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을 그리기 전에, 먼저 답해야 할 질문들
요즘 IT 시장에서 <서비스 기획>이라는 말만큼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하는 표현도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 기획은 요구사항을 정리하는 일이고, 누군가에게는 화면을 설계하는 일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기획자라는 역할이 ‘화면을 이쁘고 그럴듯하게 그려내는 포지션’으로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저는 이 변화의 배경에는 코로나 시기, 정부 주도로 진행되었던 IT 일자리 확대 정책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비대면 환경에서도 일할 수 있는 직무를 늘리기 위해 IT 직무 교육에 많은 예산이 투입되었고, 그 과정에서 짧은 시간 안에 ‘가르쳤다’는 결과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습니다.
문제는, 기획이라는 일이 본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산출물을 빠르게 만들어내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점입니다. 문제 정의, 요구사항의 이해, 비즈니스 타겟 지표 설정과 같은 과정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단 기간 어떤 방법론으로 설명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IT 직무교육에서 서비스 기획 교육의 컨셉은 점점 화면을 그리는 법을 가르치는 방향으로 수렴되었고, 피그마로 와이어프레임을 만들고 페이지 수가 늘어날수록 '기획을 많이 했다'는 인식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기획의 본질을 놓치고, 화면 중심으로 기획의 산출물이 나오다 보면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에는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제품을 왜 만드는지, 무엇을 해결하려는 것인지, 이 기능이 비즈니스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한 질문은 화면 어디에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채 개발이 시작되는 많은 프로젝트들을 보아왔습니다.
문제는 이 질문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뒤로 밀린다는 점입니다.
기획 단계에서 다뤄졌어야 할 질문들이 개발 중간이나 막바지에 다시 등장하고, 그때마다 방향은 흔들리고 의사결정은 늦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의 비용은 일정 지연, 반복되는 수정, 그리고 추가 비용이라는 형태로 드러나게 됩니다.
요즘과 같은 AI 시대의 기획자는 더욱 더 화면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본질과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제품은 왜 지금 필요한지, 고객은 어떤 상황에서 불편함을 느끼는지, 우리가 정의한 이 문제가 정말 문제인지, 혹은 이 제품을 통해 어떤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싶은 것인지.
이 질문들은 피그마 화면 안에서는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진 화면은 결국 개발 과정에서 계속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IT 직무 교육 프로그램에서 서비스 기획 실무 강의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강의가 끝난 뒤,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의외로 비슷했습니다.
“피그마를 얼마나 잘 다룰 줄 알아야 하나요?”
“UI를 어느 정도까지 그릴 수 있어야 경쟁력있는 기획자라고 볼 수 있나요?”
이에 대해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툴은 누구나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이 화면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기획자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획자에게 중요한 것은 화면을 얼마나 잘 그릴 수 있는지가 아니라, 이 화면이 나오게 된 근거를 비즈니스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는지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