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감포 횟집으로 떠나보세요

끝까지 남는 친구 하나, 35년 만의 겨울 바다 여행

by 오즈의 마법사

많은 친구보다 끝까지 남는 친구 하나가 더 귀하다. 나이가 들수록 이 말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실처럼 다가온다.

지난 16일, 나는 오래된 친구와 바다로 향했다. 결혼 전에는 종종 여행을 다녔지만,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느라 함께 여행을 떠난 것은 거의 35년 만이다. 친구는 구미에서 대구까지 나를 데리러 왔다. 목적지를 고민하다 경주 감포로 정했다.


이 여행의 시작은 지난 8월이었다. 사이버대 여름방학을 맞아 구미에 사는 친구를 찾아갔다. 같이 헛제삿밥(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처럼 차려서 먹는 경상도 향토 음식)을 먹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풀어냈다. 몇 년 전 전원주택을 지어 부부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바쁘다는 이유로 한 번도 찾아가지 못했던 터라 마음 한편이 늘 미안했다. 그날 집 구경도 하고, 겨울방학에는 바다에 가자는 약속을 나누며 헤어졌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닌 오래된 벗이다. 학창 시절에는 마음 맞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다. 고등학교 진학과 대학, 직장 생활을 거치며 관계는 조금씩 달라졌다. 가정을 꾸리면서는 더 그랬다. 가치관의 차이로 멀어진 친구도 있고, 이사로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긴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내 곁에 남은 소중한 친구는 손에 꼽을 만큼 줄어들었다. 지금까지 함께 걸어온 50년 지기 인숙이는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존재다.


나는 30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주말이 아니면 시간을 내기 어려웠고, 퇴직 후에는 손자 육아를 돕느라 6년간 평일의 여유가 없었다. 친구는 주말에는 시간을 내기 어려운 직장이라 둘이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다. 올해 3월부터 아이들을 돌보지 않게 되면서 갑자기 시간이 생겼다. 평일에 친구를 만나 느긋하게 수다를 떠는 일은 무려 36년 만에 처음 경험하는 여유였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그 시간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감포에 도착한 우리는 20여 년 단골인 감포 횟집으로 향했다. 친정 부모님, 사돈, 친구들과도 여러 차례 같이 간 곳으로 늘 만족스러웠던 곳이다. 일요일과 월요일은 쉬는 날이라 가기 전에 미리 확인하지 않으면 허탕 치기 쉽다. 다행히 그날은 문을 열고 있었다.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창가 자리에 앉아 파도치는 모습을 바라보니 마음이 한결 느긋해졌다.


감포횟집의 회는 그날그날 잡은 생선으로 나온다. 그날의 횟감은 광어와 대방어였다. 회가 싱싱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그 식당의 비법은 따로 있다. 회를 주문하면 각종 해초류와 신김치에 꽁치를 김에 싸 먹도록 먼저 내어준다. 회가 나오면 상추와 김을 포개고 회를 한 점 올려 같이 나온 콩고물 채소 무침을 곁들여 먹는다. 회를 반쯤 먹을 즈음이면 사장님이 초밥용 밥을 내어주신다. 마지막에 매운탕과 멸치젓, 도루묵조림, 가자미조림으로 식사를 마무리할 때가 되면 식혜 한 통이 식탁으로 올라온다. 달지 않고 시원한 식혜를 나는 연거푸 석 잔이나 마셨다. 친구는 감포에서 가본 횟집 중에 최고라며 전화번호를 적어두었다.


회가 나오기 전 해초류 밥상



광어회와 대방어



식사를 마친 뒤에는 문무대왕릉으로 향했다. 횟집에서 3분 남짓한 거리다. 운전하던 친구가 말했다.

“여기 우리 고등학교 때 왔던 해수욕장이네.”

그 말에 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집에 돌아와 앨범을 찾아보니 풋풋했던 그 시절의 우리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환하게 웃고 있었다.


44년 전 여고 시절 친구와 함께 -봉길해수욕장-


문무대왕릉은 삼국통일을 완성한 신라 제30대 문무왕(661~681 재위)을 장사지낸 곳이다. 바닷가에서 200m 떨어진 바다에 있는 수중릉으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문무왕은 당나라와 손잡고 백제를 정벌한 태종무열왕의 뒤를 이어 21년간 왕으로 있으면서 고구려를 통합하고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 우리나라 최초로 통일국가를 완성하였다. <삼국사기>에는 문무왕이 “내가 죽은 뒤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 지내라.”라고 유언하였다는 내용이 있다. 이런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아들인 신문왕이 바다의 큰 바위 위에 장사를 지내고 그 바위를 대왕암이라 불렀다. 또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절을 세우고 감은사라 하였다. <경주 문무대왕릉 안내표지판 참고>


문무대왕릉 수중릉


해변에는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수백 마리는 되어 보이는 갈매기들이 모래사장에 내려앉아 있었다.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면 떼 지어 날아올랐다가 다시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겨울이었지만 춥지 않아 모래사장 끝까지 우리는 천천히 걸었다.



갈매기와 친구


경주에 갈 일이 있으면 감포에서 식사하고 문무대왕릉 해변을 산책해 보길 권하고 싶다. 겨울 바다를 바라보며 걸었던 그 시간은 오래된 친구와 나눈 말들처럼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추억이 되었다.


평생 함께 갈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내 곁에는 인숙이와 여고 동창 다섯 명이 있다. 이만하면 충분히 잘 살아온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감포횟집 주소 : 경북 경주시 감포읍 대밑길 12-18,

전화번호 054- 775-7810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엄지척 해 주실거쥬?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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