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성 Oct 23. 2023

중국현대사, 집필동기, 주요 내용

박인성의 중국현대사(머리글 1)

2004년 9월 학기부터 2014년 8월까지 꼭 10년간 중국 저장성(浙江省) 항저우시 소재 저장(浙江)대학에 근무하던 시절 이야기이다. 당시 내가 소속된 토지관리학과는 원래 저장농업대학 캠퍼스(校区)에 있었고, 기분 전환이 필요하거나 하면 가끔 가던 중고책 서점이 자전거로 10여 분 정도 펑치로(凤起路) 대로변에  있는 건물 지하 1층에 있었다.


彭德怀自述

저장대학(浙江大学)에서의 생활 3년 차였던 2006년 가을 학기 어느 날에 그 서점에 들어서 서가들을 어 보던 중에 어느 서가 한쪽에 꽂혀 있던 '펑더화이 자술(彭德怀自述)'이란 책이 눈에 잡혔고, 순간 “왜 ‘자술(自述)’이라 했을까?”라는 의문과 호기심에 그 책을 뽑아 들었던 그 순간이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시 생생하게 떠오른다. 선 채로 대강 훑어보았고, 곧 그 책의 내용이 과연 일반적인 회고록이나 자서전류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펑더화이가 누구인가? 1950년 6월에 발발한 한국전쟁 당시에 중공 지원군 총사령관으로서, 압록강 변까지 밀고 올라온 미군과 국방군을 다시 서울 남쪽 평택-안성-제천-삼척 선, 즉 북위 37도선까지 밀어붙이고 결국 정전협정을 이끌어낸 후 개선장군으로 베이징으로 귀국한 중공의 명장으로, 귀국한 후에 중공 군부와 중앙정치무대에서 국방부 부장과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국무원 부총리 등을 역임하면서 승승장구했었다. 그러던 그가 1959년 장시성(江西省) 루산(盧山)에서 마오쩌둥(毛澤東)에게 ‘대약진운동’ 중에 발생한 문제점을 직언한 후 ‘우파 반혁명 집단 두목’, ‘소련 첩자’로 몰려서 숙청당했고, 1966년, 소위 ‘문화 대혁명’ 대동란이 발발한 후에는 전담 조사조(專案組)와 홍위병들에게 혹독한 심문과 폭행, 학대를 당하다 1974년 11월 29일, 구금 상태로 베이징의 군 병원에서 심신이 파괴된 상태로 죽었다.


그 책 '펑더화이 자술'은, 이른바 ‘문화 대혁명’이 발발한 후에 펑더화이가 한편으로는 홍위병들에 의해 공개 비판대회에 끌려 나가 학대와 폭행을 당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짜 맞추기 의도를 갖고 심문을 진행한 전담 조사조의 강압적 요구에 따라 백지 위에 수차례 작성했던 진술서 내용을 ‘문혁’이 끝난 후 펑더화이의 명예가 회복된 후에 출간한 책이었다. 따라서 (대부분 전기류 책의 내용과는 달리) 그 내용에 한 치의 미화나 과장 같은 게 있을 수 없을 것이니 중공 내부의 실제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매우 좋은 자료일 것이었다.


책값을 지불하고, 서점 문 앞에 세워둔 자전거를 타고 숙소인 저장대학 화자츠(華家池) 캠퍼스 내 교직원 아파트까지 오는 중에도 기대감에 설레며 자전거 페달을 밟았었다. 숙소에 도착한 즉시 그 책을 꺼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집중해서 읽었고 읽을수록 펑더화이의 드라마틱한 성장과정과 산전수전 경험, 인간적 성품과 자질 등에 끌려들어 갔다. 마치 그의 영혼이 나를 찾아와 자신의 억울함과 한을 호소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浙江大学 玉泉校区 도서관 앞 초대총장 주커전 동상

그날 이후, 틈나는 대로 펑더화이와 중공 역사 흐름 속의 주요 인물과 사건 관련 문헌들을 수집, 정리했다. 연구실과 숙소가 있던 저장대학 화자츠 캠퍼스 내 도서관부터 시작하여 위췐(玉泉), 시시(西溪), 쯔진강(紫金港) 등 항저우 시내에 분산 소재한 저장대학 각 캠퍼스 내의 도서관, 그리고 저장성 성 도서관, 항저우 시내 문 2로(文二路)에 있는 보쿠서점(博庫書店: 구 신화서점)과 중고서점들, 그리고 상하이, 베이징 등 중국 내 각 도시의 대형서점과 중고서점, 거리 책장사의 책 더미 속 등에서…….

