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운명이라면
아주 오래전 어느 날, 점집에서 그랬다. “옆에 애들이 바글거려! 이마에 ‘선생님’ 세 글자를 박아 버렸구먼!” 주술적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던 무당의 말에 온몸이 쪼그라들었다. “에잇, 설마요!” 태클을 걸었지만, 강렬한 포스에 눌려 눈동자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종이랑 연필을 꽉 쥐고 있어! 뭘 그렇게 열심히 쓰는지 몰라!” 방울 소리에 춤을 추던 쌀알이 또다시 점괘를 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용한 집은 못 되는 것 같았다. 공손히 복채를 건네고는 잰걸음으로 점집을 빠져나왔다.
교사가 되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나의 모자람으로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은 되지 못했지만, 선생님으로 불리며 살고 있다. 오랜 세월 어린이집 교사였고, 내내 아이들을 가르치며 사는 중이다. 처음으로 점집을 찾았던 그때는 20대 초반의 회사원이었다. ‘그래, 이런 건 다 미신이야. 심심풀이 땅콩 오징어 같은 거지.’라고 생각했어도 복채는 아까웠다. 고기 사 먹은 셈 쳤다.
때때로 ‘학교 선생’이 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 언저리에라도 있고 싶어 아이를 키우며 공부했고, 어린이집으로 밥벌이하러 갔다. 겉으론 당당했으나 늘 반쪽짜리 선생 같아 나 자신을 어지간히도 책망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는 건 어때?” 달자매(문씨 성을 가진 두 딸을 부르는 애칭.)가 새 학년에 올라가 장래 희망을 적을 때마다 옆구리를 찔러댔다.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하려는 치졸한 엄마의 모습이었다. 내가 이럴 줄 몰랐다. 달자매는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 덕에 무식한 엄마는 면했으니 다행이었다.
보육교사로 사는 일은 보람되고 기뻤다. 천진난만한 아이들 속에서 속없이 웃다 보니 아무도 내 나이를 가늠하지 못했다. 크나큰 장점이었다. 단점도 무지막지했다. 죽을 만큼 아파도, 슬픈 일이 있어도 웃으며 노래하고 춤춰야 했다. 수업이 끝나면 서류 더미에 파묻혔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은 기록이었다. 쓰고 또 쓰는 삶이었다. 그랬어도 첫 사주풀이의 기억을 떠올릴 생각은 안 했다. 운명을 따지고 살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모임 날이었다. 아들 문제로 속을 끓이던 친구가 점집 정보를 공유했다. 단톡방에 용한 보살과 선녀들의 명함이 올라왔다. 너도나도 사주 경험을 털어놓느라 입에 게거품을 물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점집 이야기는 재미난 구연동화 같았다.
“타고난 운명이 있다잖아!”
“맞아, 맞아! 거스르고 살기 쉽지 않다더라고.”
“뭘 그런 걸 믿어!” 했지만 ‘타고난 운명’이란 말에 귀가 쫑긋했다. 불현듯 조상신을 불러들이던 오래 전의 그 무당이 떠올랐다. ‘잠깐! 지금 나는 선생이잖아. 진짜 내 운명을 봤다고?’ 뒷골이 서늘해졌다.
모임을 끝내고 나오는 길, 운명처럼 타로 차를 만났다. 한 친구가 “다들 어때? 순서 정해서 보자.”라면서 선두에 섰다. 내심 반가웠다. 내 차례는 두 번째였다. ‘타로 마스터’는 타로점 대신 비싼 사주를 권했다. 계좌이체도 된다고 했다. 홀리듯 내 사주를 술술 불러줬다.
“어휴, 문서 받을 일이 많네! 애들도 바글거리고. 혹시 선생님이셔?”
헉, 말도 안 돼! 가끔 내 몸에서 애들 냄새가 난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넘겨짚었나 싶었다. 내 입으로 흘린 말은 없나 기억을 더듬었다. 없었다. 태어난 시를 말할 때 빼고는 입도 뻥끗 안 했다.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다.
“저기요 선생님! 제가 혹시 글을 쓸 운명인가요?” 용기 내어 물었다. “팔자가 그쪽에도 있어! 손에 연필은 늘 쥐고 있네.” 타로 마스터는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 놀 팔잔가요, 아닌가요?” 또 한 번 물었다. “일 복 터진 사람인데 놀아? 승진 복도 있고만.” 속없이 입꼬리가 올라갔다. 조용히 일어나 3번 친구에게 바통을 넘겼다.
그 무렵, 나는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하던 일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만둘 궁리를 하던 중에 ‘동화를 써볼까?’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사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내내 했던 생각이다. 용기가 부족해 모른 척했지만.
마흔 후반에 그 마음이 또 생길 줄은 몰랐다. 여러 날 고민 끝에 써보기로 했다. 그놈의 타로점 때문에 쓸데없는 용기가 생기고 있었다.
마음먹었다고 글이 뚝딱 써지지는 않았다. 다시 동화를 읽기 시작했다. 재밌었다. 배꼽 잡고 웃다가 요실금이 시작된 걸 알았지만 슬프지는 않았다.
