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편
희끗한 머리를 한 점퍼.
민서의 머리에 남은 이미지는 그것이었다.
상황은, 예상하던 대로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갑작스럽게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겪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눈 앞에서 대량의 화약에 스파크가 튀는 것을 바라보는 경험은 어지간해서는,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는 종류의 아찔한 서스펜스일 것이다.
약 일초 전후의 시간 차이로, 목숨이 그대로 날아갈 뻔한 경험이었다. 민서 스스로에게는 점프 능력이 없었으므로, 메리가 손이 느린 사람이었다면 그는 그 광경이 마지막 기억이 될 뻔 했었다.
점퍼 조직원들간의 연계는 일단은 실패였다. 상대의 피습은 목적을 달성했지 못했지만 불필요한 재해가 있었다.
또한 마지막까지 상대의 공격 도구를 예측하지 못한 것도 실책이었다. 맛이 가버린, 점퍼가 테러를 벌인다면 어디까지 일을 벌일 수 있는가에 대해 조금 더 예상을 했어야 했는데.
기껏해야 총기류 정도를 상정했건만 상대는 그대로 폭발물을 들고 와서 일대를 날려버렸다.
총기라면 상대가 당황한 틈을 타서 그가 하야시를 대피시키고 메리가 제압할 여지가 있었을 텐데, 폭발물의 경우에는 그들 역시 피하는 것 외에는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생각보다 더 주도면밀한 자여서, 순식간에 폭발물을 던져놓고 자신 역시 그대로 사라졌다. 이 정도의 습격이라면 어지간한 교전 임무에 뒤지지 않는 극악한 성공 난이도의 임무였다.
제대로, 점프를 전투에 이용할 줄 아는 노련한 점퍼가 상대라는 말이었으니 말이다.
물론 상대의 근접전이나 총화기를 이용한 교전 능력이 어느 수준인지는 알지 못한다. 일단 점프 능력만을 체크해 보건데 그렇다는 이야기다.
어떻게 다가가서 제압을 해 볼 여지가 없었다. 만만치 않은 상대다. 그런 이가 정신이 나가버린 단체의 힘을 입고 움직인다면 조금 더 경계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었다.
당장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략적인 변화의 폭이 크지는 않았다. 다만, 임무에 임하는 쉴더나 브레이커Braker, 인 메리의 경계 수준이 올라갈 뿐이다.
쉴더와 브레이커. 둘은 연인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절묘한 코드 네임이었다. 메리는 훤칠한 키에 각종 무술에 능숙한 요원이었다.
그리고 조직에는 다양한 보조 기구들이 존재한다. 현대의 기술 수준을 약간은 상회하는, 각종 선진국들의 기술적 협조에 의해서 사용 가능한 도구들이었다.
홍인수나 리시버는 곧잘 사용하지는 않지만, 메리는 즐겨 쓰는 종류도 있었다. 순간적으로 근력을 높여주는 보조 기구들이었다.
주로 가죽 자켓의 안에 착용하고, 상완이나 하박, 허벅 다리에 착용하는 팔찌 비스무레한 물건이었다.
순간적으로 전기 신호를 통해서 통상적으로 발휘 가능한 것 이상의 폭발적인 근력을 내게 해주는 물건이다. 지속적으로 사용하기에는 후유증이 좀 심했고, 요령 좋게 다루어야 하는 까다로운 물건이기도 했다.
반사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가까운 동작 수행이라, 상황에 대처하는 즉각적인 유연함이 조금 떨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타고난 유연성과 절묘한 감각, 계산 등으로 사용한다면 그야말로 초인에 가까운 전투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는 기계이다.
타격 부위가 되는 손, 발과 손목 발목까지를 고정하고 덮어 주는 강력한 보호장구가 필수적으로 필요한 물건들이다.
그런 기계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메리는 그 자체로 강인한 무술가이자 타격 계열 격투기의 천재였지만 조직에서 지원하는 기계를 사용한다면 그야말로 괴력을 발휘했다.
