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벽』을 읽고 — 그림책 심리 모임 [책 마움]

그림책 심리

by nemo

빨간 벽 이야기


지난 국제도서전에서 처음 『빨간 벽』을 펼친 순간, 딱! ‘이거다!’라는 느낌이 번쩍 스쳤다.

짧디짧은 찰나였지만, 이 책이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네줄 것 같은 설렘이 가슴에 차올랐다.

오늘 모임에서 책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도 장면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샘솟았다.



읽는 동안 내 마음은 작은 생쥐의 마음을 따라 움직였다.

모호하고 답답하면서도 어딘가 설레는 감정들이 생쥐의 발걸음을 따라 반짝였다.

알 길 없이 앞으로만 나아가기만 했던 내 인생 같기도 했고, 빨간 벽 이야기만 주고받는 동물 친구들마저 내 모습의 한 조각처럼 느껴져 마음이 분주해졌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모임의 공간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빨간 벽이 놓여 있는 듯했다.

그 벽 앞에서 멈춰 선 듯했던 각자의 이야기가 하나둘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함께 귀를 열고, 눈을 마주치며 공감하는 동안에도 내면에서는 오래 묵은 기억들이 떠올랐다.

타인이 쌓아놓은 빨간 벽 안에서 남 탓만 하며 버티던 시간들.

그런 내가 어리석어 보이기도 했지만, 또 내 잘못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던 외로운 시간들이었다.

나는 그 벽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조차 없었다.

‘도전해봐, 할 수 있어, 네가 원하는 길을 가도 돼’라는 말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이 살아온 세월.

그 안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해도 결국 제자리였던, 미로 속에 갇힌 듯한 시간들이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나의 빨간 벽은 여러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과하게 조심스러웠던 성격, 삶의 기준처럼 깊게 새겨진 부모님의 말, 시대가 요구했던 모습.

그리고 내가 스스로 만들어버린 보이지 않는 벽들까지.



책을 덮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 안에 켜켜이 쌓여 있던 벽들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듯한 절망과 통쾌함이 동시에 밀려왔다는 것을.






빨간 벽을 지나서 나의 길을 찾아



우리는 함께 책을 읽고, 각자가 느낀 지점을 나누었다.

나눔은 내 자아를 깊이 들여다보는 산책 같은 시간이다.

그 안에서의 사유와 깨달음은 길가에 핀 민들레를 발견하듯 소박하지만 반갑고 소중하다.



특히 오늘, 헨린님의 말이 내 마음을 깊이 울렸다.


헨린:

“우리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자기 확신이 있어야 타인에게 답을 구하지 않고 빨간 벽을 지날 수 있을 테니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위로 질문들이 밀려왔다.



‘나는 정말 무엇을 원하는가?

왜 책을 쓰려 하는가?

왜 남이 정해놓은 기준에 나를 맞추려 하지?

그것도 하나의 빨간 벽은 아니었을까?

나는 왜 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싶은 걸까?’



빨간 벽 앞에 선 나는, 글을 쓰고 싶은 나의 마음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글 쓰는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으로 책을 낸다고 말하곤 한다.

그렇다면 나는?

강렬한 욕구는 있었지만, 그 실체를 붙잡지 못해 내 길에 들어서지 못하고, 누군가를 돕는 일만 해오고 있었다.

출판사를 시작했지만 정작 내 책은 내지 못한 채, 언젠가는… 하며 한탄만 늘어놓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3년 전, 책으로 만들고 싶었던 내 이야기를 작은 책자로 묶은 적이 있다.

모임에서 친하게 지내던 작가님께 비평을 요청했었다.

“글이 너무 날것이라 읽기 불편하고 힘들었어. 출간하면 팔리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오픈한 것 자체는 정말 존경스러워.”



그 말 이후로 출간 욕구는 순식간에 꺼져버렸지만, 동시에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글을 계속 쓰게 하는 양분이 되었다.

아름다운 문장과 멋진 표현은 없었지만,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로 가득했던 그 글들은 나의 호흡이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진짜로 원했던 것.

그것이 내 안의 빨간 벽을 허물게 한 힘이었다.






내 이야기 여정의 끝에 있는 것



내 이야기의 여정 끝에서 마주한 것은 결국 단 하나였다.

나를 회복시키고 자라게 만든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는

언제나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마음,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있었다.



성실하게, 부지런히, 때로는 숨이 차도록 노력하며 살아온 시간 속에서

나는 좋은 직장,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성공한 전문가를 향해 달려왔다.

그 모든 성취는 마치 내 삶의 목표처럼 보였지만, 실은 내 안의 결핍을 메우려는 몸부림이었다.



내가 정말 바랐던 것은 단 하나, 엄마의 사랑이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그 마법 같은 힘.

나는 그 힘을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 엄마와 헤어졌던 그 빈자리의 바람이

내 삶을 외롭게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걸어가게 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도 누군가에게 그 힘을 건네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시작은 엄마의 뱃속,

엄마와 완전히 하나였던 자리에서 비롯되었다.

세상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듯했던 그 시절,

작게 웅크리며 멈춰 서 있던 아이에게

엄마를 다시 찾아주는 것—

그것이 내 삶의 이유이자 인생의 숙제였다.



심리 상담을 지나며 미심쩍었던 의문 하나는 오히려 확신으로 굳어졌다.

사람들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엄마의 사랑을 찾아 헤맨다는 것을.



어쩌면 인간의 본질은

모태에서 태어나 모태를 그리워하고, 사랑에 빠지고,

다시 누군가의 모태가 되어 사랑을 건네며

세상을 이어가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가 보고 싶다.

그 시절에도,

오늘도,

그리고 내가 백 살이 되는 어느 날에도.

나는, 엄마가 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그림책 심리에서 '재미'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