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해함에서 오는 감사함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는 증거

by 달보드레

*어느 여름날 썼던 글


언제나처럼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흰 종이의 검은 활자들. 그것들은 모양 그대로 흡수되지 않는다. 읽는 순간 뇌에 닿고, 마음에 닿아 제멋대로 기억과 의미를 만들어낸다. 침습하는 과거의 기억들, 어딘지 모를 곳에 숨어 있다 튀어 오르는 감정들. 그렇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상념에 잠긴다. 창밖을 바라본다. 말복이 지났지만 여전히 오후 세 시의 볕은 아스팔트가 녹을 듯 따갑다. 사람들의 발길이 재빠르다. 정수리를 파고드는 뙤약볕에 구슬땀을 훔치는 사람, 중요한 약속에라도 늦은 건지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 시원한 카페 안의 내게 부러움의 눈빛을 던지는 사람.

나는 생각해 본다. 지금 이 어수선한 마음이, 난해한 사유가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둔 저기 바깥의 뙤약볕 아래 서 있어도 과연 그대로일까? 아마 아니겠지. 흘러내리다 못해 눈앞을 가리는 땀방울에 정신이 아득해져 시원한 어딘가로 도피하고 싶은 생각뿐일 것이다. 은행, 편의점, 지하철역. 어디든 좋다. 이 아찔한 더위를 식혀줄 수만 있다면.

문득 이 여름의 정반대, 겨울을 생각해 본다. 번데기 같은 기다란 패딩을 걸치고 있음에도 손과 뺨을 에는 칼바람을 막기엔 역부족인 겨울 속에 서 있는 나를. 그곳의 나는 삶의 이유, 의미,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 죽음, 죽음 후의 생, 이런 것들에 대해 사유하고 있을까? 마찬가지일 것이다. 싸늘해진 몸을 잠시나마 데워줄 따뜻한 어딘가를 간절히 찾고 있겠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흘러가고, 이 복잡한 생각들도 결국 내가 꽤나 살 만하기 때문에 드는 거구나 생각한다. 추위와 더위, 생존, 의식주.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다면 결코 떠오르지 않았을 주제들이므로. 오늘은 출구 없는 고민과 사색의 심해에 가라앉는 대신, 내가 꽤나 행복하구나. 잘 지내고 있다는 거구나. 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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