여성이나, 남성이나 하는 구분이 무의미해질 정도의 힘이었다. 어지간한 거한이라도 그녀의 맨손 격투에 몇 호흡을 버티기가 힘들 테였다.
강력한 힘을 다루는 데는 늘 섬세한 제어력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그녀는 반대로 누구보다도 정교한 작업에 능한 손재주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런 미친.”
민서는 자기도 모르게 험한 말을 내뱉었다. 정신이 어질거렸다. 총알이 빗발치는 장소에서도 있어 봤지만, 코앞까지 다가온 위험의 체감이 이렇게 선명했던 건 처음이었다.
보통은 머리를 처박고 교전 지역의 틈새에서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하야시 부대신이 기거하고 있는 비밀 안가safe house에 있었다. 메리와 민서가 이동을 한 뒤 거의 연이어서 하야시 슌스케와 야가미 소우타가 도착을 했다.
도심에서 다소 떨어진 장소에 있는 곳이었다. 교외로 나서서 논밭이나 산야를 지난 뒤 나온다.
숲 속에 있는 집이라고 해도 좋았다. 멀리에서 저격이 불가능한, 나무들로 둘러 쌓인 집이었고 내부에서 주변을 경계하기에 직접 다가오기도 난이도가 높았다.
얼핏 목재로 보이나 내장재와 외부의 통나무 사이에는 현대 건축물을 짓는데 사용되는 튼튼한 재료들이 들어가 있어서 폭발이나 재해 따위에도 어느정도 버틸 수 있었다.
거실에는 지하 벙커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어서 유사시에도 꽤 오랜 시간을 지낼 수 있었고.
나 있는 창들 역시 모두 방탄 유리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일방적으로 저격하기 좋도록, 작은 구멍 따위가 나 있는 곳도 군데군데 있다.
2층 건물로 지어진 큼지막한 저택이었다.
한 밤의 저택이었다. 저녁 무렵이 지나고, 황혼도 지고 어느새 밤이 찾아온다.
점퍼들과 하야시를 비롯해 호위 인원들, 외무 부대신의 경호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많은 이들이 폭발처럼 일어난 감정의 동요를 추스르며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상대를 전투에 능숙한 베테랑이라고 상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진다면, 결국 저격수의 역량이 중요해집니다. 재머Jammer의 바로 근처, 곧 외무부대신님이 있는 위치에서 시작해 선을 죽 그으면 나타나는 자리에 적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재머와 경호대상의 거리가 100m이내일 때는 반드시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을 넘어간다면, 외무부대신이 있는 위치에서 재머 쪽으로 이동을 하되 그 중간 지점에 나타날 확률이 높습니다.”
야가미의 말에 경호조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격수를 더 배치하도록 하지. 직전 사태 때는 대응을 하지 못했지만 점퍼에 대해 익숙하지 못한 요원들이 대부분이라 그랬을 거야.”
사전에 언질을 어느 정도 주었더래도, 눈으로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는 법이었다. 점퍼의 능력이나 움직임은 상리를 초월한 것이다. 저격수들은 일반적인 궤적이나 인간을 상정하고 조준을 해서는 안되었다.
차라리 기계적으로 정보를 입력하고 움직이는 것이 나았지. 여태까지의 상식과는 분명히 어긋나는 임무 상황이었다.
경호원들은 전 자위대의 특수부대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자의 사정으로 퇴역을 하거나, 혹은 퇴역 전에 일찌감치 경로를 바꾸어 고위 관료 들의 요인 경호로 방향을 튼 인물들이다.
각자의 경험치가 부족한 상황은 아니었다. ‘점퍼’라는 변수에 대한 조정이 필요한 것이다.
“저격수의 순간 반응을 제외하면, 결국 재머 쪽에서 총을 겨누는게 가장 간단할 겁니다. 이번에는 저희도 다소 당황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다음 번에는 나타나는 순간, 즉시 신호를 통해 격발하도록 하겠습니다.”
