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심리에서 '재미'란

마움공감 그림책 심리

by nemo

그림책 심리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커리큘럼을 매우 성실하게 준비한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림책 심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진행자들 대부분이 그렇다. 진행자의 컨디션과 정서 상태, 참여자의 특성에 따라 매번 전혀 다른 경험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노련한 진행자 역시 늘 꼼꼼하게 준비한다. 특히 초보 진행자 시절에는 그 커리큘럼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 자체가 큰 긴장일 수밖에 없다. 질문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순서를 지키려 애쓰고, 준비한 내용을 다 해내야 한다는 부담 속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것은 피해야 할 일이 아니라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커리큘럼이 안전망이 된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고, 그 안에서 진행자는 스스로를 지탱한다. 이 단계에서의 성실함은 매우 중요하다. 구조 없이 감정을 다루는 일은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리큘럼을 충실히 준비하는 시간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이 활동이 나에게 맞는다는 확신과 노련함이 생겼다면, 나는 오히려 커리큘럼을 ‘조금 내려놓을 것’을 제안한다. 그림책 심리 수업이 재미없어지는 이유는 내용이 부족해서도, 방법이 틀려서도 아니다. 오히려 너무 정교하게 준비된 커리큘럼이 사람을 놓치게 되는 순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순서와 기획 의도는 여전히 필요하다. 마음을 열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과정 없이 곧바로 본 활동에 들어가는 것은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구조는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다만 그림책 심리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그램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우리가 돌보아야 할 것은 참여자의 정서다.


그림책 심리에서 말하는 ‘재미’는 웃음이나 활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재미란 내가 이 공간에서 존중받고 있다는 감각이다. 내가 한 말이 인정받고, 수용되고, 공감받는 경험. 그 힘으로 타인과 소통하고, 또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공감해볼 수 있는 정서를 키워가는 과정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듣고 웃어줄 때 가장 큰 안정과 사랑을 느낀다. 그래서 그림책 심리 프로그램에서 재미있다는 감각은, 잘 짜인 프로그램보다는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어도 괜찮다는 느낌에서 비롯된다.


그림책 심리 프로그램에서 관찰되어야 할 것은 참여자의 표정, 말의 속도, 침묵, 눈물 같은 미세한 정서의 움직임이다. 이를 위해 진행자는 커리큘럼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태도와 감각을 가져야 한다. 실제로 그림책을 펼치는 순간, 사람마다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온다. 누가 어떤 말을 먼저 할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을지, 말보다 눈물이 먼저 나올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이 불확실하고 주관적인 인간의 정서는 한 공간에서 매 순간 얽히며 흘러간다. 에너지의 흐름을 읽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때로는 커리큘럼을 잠시 내려놓고,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보는 선택이 필요하다.


오늘의 목표와 질문, 진행자가 준비한 메시지는 활동의 마무리에서 한두 문장으로 정리해도 충분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참여자의 궁금함과 마음에 머물러 주는 데 시간을 쓰는 일이다. 서로 공감하고 수용받았다는 느낌이 만들어질 때 관계가 형성된다. 이것이 바로 그림책 심리의 핵심이다. 이 과정은 지식이나 해결책을 전달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미세한 정서에 대한 교감과 존중 속에서 만들어진다. 감정은 사람의 에너지이기 때문에, 그 흐름을 따라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그림책 심리 프로그램은 때로 엉성해 보일 수 있다. 명확한 결론이나 결과물 없이 집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내가 느낀 감정이 수용되었다’는 경험, 그리고 사람마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인식이 남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진행자는 잘 짜인 프로그램을 보여주는 사람이기보다, 참여자의 불안과 속상함을 함께 견디고, 잘 들어주고, 수용하며,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으로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림책 심리는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동반자로 존재할 때 가장 잘 작동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