식탁에 앉아 혼자 쓰는 동화는 말도 글도 아니었다. 스승이 필요했다. 온 동네를 기웃거리며 글쓰기 교실을 애타게 찾았다. 우리 동네에 작가 수업을 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밤에 갈 수 있는 곳이 한 군데 있었지만, 다른 자격증 공부 중이라 자신이 없었다. 비싼 수업료도 마음에 걸렸다.
내 팔자에 동화는 무슨! 잘 쓸 자신도 없잖아. 하던 거나 잘하자며 결국 또 포기를 했다. 봄바람맞으며 며칠 쏘다녔더니 아쉬운 마음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글 안 쓰고 책 읽지 않은 밤은 한가했다. 침대에 누워 SNS 하는 맛이 쏠쏠했다. 내친김에 휴대폰에 게임도 깔았다. 가수 임영웅이 광고하는 ‘애니팡 4’는 갱년기 불면증에 기름을 부었다.
내 인스타 알고리즘은 자꾸 이런 글을 보여줬다. 관심 분야를 알아챈 것 같았다. '도를 아십니까?'처럼 자꾸만 귀찮게 했다. 모질지 못한 나는 열심히 클릭했다. 그랬더니 한 도서관의 상주작가 프로그램인 ‘동화 창작반’ 소식을 보여줬다. 처음 창작에 도전하는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나도, 동화작가!’ 제목이 나를 유혹했다. 그 옆에 그려진 책과 연필도 예사롭지 않았다.
이건 운명이야! 그래서 결정했다. 지금부터 동화를 써보자고. 머뭇거리다간 놓칠 것 같아 재빠르게 등록했다. 6개월을 공부하는 데 수업료는 공짜였다. 생일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2021년 여름, 나는 1주일에 한 번씩 ‘동화작가 교실’로 피서를 떠났다. 책에서 보던 진짜 작가님을 만나서 신기했다. 선생님만큼이나 작가라는 직업을 동경했다.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졌지만, 책에 사인부터 받았다. 다섯 명의 글 벗도 생겼다. 지성미 넘치는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한여름 태양처럼 뜨겁게 동화 쓰기에 열중했다. 글 벗들의 눈빛도 이글거렸다. 동화를 알아가는 시간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벅찬 기쁨이었다. 하지만 매주 다른 사람들에게 글을 보여주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일기밖에 쓸 줄 모르던 사람이라 부끄러웠다. 합평 시간이 되면 쪼그라들어 땅에 박힐 것 같았다. 나만 빼고 다 잘 쓰는 것 같아 속상했다. 그랬어도 매시간 설레고 행복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는 말을 실감했다. 고치고 또 고치느라 영혼이 탈탈 털려 나갔지만, 탈고의 경험은 달고나 맛이었다. 길을 잃고 헤매던 내 글도 ‘기승전결’이 있는 한 편의 동화가 되었다. 어깨가 으쓱해졌다.
6개월간의 여정은 한 권의 동화책으로 완성됐다. 책에 나를 포함한 여섯 글 벗들의 이름이 새겨졌다. 흥분됐다. 작가님은 우리에게 박수를 보냈다. 우리는 마치 등단한 작가처럼 축하를 나누며 ‘출간기념 단체 사진’을 찍었다.
정해진 시간은 끝이 났다. 동화 교실이 문을 닫아야 하지만 우리는 쉽게 헤어지지 못했다. 동아리 형태로 모임을 계속하기로 했다. 내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모임 이름도 결정됐다. 대표를 맡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은 거절했다. 그럴 깜냥은 못 된다. 우리는 독서 토론도 하고 계속 쓰는 사람이 되자고 약속했다. 목표는 매년 동화책 한 권씩 출간하는 거였다.
좋은 사람들과의 소통은 나를 조금씩 성장시켰다. 2022년 겨울, 두 번째 책이 만들어졌다. 내 동화 제목이 책 제목이 되었다. 기뻤지만 왠지 모르게 우울했다. 동화책이 내 품에 안겼을 때 처음처럼 반갑지 않았다. 좋아서 한 일이었지만 쉽지 않았다. 숙제 같은 1년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 모임의 만남도 자주 펑크가 났다. 모든 게 시들해졌다.
창작의 고통은 생각보다 컸다. 나는 창의적인 사람이 못 된다. 작가님은 내게 발칙한 상상을 하라고 했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이라 어려웠다. 내가 가진 경험으로 동화를 쓰기엔 부족한 실력이었다. 글만 쓰고 있을 수 없는 현실도 짜증 났다. 먹고사는 일이 더 컸다.
동화는 그만 쓸 거다. 다시 읽는 사람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느닷없는 통보에 글 벗들은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존경하는 어느 작가님은 ‘포기’는 배추밭에서나 쓰라며 채찍과 당근을 선물했다. 고마움에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서 잠을 줄여가며 또 쓰고 있다. 변죽이 들끓지만, 포기보다 못나 보이진 않을 것 같다.
이쯤이면 ‘써보는 사람’ 정도는 될 모양이다. 이것이 타고난 운명이라면 써야지! 쓰면서 행복하면 된 거다.
작가 코스프레라도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