야가미가 그렇게 말은 했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민서로서는 말이다. 한 순간에 미상의 점퍼가 도약을 해오고, 그것에 반응한 야가미가 재머 쪽의 통신기에 신호를 준다. 그 신호에 반응해서 1초 이내에 총을 겨누고 쏜다, 는 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메리라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렇게 총을 쏘는 일과, 이번처럼 폭발물을 가져올 가능성에 대비해 순식간에 점프를 할 준비또한 동시에 해야 했다.
임무에 나설 때 점퍼들은 늘 방탄 피복을 착용한다. 이번에는 요인에게도 역시 입혀둔 상태였다. 내복같은 느낌으로, 옷의 안에 받쳐입는 것이었다. 질기고 정교한 합성 섬유는 총탄의 관통을 피한다. 조금 더 두꺼운 재질로 만들어낸 재킷 따위는 더 수월하게 막아내지만, 약간 더 불편하고 정해진 수량이 있었다.
개인별로 디자인이 있었기에 그런 물건을 하야시에게 입혀 둔다면 지나치게 부자연스러울 것이다.
상대방 쪽에서 저격을 통해 두부를 노리는 것은 경호조의 역량을 신뢰해야 했다. 모든 일정 중에 헬멧을 쓰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각 위치마다 포인트를 조사하고 저격수들이 배치되며, 불온한 단체의 움직임을 막는 특전사들이 알아서 해줄 테다.
야가미 역시 적잖은 훈련을 받은 전투 요원이었지만 그가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슌스케 씨의 목숨은 저희가 지키겠습니다. 관건은 적의 제압과 확보인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여러분의 협력과 또 재머, 브레이커의 역량에 달려 있겠군요.”
쉴더의 마지막 목표는 결국 지키고자 하는 대상의 생존이다. 최악의 경우라면, 자신의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요인의 경호를 우선시하게 된다. 그런 사명감을 갖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 점퍼 조직에 헌신하고 있는 자였다. 야가미는.
그가 말한 ‘저희가 지키겠습니다’의 ‘저희’란 곧 야가미 스스로를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최후의 상황에서 팀원들의 희생을 계산에 넣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들은 안가의 거실에 앉아서 대담을 나누고 있었다. 주위로 경호인력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고, 가끔 무전기로 이야기를 나눈다.
전체적으로 산장같은 분위기의 인테리어로 꾸며진 깔끔한 저택이었다. 벽난로 따위의 분위기를 낼 수 있는 디지털 화면이 있었고, 한국에서 온 현대식 보일러 기능이 있어서 쌀쌀한 날씨에도 내부는 추위가 가신지 오래였다.
조명 역시 산장에서 흔히 볼법한, 벽난로의 불빛같은 주황색이 섞여든 색이라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정사각형 모양의 테이블이 가운데 있었고, 그 주위로 카펫이나 러그가 이리저리 깔려 있고 누워서 쉴 수도 있을만한 소파가 테이블을 둘러 싸고 있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집의 가장자리에 있었고, 2층은 전체를 사용하지 않아서 1층에서 넓게 탁 트인 실내를 바라볼 수 있고 높은 지붕을 구경할 수 있다. 위에는 뜬금없는 샹들리에가 하나 달려 있어서 빛을 내고 있다.
하야시는 테이블의 소파 한 자리에 앉아 폭발 테러의 여운으로 몸을 추스르는 듯, 약간은 웅크린 자세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건장한 장년이지만 목숨의 위협 앞에서는 다소 기운이 사라지는 것도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런 부대신이 야가미를 처다보며 눈빛을 밝혔다. 씨익 웃는 멋진 미소가 사내답다. 영화나 그림으로 젠틀한 중년 사내의 중후함을 표현한다면 그렇게 그려질만큼, 훤칠한 얼굴이었다.
결국 신뢰감만이 위기의 순간에서 서로를 구한다. 하야시는 야가미의 말에서 그런 희생 정신이나, 결의의 다짐을 느꼈다.
