럽다. 좀 더 솔직하게 다가가보면 질투가 난다.

어째서 나는 불을 피워낼 수 없을까? 난 왜 아무런 색도 나오지 않는가? 난 어째서 금방 꺼져버리고 마는 것인가?

마음속에서 아무리 외쳐보아도 싸늘한 바람만이 불어올 뿐이다.


그렇게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때가 아닌 거지, 언젠간 불이 붙겠지, 잔불로는 거대해질 수 없어 기다리자, 연료가 부족하네 좀 더 좋고 비싼 연료를 얻을 때까지만.. 등등


이런 말들이 위로가 되지만 정작 마음엔 먼지만 쌓일 뿐이다.

어쩌다 한번 잊어버렸던 마음속을 바라봤다. 하얗게 쌓인 먼지들, 여기저기 무너진 잔해들, 잿더미만 수북이 쌓인 이젠 어떤 모양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그것에 가만히 서서 바라보았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슬피 울었을까.

얼마나 목놓아 분노했을까.


저 먼지들, 저 잿더미들, 모두 하나의 불꽃을 피워보려고 만들어 놓은 소중한 것인데

온갖 비교에 스스로 상처받고

온갖 무시에 스스로를 무시해 버렸다.


무엇이 중요했을까. 어째서 불꽃을 피워보려고 했을까. 그 모든 것들은 저 이름 모를 것에 잔해 속에 잿더미 속에 파묻혀 버렸다.


바람이 불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완전한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그제야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너진 잔해를 치우고 먼지를 털어내고 수북이 쌓여 있는 곳에 나뭇가지 몇 개를 넣어본다.

투둑, 다 꺼진 잿더미 속 보이지 않는 불씨가 옮겨 붙었다.


순식간에 큰 불이 되지는 않았다. 그저 타닥, 타닥 거리는 소리만 들려오는 작은 주황빛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옆에 놓인 나뭇가지를 넣어 더 크게 만들어 보려고 했지만

몇 개를 집어 묶은 다음 불을 옮겨 붙였다.


아까보다 더 작은 불꽃, 바람에도 흔들리는 가련한 불꽃.

 이곳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불꽃이 손에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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