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 앞에서 폴라로이드를 팔았다가 배운 것
지난 첫 글에서, 스물한 살 무렵 훈련소 앞에서 폴라로이드를 팔아보겠다고 나섰던 이야기를 잠깐 적었습니다. 제게는 지금까지도 꽤 오래 남아 있는 경험이라, 이번 글에서는 그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풀어보려 합니다.
전 편에 이어서 이야기를 계속해보자면, “이거 대박인데?”라는 생각이 번쩍 들자마자 행동파였던 저는 고민 없이 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당시 제 신분은 꽤 당찼습니다.
재수생이었고, 그중에서도 꽤 자신감 넘치는 재수생이었습니다.
재수학원 같은 반 친한 친구에게 사업의 ‘사’ 자도 모르는 상태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대박인 아이템을 하나 찾았는데, 같이 사업 할래?”
이게 잘 되면 대학이고 뭐고 필요 없고, 그냥 돈방석에 앉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21살짜리 재수생다운 확신에 찬 제안이었습니다. 제 영업에 쉽게 설득당한(?) 친구도 의외로 흔쾌히 동의해줬고, 우리는 바로 이마트 오목교점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 1대와 필름 100장을 샀습니다.
실행을 위해 가장 빠른 입소일이 있는 훈련소를 찾았고, 그곳이 바로 의정부 306 보충대였습니다. 판넬도 열심히 만들고, 군대도 안 가본 젊은 청년 둘은 꽤 당당한 얼굴로 훈련소 앞에 섰습니다.
가장 좋아 보이는 자리를 잡고 판넬을 들고 열심히 외치기도 하고, 직접 다가가서 나름의 아웃바운드 세일즈도 시도했습니다. 우리가 정한 타겟은 명확했습니다.
디지털카메라나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들
'아, 이 사람들은 분명 필요하겠구나'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죠.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돈을 받고 판 건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거의 오기처럼 “그냥 무료로 찍어드릴게요”라고 말하며
3~4장 정도 셔터를 누른 것이 전부였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그날의 저는 답을 몰랐습니다.
'사람들이 이 좋은 걸 몰라준다'라는 생각만 했고, 그렇게 꽤 큰 상실감만 안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정답은, 정확히 2년 뒤 제가 군대에 입대하는 당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입대 당사자는 그 순간이 생각보다 훨씬 우울하고, 심리적으로 버거운 상태라는 것.
그래서 그 순간의 ‘사진’을 돈을 주고 남기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잘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진이 필요할 걸?'
'있으면 좋을 걸?'
이 생각은 사실 지극히 공급자 중심의 사고였습니다. 고객이 되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아마 이럴 것이다’라고 마음대로 가정해버린 거죠.
<입대 당사자가 손에 쥘 수 있는 결과물이 없다>는 것을 저 혼자서 문제라고 정의해버린 것이었습니다.
스타트업 비즈니스도 그렇고, 특히 IT 제품 기획에서 가장 첫 번째 단계는 바로 문제 정의입니다.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인가는 모든 판단의 출발점이 됩니다. '문제만 잘 정의해도 절반은 끝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문제 정의는 중요하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를 잘 정의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방법론은 많겠지만, 제가 경험을 통해 생각하게 된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문제를 잘 정의한다는 것은, 실제로 그 상황에 놓인 고객이 되어보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제로백데브라는 IT 개발 외주 회사를 창업한 지 만 1년이 되기 전날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정말 다양한 도메인에 속한 기업들과 만나, 각자가 직면한 비즈니스 문제들을 함께 풀어왔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전혀 다른 영역의 서비스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프로젝트 초입에서 마주하는 장면은 늘 비슷했습니다. 초기 기획 단계에서 우리는 항상 고객사가 이미 정의해 둔 ‘문제’와 마주합니다.
“지금 시장에는 이런 서비스가 없어서 문제예요.”
“우리 산업에는 이런 문제를 고객들이 겪고 있어요."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는 조금 불편할 정도로 같은 질문을 반복합니다.
"이게 정말 문제일까요? 아니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현상일까요?"
아직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던 시절, 훈련소 앞에서 폴라로이드를 들고 서 있던 어느 당찬 재수생처럼 너무 쉽게, 너무 빠르게 문제를 정의해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늘 생각합니다.
그래서 프로젝트 초기에 필요 기능을 논의하기 전에, 화면을 그리기 전에, 항상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섭니다.
이 문제가 언제 발생하는지, 누가 가장 불편한지, 그 순간의 고객은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직접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제로백데브의 지난 1년은 그렇게 몸으로 부딪히며 고객사와 함께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정답을 빠르게 찾기보다는, 처음 던져진 질문이 맞는 질문인지부터 확인하는 시간에 가까웠습니다.
올해도 저는 더 많은 기업들과 함께 이 불편한 질문을 계속 던지고 싶습니다.
페이퍼에 정의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개발사가 아니라,
아직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문제를 함께 다시 들여다보는 파트너로서 한 해를 채워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언제나, 문제를 너무 쉽게 정의해버렸던 21살의 제 자신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