마침 다행으로서도, 야가미의 입장에서 피경호자가 경호인과 깊은 신뢰감을 가진다면 의뢰는 더욱 수월해지고 안전도도 올라가게 마련이었다.
타닥타닥, 하고 난로에서 불이 타오르는 영상과 함께 효과음이 들렸다. 괴짜 부자들의 취미처럼 쓰이곤 하는, 벽난로 영상을 보여주는 LED패널이었다.
그저 옛날의 추억을 조금 상기시켜준다는 것 외에는 아무 쓸모도 없는 장식품이었고, 전기를 잡아먹을 뿐인 물건인데 이곳에 있었다.
그야말로 사족처럼 모닥불이 타오르는 효과음까지 내는 물건이라, 산장같은 세이프 하우스 내부를 적막하지 않게 채운다.
메리가 그들의 연대를 흘긋 보더니 입을 열었다.
“뭐 이쪽도 할만큼은 해야겠지. 상대가 어느 정도일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한번 더 나타난다면 잡힐 거야. 그러고도 안 잡힌다면 수가 없는데… 인-수나 길-우가 와야 할 것 같고.”
메리는 일본어도 능숙했으나, 영어투가 남아있는 말투였다. 한국어 점퍼들이 많으므로, 약간의 한국어도 가능했다. 하지만 한국식 억양이 진하게 필요한 이름들의 경우엔, 여전히 어색함이 남아있는 편이다.
어쨌든 그녀의 자신감은 하야시로서 기꺼운 반응이었다. 민서는 어딘가 아득해지는 눈길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천장 위에 걸려 있는 샹들리에, 혹은 방의 한 구석에 있는 모닥불 LED.
총알까지는, 완전 무장을 한다면 의외로 살 확률이 높은 경우였다. 점퍼 조직에서 제공하는 장비들에 섞인 기술력은 최첨단 이상의 것이었으니.
그러나 대놓고 폭탄류를 집어 던지는 점퍼라면, 장비와 상관 없이 한 끗 차이로 죽게 마련이었다. 민서는 마음을 굳혔다. 죽던 살던, 할 일은 해야 한다. 애초에 그러기 위해 이 조직에 들어와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위험들을 감수하기에, 조직에서 점퍼들에게 상당량의 돈을 쥐어주는 것이기도 하고 말이다.
단지 그만이 겪는 일도 아니었다. 그의 눈에서 초인처럼 보이지만 홍인수나 송일우, 최길우나 여타 사람들도 그와 똑같은 조건이었고, 만화 속에 나오는 히어로들도 아니었다. 조금 더 훈련되었고, 조금 더 베테랑일 뿐이다.
맞으면, 상하고 총알이 파고들면, 부서져 다치고 죽는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하게 감당하고 있는 위험들이었다. 그 역시 다른 이들과 같은 자리에 서게 된 것뿐이었다.
모든 이들이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계획을 세웠다. 상대는 결국 또 한 번 나타날 테였다. 그들의 신념에 따라. 그도 아니라면 결국 하야시라는 인물의 행로를 막을 수 없고, 각국의 긴밀한 협조와 시스템 역시 공고해져 갈 것이었다.
그들은 하루의 실패를 밑거름삼아 다시 움직였다.
*
9월 안으로 하야시의 업무는 끝을 내야 했다. 그는 부지런히 움직인다.
“결국 저희 쪽에서 관세 혜택을 내어주어야 한다는 말 아닙니까?”
어느 고급 호텔의 스위트 룸suite room에서 그는 일본 기업의 대표주자라 할만한 이를 만나고 있었다. 경제 협약은 결국 양측의 이익을 도모하면서 시너지를 만들어내야 하는 작업이었다. 한 쪽의 일방적인 희생이나, 불만이 포함된 것은 제대로 된 협력이라 할 수 없었다.