浙江大学 华家池校区 도서관

그렇게 펑더화이에 대한 관심이 중공 당사(党史)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었고, 또 그렇게 정리·축적한 내용을 책으로 출간하자고 구상하고 틈틈이 그리고 꾸준히 주요 내용을 수집, 정리했다.

그러던 중에 2014년 9월에 저장대학 생활을 마치고 항저우에서 귀국한 후, 공주시의 충남연구원과 서울 낙산자락의 한성대학교에 근무하던 시기에도 틈틈이 원고 내용을 보완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계속하여 올해(2023년) 5월 하순에 한울 출판사를 통해서 출간했다.  


한편, 출간 2년 전인 2021년 5월부터는 유튜브 강좌 ‘북연TV’를 개설하고, 기본적으로 틀이 잡힌 초고 내용을 기초로  ‘박인성의 중국현대사’라는 큰 제목을 달고, 51회까지 강의 형식으로 제작·연재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책의 원고 내용을 다시 다듬고 보완할 수 있었다.


이 책, '박인성의 중국현대사'는 머리말과 맺음말 외에 18개 장으로 구성했는 바, 각 장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장에서는 중공 창당과 토지혁명전쟁, 그리고 국민당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까지의 과정 중심으로 정리했다. 특히, ‘도시혁명 전략’의 좌절, 징강산 농촌혁명 근거지 건설, 장정(長征), 시안(西安) 사변, 토지혁명투쟁의 진행 과정과 그 실상 등을 정리했다.


2장에서는 일제 패망 후에, 중공이 국민당과 대륙의 정권을 놓고 벌인 제2차 국공내전, 즉, ‘해방전쟁(解放戰爭)’의 승세를 결정한 ‘3대 전투’, 즉, 랴오닝·션양 전투(遼沈戰役), 화이하이 전투(淮海戰役), 베이핑·톈진 전투(平津戰役)에 대해 고찰·정리했다.


3장에서는 ‘해방전쟁’에서 연이은 승리와 함께 대두된 도시접관(城市接管) 과정과 그에 따른 중공의 도시정책의 변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행된 ‘쑤쿠(訴苦)’운동과 토지혁명투쟁에 대해 정리했다.


4장에서는 ‘사회주의 신중국’, 중화인민공화국 출범과 토지혁명투쟁의 실상 등을 정리했다.


5장에서는 소위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争: 한국전쟁)’ 발발 후 마오쩌둥이 조선 출병을 결정하기까지 고뇌하는 과정과 펑더화이가 지원군 총사령관으로 결정되는 과정, 그리고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毛岸英)의 참전과 전사를 포함한 전쟁의 경과 등에 대해 정리했다.


6장에서는 ‘대약진’ 추진 배경과 대실패의 이유와 그것이 초래한 결과로써 대기근 참상 관련 내용 등을 정리했다.


7장에서는 1959년 루산회의에서 마오쩌둥이 펑더화이를 ‘반혁명’, ‘우파분자 두목’, ‘소련 첩자’ 등으로 몰아서 숙청하는 과정을 정리했다.


8장에서는 펑더화이와 린뱌오의 대조되는 성품과 개성, 인생행로를 정리했다.


9장에서는 1962년에 개최된 이른바 ‘7000인 대회’의 개최 배경과 이 대회에서 린뱌오가 마오쩌둥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시도한 행동과 그 후 린뱌오의 권력 획득 과정 등을 ‘문혁’ 추진 전 단계에서 마오와 린뱌오 간의 합작이라는 관점에서 정리했다.


