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앱이 보여준 기획의 디테일, '끌어올리기' 기능
전 국민 앱이 되어버린 당근. 저도 종종 집 안에 안 쓰는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당근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당근은 ‘당신 근처의 마켓’이라는 슬로건답게, 이제는 단순한 중고거래를 넘어 로컬 기반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국민 앱입니다. 오늘은 바로 이 당근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획의 디테일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진은 제가 실제 당근에서 판매 중인 키보드입니다. 가격도 나름 많이 낮췄는데도 아직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고, 그 사이 8번이나 ‘끌어올리기’ 기능을 썼더라고요. 그러다 문득, 이 작은 기능 하나에 꽤 많은 기획의 디테일이 숨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시나요? 내가 몇 번 끌어올렸는지의 숫자는 나에게만 보입니다. 다른 사람이 제 상품을 조회하면, 아래처럼 이력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처음엔 그냥 “숨겼구나?” 하고 넘겼는데, 생각해보면 이건 꽤 전략적인 설계입니다.
“이거 왜 아직도 안 팔리지?”“하자가 있는 거 아닐까?”
“8번이나 올라왔다는 건 뭔가 문제 있는 거 아냐?”
이런 생각이 스치면, 그 물건에 대해 자연스럽게 거리감이 생깁니다. 중고거래 특성상 판매하는 사람과 판매상품에 대한 ‘신뢰’가 굉장히 중요한데, ‘끌어올린 횟수’는 오히려 신뢰를 떨어뜨리는 부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죠. 그래서 당근은 그 숫자를 감추는 선택을 했다고 봅니다. 엄청난 디테일의 심리적 UX 설계입니다.
(기획하신분께 박수를..)
반대로, 판매자인 저에겐 그 '끌올' 숫자가 보입니다. '끌올 8회'라는 숫자를 보고 오늘도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서 가격을 좀 내려야 하나?” (이미 너무 저렴한데..)
"사진을 차라리 좀 더 바꿔볼까?"
이건 유저 스스로의 액션을 유도하는 UX입니다. 기획자는 이처럼 사용자에게 직접 말 걸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움직이고 행동을 유도할 수 있어야 하죠.
‘끌어올리기’ 기능은 단순히 상단 노출을 위한 기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해당 기획에는 아마도 이런 질문이 기획 과정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정보는 감춰야 하고, 어떤 정보는 보여줘야 할까?”
“이게 유저에게 어떤 기분을 줄까?”
“이걸 보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단순히 화면 UI를 예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용자의 감정을 설계한 것이죠.
사용자의 행동은 대부분 감정에서 출발합니다. 그 감정은 아주 작고 디테일한 버튼 하나, 숫자 하나, 노출 유무 하나로 영향을 받죠. 당근의 ‘끌어올리기’는 이러한 사용자의 심리를 읽고 행동을 유도하는 기획의 좋은 예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기능을 서로 다른 유저 그룹에게 '노출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이 작은 정책 하나만 봐도, 기획자의 역할이 사용자에 대한 얼마나 깊은 고민을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