그는 협약의 주요 실체가 될 각국의 경제계 인물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고생을 하고 있었다. 일본 쪽 인물의 요지는 이렇다. 자국에서 지나치게 편의를 봐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결국 미국이라는 강대국에게 일방적인 혜택을 제공하며 지고 들어가는 거래가 아닌가.
“그건 당연히 그렇지. 하지만 결국 저쪽에서 우리에게 주는 것들이 더 많게 되어있네. 당장 포함되는 기업들의 수나, 규모만 살펴도 말이야. 보다 직접적인 거래가 이어지다 보면 일본 쪽 시장에 순기능이 더 커질 걸세. 그런 많은 양의 자본을 이쪽으로 돌리려면, 우리가 먼저 나서서 혜택을 주는 수밖에 없어. 말했듯 공평해야 하지 않겠나.”
“내 참. 정말로 그렇게 말대로만 잘 되리라고 보십니까? 저쪽에서 오는 물건들의 질이 좋아도, 결국 저희 쪽에서 소화를 못 해내면 헛수고일텐데.”
“시장이야 널렸지 않은가. 보다 많은 양을 만들어내면, 결국 수출량을 늘이면 될 일이야. 세계 시장에서 아직 두드릴 곳들이 많이 있다고 나는 보네.”
결국 공정이 많은 정교한 공산품들 중에서 각 기업들이 중간 자재나 원자재에 관련해 보다 싼 가격에 서로가 나누고 지원을 해주어서 전체적인 생산물량을 늘이거나, 원가를 줄이고자 하는 이야기였다. 이를 위해서 하야시는 각 부처의 관료들을 쥐어짜듯이 닦달해서 경제적 시너지가 날 만한 기업과 상품들을 조사하고 실행 가능성이 있는지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해 보아야 했다.
“아마 내 관료 인생의 방점이 될 만한 일이니 잘 부탁하네. 결국 목적이 같은 곳끼리 절차 없이 협업을 할 수 있다면 종래보다는 나은 결과가 나올 거야. 작게는 일본 국내 시장에 이익이 되는 거고, 크게는 세계 시장 전체에 양질의 상품을 공급하고 삶의 질이 올라가는데 도움이 될 거라네.”
“공公의 계획이 참으로 거창하시군요.”
상대 역시, 비슷한 나이대의 남성이었다. 하야시와 개인적으로는 아니었지만, 업무상 수 많은 일들을 하면서 오히려 친구보다 더한 마음을 나누게 된 사이였다. 유대나 팀워크는, 모든 종류의 일에 성공의 비결이 되고는 하는 요소들이다.
희끗한 머리를 한 두 관료와 사업가는 짧게 악수를 하고 이야기를 마쳤다. 그들이 있는 스위트 룸의 방 너머에는, 경호 인력들이 늘 그렇듯 따라다니고 있었다.
두 사내가 거실과 같은 공간에서 소파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고, 안쪽 방에서 경호조의 인원들과 점퍼, 즉 셋이 대기하고 있었다.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만, 실례가 되지는 않겠지요. 다음 일정이 곧장이라.”
그룹 계열 기업의 회장, 은 아니었고 사장 즈음 되는 인물이 그렇게 말하며 소파에서 일어섰다. 협의에 대한 의견 조율이나, 의사를 묻는 일은 원만하게 끝이 났다. 에둘러서 거절을 뜻하는 말은 아니었고 실제로 일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알았네. 아마 곧 한번 더 다같이 볼 일이 있을 거야.”
“그렇습니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장년인이 방을 나섰다. 그에게도 경호인인지, 비서인지 한 명인가가 붙어서 따라 다닌다. 객실을 나서는 그에게 앞장 서 문을 열어주고 기업인이 사라졌다.
하야시는 손목 시계를 톡톡 두드리면서 이야기했다. 옷핀처럼 만들어져 재킷의 목깃 즈음에 몰래 붙어 있는 마이크에 연결되어 있는 물건이었다. 경호조의 인원이나 하야시와 곧바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조금만 쉬다 가겠네. 근래 들어 일정이 빡빡하니 체력적으로 무리가 되는군.”
