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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부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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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쓸모 Aug 28. 2023

인생 첫 따개비 무침은 최고의 술친구와

자급자족 체험의 기쁨을 만끽한 환상의 여름

오랜만에 우리 부부만의 온전한 주말. 체감온도는 40도에 가까웠지만, 집콕하기엔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 들어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해변길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2시간 남짓 달려 한적한 갯마을에 도착했다. 물 빠진 촉촉한 갯가를 걸으며 산책하던 중이었다. 바위틈에 고개만 밀어 넣은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다가가 보니 갯것을 잡는 어르신이었다. 작은 칼을 휘두르는 손놀림에서 고수의 기운이 느껴졌다.


"뭐 따시는 거예요?"

얼굴을 볼 수 없으니, 엉덩이에 대고 여쭸다.


"따개비!"

"그건 어떻게 해 먹는 거예요?"

"삶아서 초고추장에 무쳐먹제. 겁나게 맛나!"


입 안에 금세 침이 고였다. 따개비 무침? 그 맛이 무척 궁금했다. 잡아본 적 없는 갯것에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고둥도 있고 거북손도 있단다. 키햐! 우연히 발 디딘 곳이 보물 밭이라니. 

둘러보니 갯바닥에 엎드린 사람이 여럿이다. 상대가 허락하지 않는 경기에 승부욕이 활활 타올랐다.


"우리도 잡자!"

남편의 말에 곧 갯벌 체험이 시작됐다. 나는 걸리적거리던 슬리퍼를 벗어던지고 맨발로 갯가를 누비기 시작했다. 납작 엎드려 바위틈 깊숙이 고개를 밀어 넣었다.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벗어던진 슬리퍼_photo by 쓸모

"있다, 있어!"

신출귀몰한 따개비는 초보를 알아봤다. 땡볕을 머리에 이고 갯바위를 누비고 다녔지만, 호락호락 넘어오지 않았다. 간질간질한 손맛에 푸대접받는 기분이 들어 심통이 났다.

바위에 옹기종기 모여 붙은 녀석들은 힘이 장사였다. 기술 없이 맨손으로 힘만 쓰다 피 보기 일쑤였다. 어르신 손에 들린 칼이 전설의 명검으로  보일 만큼 부러웠다.


"저 칼만 있으면 싹쓸이할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아쉬워!"

남의 물건이 그토록 탐나기는 처음이다.


들추고 다닌 갯돌 양을 보니, 육지로 나갈 노두길 하나는 거뜬히 만들었을 정도다.

그만 포기하려는데 어찌어찌 눈먼 녀석들이 잡히기 시작했다. 갯가에서 주운 2리터 생수병에 따개비가 가득 채워졌다. 한나절 노동의 대가 치고는 형편없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자급자족 체험의 기쁨은 만족스러웠다.


따개비를 싱크대에 쏟아놓으니, 주방에 갯내가 가득하다. 이 여름을 추억하기 좋은 냄새라 기억 한편에 고이 저장했다.

데쳐서 속살만 빼놓고 보니 누구 코에 붙일까 싶다. 무쳐봤자 한 접시도 안 될 적은 양이다. 이럴 땐 채소에 의지하는 게 최고다. 


"여보, 나만 믿어!"

'따개비 무침 만들기!' 인터넷에 레시피를 뒤져봐도 그런 요리는 없다. 큰소리쳤으니, 마법이라도 부려야 할 판. 샤워하는 남편의 콧노래가 욕실 밖으로 넘친다. 저 흥을 깨지 않으려면 뭐라도 만들어 내야 한다. 나는 먹어본 적 없는 따개비 무침을 위해 냉장고를 털었다. 이것저것 집어넣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요리는 자신감이야! 


보드라운 따개비 살에 양파, 사과, 오이, 당근을 넣고 갖은양념으로 손맛을 더해 보기로 했다. 고추장과 고춧가루 약간, 식초와 설탕, 다진 마늘, 맛술, 물엿을 넣고 버무렸다. 남편이 좋아하는 청양고추도 넣었다. 요리 장갑 끼지 않고 맨손으로 쓱쓱 비볐다. 음식은 손맛이니까. 접시에 담아 통깨 솔솔. 채소 덕에 뻥튀기한 것처럼 한 접시가 채워졌다. 둘이 먹기 딱 좋은 양이다. 


식탁에 옮겨놓고 보니 때마침 술시. 남편이 씩 웃으며 시원한 소주 한 병을 꺼내왔다. 

드디어 맛보는구나, 따개비 무침! 보드라운 살점부터 입에 넣었다. 쫄깃하고 향긋한 그 맛이 시원한 여름 바다를 닮았다. 살며 처음 만들어 본 음식이지만 이만하면 합격이다.


 "크, 술을 부르는 맛이구먼!"

한쪽 눈을 찡긋한 채 시원하게 소주 한 잔 털어 넣는 남편을 보니 뿌듯함에 입꼬리가 승천한다. 바깥에서 술을 즐기지 않는 우리는 서로에게 최고의 술친구다(나만 그렇게 생각할지도). 오늘처럼 특별한 안주 하나 있으면 술 한 병으로 이야기보따리가 술술 풀린다. 많이 다정해 지는 순간이다.


안주 한 젓가락! 술 한잔! 금방 소주 한 병이 사라졌다. 따끈한 쌀밥 한 공기 고봉으로 퍼와 남은 양념에 쓱쓱 비볐다. 바지락 비빔밥, 회덮밥 저리 가라다. 남길 수 없는 맛, 남겨지지 않는 맛이다. 숟가락 부딪혀 가며 치열하게 퍼먹다 입술에 붙은 밥풀을 보고 낄낄대며 웃었다. 따개비가 가져다준 행복이다. 

인생 첫 따개비 무침_photo by 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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