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방식에 대한 자기통찰
확신을 연기하지 않기로 한 사람의 일 기록
이 글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소개문이라기보다, 나 스스로를 정리하기 위한 기록에 가깝다.
하지만 동시에, 내 블로그에 들어오는 작가들, 강의를 섭외하려는 담당 공무원들, 오래 알고 지낸 지인들, 그리고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까지—각자의 위치에서 이 글을 읽어도 좋겠다는 마음으로 남긴다.
나는 출판사를 운영하는 편집자다.
책을 만들고, 글을 쓰고, 강의를 한다.
기획과 편집, 디자인과 콘텐츠, 현장과 행정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다루며 일해왔다.
이력만 놓고 보면 제법 단단해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결과물도 있다.
책은 만들어졌고, 강의는 여러 해 이어졌다.
그런데도 나는 일을 할 때마다 ‘확실한 사람’처럼 말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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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주 망설이는 지점
사업 제안이나 협업 제안이 들어올 때, 상대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은 대개 같다.
“무조건 할 수 있습니다.”
“저를 믿어 주세요.”
“기한 안에 결과물 확실히 나옵니다.”
나는 이 말을 쉽게 하지 못한다.
할 수 없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사라지는 것들이 분명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일을 ‘성공 여부’로만 단순화시키고,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변수와 사람의 상태를 지워버린다.
그래서 나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이 조건에서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시간과 조율이 필요합니다.”
“더 잘 맞는 곳을 알아보시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이유로 캔슬된 일도 있다.
한 번은 바로 그 자리에서 확답을 요구받았고, 나는 끝내 확신의 언어를 건네지 못했다.
상대는 급했고, 결과물은 당장이었고, 나는 시간을 두고 대화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 일을 보내고 나서 든 생각은 의외로 단순했다.
“아, 잘 됐다.”
그 정도의 확신만 요구되는 일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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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택해 온 일의 방향
나는 항상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결과물이 중요한 걸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결과만을 위해 사람의 마음이나 시간을 밀어붙이는 방식에는 끝내 익숙해지지 않았다.
책을 만들 때도 마찬가지다.
나는 책을 성취의 증거로 여기지 않는다.
브랜딩의 도구로만 사용하는 일에도 조심스럽다.
책은 누군가의 곁에 오래 남는 물건이고, 한 사람의 언어와 태도를 그대로 품고 세상에 나가는 매체라고 믿는다.
그래서 글을 쓸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 이 문장이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는 않는지
• 설명하려다 대상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 감정을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는 독자를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동의할 여백을 남기고 싶다.
‘좋은 말’보다 ‘정직한 말’을 택하고,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그 자리에 놓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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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현실 사이에서
솔직히 말하면, 이런 태도가 항상 현실적으로 유리하지는 않다.
지금 내 수입이 많다고 말하기 어렵고, 경기는 오래전부터 좋지 않다.
코로나 이후의 여파, 세계적인 전쟁, 회복될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주변에도 사업이 잘 안 되는 사람들이 많다.
가족이 이 글을 보면 ‘배부른 소리’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한 달, 두 달이 지나 다시 읽으면 나조차 멋지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선택들 속에서, 자본으로 바로 연결되지 않는 방향을 고집하는 일은
분명 마음을 단단하게 소모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방식을 놓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나는 확신을 연기하며 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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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남기는 이유
이 글은 나를 포장하기 위한 프로필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어떤 지점에서 망설이고, 어떤 기준에서 물러나며, 어떤 방식으로 일을 선택해 왔는지를 드러내는 기록이다.
이 글을 읽고 나서
• 즉각적인 확답을 주는 사람을 찾는다면, 나는 맞지 않을 수 있다.
• 대신 과정과 맥락, 사람의 속도를 존중하는 협업을 원한다면 우리는 대화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책을 내고 싶고, 글을 쓰고 싶다.
그 마음은 줄어든 적이 없다.
다만 그 방식이 조금 느리고, 조금 덜 공격적일 뿐이다.
이 글은 나를 설명하는 동시에,
앞으로 나와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하나의 기준표다.
그리고 적어도 지금의 나는,
이 정도의 언어로 나 자신을 남길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