톡톡, 하면서 통신기 너머에서 손가락을 두드리는 소리가 작게 났다. 지향형 스피커로, 하야시가 입은 정장 셔츠의 카라 부분에 붙어 있어 그에게만 상대방의 소리를 듣게 해주었다. 투명한 재질이고 작으며, 목깃의 안쪽에 부착되어 잘 보이지 않았다.
점퍼 조직에서 만들어낸 물건이었다. 정말 다양한 종류로, 모아서 쓴다면 충분히 탐정 놀이라도 할 수 있을법한 퀄리티였다. 어설픈 현실의 사설 탐정이 아니라, 영화나 만화에 나오는 셜록 홈즈같은 활약이라도 할 수 있을 법한 물건들이었다.다음 일정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다. 보통의 그라면 곧바로 움직이고 그 사이에 여타 업무를 구술로 처리하다가, 약속 시간에 일찍 도착하는 게 평소의 루틴이었다. 외무 부대신이 시간보다 늘 일찍 나오는 건 관계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이야기였다.
보통 사회 관계에서 약속은 조금 일찍 만나는 게 올바른 것이었지만,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만나는 이들의 경우에는 너무 빠르게 가는 것도 상대에게 괜한 부담감을 줄 수 있는 일이었다.
부대신의 쉼에 따라 호위 인력들도 스위트 룸의 방 안에서 대기했다. 요인이 쉰다고 그들까지 완전하게 쉬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 장소에서 멈춘 대상을 자리 잡고 경호하는 게 역할에 따라 몇 명은 더 편하긴 했다.
일단 민서는, 다소 긴장을 풀고 방 내부의 벽면에 등을 기대며 바닥에 앉아 있었다.
보통 요인의 움직임은 대외비로 이루어지기에, 내부에 조력자가 없는 이상 테러를 벌이려는 쪽에서도 위치나 좌표를 확정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테였다. 모습이 외부에 드러나는 일정을 할 때에는 그들도 주의나 경계 태세에 각별함을 기울인다.
야가미는 스위트 룸 내부에 요인과 그들 관계자만 있자 편하게 방을 나섰다. 외무성 부대신이 쉬고 싶다고 말했지만, 어지간하면 요인의 곁에 바로 있는 것이 경호에 도움이 되었다. 겸사겸사, 물이라도 좀 마실 겸 방 안에서 그가 걸어나섰다.
몇 걸음을 걸어 커다란 내부에서 거실을 옆에 두고 부엌으로 걸어간다.
그럴 때 야가미의 감각에 기이한 소음같은 것이 들려왔다.
후욱, 하는 점퍼 특유의 전조 증상이었다.
야가미는 편하게 걸음을 옮기다가, 소름이라도 돋은 사람처럼 표정을 굳히더니 늘 왼쪽 손에 감아쥐고 있는 통신기의 버튼을 눌렀다.
꾸-욱 하고 누르자 곧바로 방 내부에서 메리의 통신기가 시끄러운 소음을 냈다. 민서나, 메리, 그리고 호위조 인원들이 정신을 차렸다. 예상치 못하는 순간이었지만 어차피 점퍼는 그런 순간에 나타나게 마련이었다.
경호 대상으로부터, 민서의 방향으로 선을 그어서 그 바로 앞. 근처 객실이나 호텔 건물 내부를 바라보는 외부 옥상에서의 저격수들이 신호를 받고 움직였다.
통신기의 신호는 저격조 인원들에게도 바로 가게 만들어두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것 역시 조직에서 요원들에게 지급하는 보급용 통신기였다.
민서는 표정과 함께 마음을 굳게 다짐했다. 별다른 행동을 할 틈까지는 없었다. 재밍 영역은 이미 발동되고 있는 상태였다. 스위트 룸, 안쪽 방의 벽면을 둔 바로 앞이 점퍼가 나타날 자리일 테다. 그들은 부대신과는 사선 방향의 객실에 있었다. 그 말은, 정면으로 쏜 총알에 부대신이 맞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메리는 곧바로 자동 권총을 꺼내들어 벽면에 바싹 붙였다. 호텔 벽실의 내장재로 무엇이 쓰였는 지는 모르겠지만, 뚫릴 때까지 쏠 생각이다.