10장에서는 마오쩌둥이 기획·연출한 이른바 ‘문화 대혁명’ 10년 대동란의 발동 배경과 진행 상황 등을 정리했다.


11장에서는 홍위병 용도 폐기에 이어 자신도 토사구팽 당할 기미를 눈치챈 린뱌오의 쿠데타 기도 경과와 실패 후 국외 탈출 과정에서 아내 예췬(叶群)과 아들 린리궈(林立果)와 함께 타고 가던 비행기가 몽골 초원에 추락하는 사고로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1971년 ‘9·13 사건’의 경위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12장에서는 린뱌오의 쿠데타 기도에 충격을 받은 마오쩌둥의 심경 변화로 인해 장시성(江西省)에 하방되어 노동개조 생활을 하던 덩샤오핑(鄧小平)이 복권된 후, 대약진과 문혁으로 인해 형성·누적된 문제들에 대해 활발하게 조정 작업을 추진했으나, 다시 숙청·가택연금 당하게 되는 과정을 정리했다.


13장에서는 ‘공군정치가무단’ 단원 출신 멍진윈(孟锦云)의 회고를 통해서 그녀가 14세 때에 중난하이(中南海) 댄스파티에서 마오를 만난 후 1975년 5월부터 마오의 생활비서가 되어 마오가 죽기까지 489일간 말년의 마오의 일상생활을 신변에서 지켜본 이야기를 정리했다.


14장에서는 마오쩌둥이 죽은 후에 화궈펑(華國鋒)과 왕동싱(汪東興), 예젠잉(叶劍英)의 합작으로 진행된 ‘4인방’ 제압 과정과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하는 실용주의 개혁파가 ‘진리표준 논쟁’을 진행하고 이를 통해서 화궈펑과 왕동싱을 중심으로 하는 ‘범시파(凡是派)’를 제압·축출하는 사상투쟁 과정을 정리했다.


15장에서는 덩샤오핑과 후야오방(胡耀邦)을 중심으로 하는 실용주의 개혁파가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후, 중공 11기 3중전회(1978년)에서 대내 개혁과 대외 개방을 선언하고 후속 조치를 진행하는 과정을 ‘신민주주의 노선의 부활’이라는 관점에서 정리하고, 안후이성 샤오강촌(小崗村) 생산대에서 ‘농촌 농업개혁’의 시작이 된 ‘호별 도급생산’을 추진한 배경과 과정을 정리했다.


16장에서는 개혁·개방이 농촌과 농업에서 도시와 상공업 부문으로 확대되는 과정을 경제특구로 대표되는 하향식(top down) 모델과 쑤난지구의 ‘집체 향진기업’과 원저우의 사영기업 발전모델로 대표되는 상향식(bottom up) 모델의 추진과정을 정리했다.


17장에서는 중공과 중국정부가 ‘중국특색 모델’ 또는 ‘베이징 컨센서스’를 탐색 및 형성해 온 맥락과 ‘신특구(新特區)’인 ‘종합연계개혁시험구’, 신형도시화, 신상태(新常態: New Normal), 그리고 일대일로(一带一路) 등 최근에 중국정부가 추진 중인 주요 정책의 흐름과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18장에서는 이른바 ‘문화 대혁명’ 시기에 중학생이었던 노(老) 홍위병들이 50대, 60대 나이가 된 이후 언론매체와 인터넷 등을 통해서 자신들이 과거 ‘문혁’ 시기에 저지른 행동에 대해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사죄한 이야기 중심으로 정리했다.


저술작업에만 집중한 건 아니지만, 10여 년의 세월을 틈틈이 꾸준히 수정, 보완을 한 결과 출간한 책임에도 다시 읽어 보면 볼수록 여전히 수정, 보완하고 싶은 곳이 눈에 띈다. 그래서 이곳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을 활용하여 개정판 출간에 대비한 수정 및 보완 작업을 진행하고자 한다. 즉, '박인성의 중국현대사' 책의 원고 내용을 적절한 분량으로 쪼개고 나누어서 이곳에 올리면서 수정, 보완 및 재편집 작업을 진행해 나가고자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