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네 박. 네가 박을 타면 뭐가 나왔으면 좋겠어?

질문의 당혹감과 답을 찾아가는 내 여정의 거리는 낯설기만 하다.

by nemo

독서 심리 프로그램을 진행한 지 몇 주가 지났다.

전래동화 시리즈로 독서 심리를 하던 중이었다.


네모
“흥부네 박을 탔더니 흥부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 나왔어요. 쌀, 집, 비단...


자~ 내가 박을 타면 뭐가 나왔으면 좋겠나요?”


사람들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이게 무슨 뜻인지 묻는 표정이었다.


질문과 답 사이에서 길을 잃은 눈빛들은,
삶을 살아오며 길가에 흘려버린 것들을 다시 찾아 헤매는 사람들 같았다.


즉흥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어처구니없는 헛소리 같은 말들은
‘쓸데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강제로 버려지거나
스스로 포기해야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렇게 비슷한 삶을 살아온 우리들은
그 짧은 여백조차 우주를 떠도는 시간처럼 길게 느꼈을 것이다.
정말, 이해된다.


네모
“흥부네처럼, 나의 박에서 내가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해보고 한 번 표현해보세요.


단, 돈이나 금, 보석,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 지팡이,
요술 지갑... 이런 건 안 됩니다.”


사람들 대부분
“하하하, 돈 말고는 없는데요... 그럼 부동산은요? 비트코인은요?”


네모
“비슷한 결이죠?”


사람들
“어렵다...” (웅성웅성)


참석자1
“저도 다른 곳에서 소원에 관한 프로그램을 진행해본 적 있는데,
거기서도 다들 돈이나 금을 투자해서 모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네모
“맞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엔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요.


그 말은 ‘돈이 있으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뜻과 같죠.
그래서 돈이 '조건'이 되기도 해요.


이미 돈이 충분히 있다고 가정해보세요.
돈 걱정 전혀 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때 하고 싶은 게 뭘까요?


그 질문을 던졌을 때
비로소 참여자의 진짜 욕구가 드러나기 시작해요.


진행자는 참여자의 욕구의 본질에
가깝도록 질문을 해 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연인이 연인에게,
누구든지요.”


돈이라는 조건이 징검다리가 되어
그 사람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표면적인 욕구든, 무의식적인 욕구든,
걱정이든 고민이든, 소소한 소망이든
무엇이든지 나타나게 된다.


8년 전, 평화걷기 청소년 가족캠프에서
심리정서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부모 집단과 청소년 집단으로 나누어 진행했는데
별다른 설명 없이 바로 시작했다.
표현 도구는 아이클레이였다.


청소년들의 소원은 정말 다양하고 재미있었다.
20년 뒤 자신의 모습을 표현하거나,
멋진 스포츠카,

온 가족이 함께 사는 3층짜리 주택,
커다란 수영장이 있는 집,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한 심장 등
다양한 꿈들이 있었다.


반면 부모 집단은...
작품을 모아놓고 다 같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 현금이나 금,
혹은 건물주를 상징하는 빌딩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결국 거의 모든 작품이
‘돈’에 관한 이야기였다.


내가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도
돈이 정말 중요하긴 하다.
뭐라 말하기도 그렇다.


나도 돈 많았으면 좋겠으니까.


대부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고,
당연한 반응이다.


돈이 없어서 힘들었던 삶의 흔적들이
너무 아팠다.


돈이 있으면 아프지 않을 거라는 생각,
더 아플까봐 불안한 마음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혈액처럼 혈관을 타고 흐른다.


그래, 돈. 인정.
일단 빼지 말고 인정하자.
그리고 이미 충분히 많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그 많은 돈이 내 통장에 꽉 차 있다면,
뭘 하고 싶을까?


나는 생각했다.
“엄마랑 단둘이 여행 가고 싶어요.”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돈 없어도 갈 수 있는데.


뭐 그렇게 대단한 효도를 하겠다고
젊은 시간들을 일하느라 다 보내고
‘여행은 언제 가지?’ 싶다.


이렇듯 우리는
생각보다 자신의 욕구를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채
일상을 살아간다.


참석자2
“하고 싶은 게 뭔지…”


서로를 멀뚱히 보며
혼자 골똘해지는 몇 초가
몇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참으로 낯설기만 했다.


네모
“흥부네 박.
여러분이 박을 타면
뭐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소원이 평생을 좌우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정말이지 가볍게 생각해보세요.
지금 당장 짜장면 한 그릇 정도여도 괜찮아요.”


사람들은 방향을 잡은 듯,
자신들만의 표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들의 박 안에는 어떤 삶의 조각들이 있었을까?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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