탕! 그녀는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은 벽면을 한 번에 뚫었다. 목재를 원료로 한 가공재가 들어 있는 룸의 벽은 충격에는 약한 편이었다. 대부분의 사물들은 권총탄 앞에서 형체를 유지하기 어렵긴 하지만.
총탄이 벽면을 뚫고 날아간다. 그대로 관통해서 바람을 가른 납덩이는 무언가를 더 맞추지는 못했다. 반대편 벽에 바람 구멍같은 흔적을 더 남겼을 뿐이었다.
다만 메리가 한 발로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연이어서 자동 권총이 격발되었다. 타, 타탕! 그녀가 노리는 곳은 대강 사람의 어깨선이 있는 부근이었다. 제법 높게 권총을 치켜 들고 어려운 자세로 쏘아댄다.
야가미의 감각이 틀릴 리는 없었다. 일반적인 점퍼들도 그러하거니와, 쉴더의 경우는 상대의 도약에 보다 민감한 존재였으니.
역시 두 발째의 총알이 벽면을 뚫고 나서, 상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점퍼의 점프는 설명하자면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슬로우 모션으로 촬영을 하며 점퍼의 몸이 나타나는 순간을 찍는다면 그것은 데이터가 로딩되듯 일부가 먼저 나타나고, 최후에 완료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 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전까지 없던 사람의 형상이, 조금의 손실과 누락 없는 뚜렷한 모습으로. 초고속 너머의 일이었다. 마치 이미 그 자리에 있었던 것과 같은 존재감은 인지적 부조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다만 익숙한 이들이 느낀다면, 기묘한 감각이나 미약한 떨림,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도 왜인지 들리는 것 같은 비현실적인 전조음만이 그 출현을 예고하기에 순차적으로 예감할 뿐이었다.
총알이 허공을 지나 어깨의 앞에 다가올 때에,
희끗한 머리를 한 청년이 원래 있었다는 듯 출몰했다. 두 번째 탄환은 어딘가 피로해보이고, 볼이 패여 인간미가 없어 보이는 사내의 어깨선을 스치듯 지나갔다. 그가 조금 대각선으로 서 있었기에 그렇다.
그는 민서나, 메리가 있는 쪽의 벽을 바라본 채였다. 하야시를 향해서 점프를 하다가 오류가 생겼던 이전의 경험에서 배운 것인지, 애초에 뒤를 돌아보고 몸을 비틀어 불시의 일격에 최소한의 대비를 했다.
총알이 지나가며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완전한 관통은 아니었고 겉면의 살을 훑으며 지나간다. 세, 네 번째의 총알 역시 비슷했다. 세 번째의 총알은 더욱 옅은 흔적을 남기며 날아갔고 네 번째는 허공을 지났다.
타-타타탕! 하는 귀 따가운 총성이 하야시와 야가미, 방 벽 너머의 경호조 등에게 울리고 그들이 이상 사태에 몸을 움직였다.
청년은, 양 손에 기관단총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메리가 노린 어깨가 적절하게도, 몸통의 양면은 방탄 조끼로 가려져 있었다.
희끗한 머리. 마른 체형. 핏기가 적고 무미건조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양인 청년이 한 손엔 날아가버린 총과 어깨에도 개의치 않고, 나머지 손을 앞으로 겨누며 방아쇠를 당긴다.
“막-!”
야가미의 고함이 채 끝나기 전에 그가 방아쇠를 당겼다. 총격에 완벽하게 실신이 되기엔 어깨를 지난 사격의 상처가 얕았고, 일반적인 이의 표정이 아닌 다소 몽롱한 상태의 얼굴이 의심스러운 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