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박을 타면, 나왔으면 하는 것

흥부네 박처럼, 내 박에서 뭐가 나왔으면 좋겠니? 돈 말고

by nemo

네모

“아직 나의 소망을 표현한다는 것이 와닿지 않으시죠? 제가 몇 가지 사례를 말씀드릴게요.”


참여자들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중학생 한 명이 갈라진 박 사이로 커다란 건물을 그렸어요.
아직 대화 전일 때라 여느 때처럼 ‘건물주’겠거니 싶었죠.
그런데 그 학생의 말을 듣고 저는 참 놀랐고, 감동을 받았어요.”


학생의 말은 이러했다.

“이건 종합병원이에요.
얼마 전에 할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셨는데,
제가 의사가 될 만큼 공부는 잘하지 못해요.
그렇지만 진짜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종합병원을 갖고 싶어요.
엄마 아빠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프시면 바로바로 치료받게 해드리고 싶어요.
아프신 할머니 할아버지도 치료받게 해드리고 싶어요.
다양한 치료를 해야 해서 큰 병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의 사례는 노인복지관에서다.
한 할머니의 종이에 그려진 그림에는 갈라진 박 사이로 사람 한 명이 서 있었다.


“할머니, 박에서 사람이 나왔네요? 누구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응, 우리 손주! 얼마 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어.
이제 언제 올지도 모르고, 너무 보고 싶어.
내가 박을 타면 보고 싶은 우리 손주가 나왔으면 좋겠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했던 사람들 모두 공감하며 탄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중학생 사례와 할머니 사례를 이야기하자, 한 참여자가 말했다.


“네모님, 감 잡았어요!”


우리는 다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앞선 이야기들이 내 이야기의 마중물이 되어 도란도란 이야기들을 길어 올렸다.



네모

“나를 엄청 건강하게 해주는 마법의 약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아주 혈기왕성하고 혈색이 좋고,
기운이 차오르는 그런 건강함이 갖고 싶어요.”


사회생활할 때는 늘 밝은 모습으로 지내다 보니
내가 이렇게 체력이 약한지 사람들이 잘 모른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신이 약한 곳으로 반응이 먼저 온다지.


종합검진을 해도 특별한 위험 증상이 없었다.
그러다 한의원을 가면 비장, 위장이 약하다는 말을 꼭 듣는다.
‘약하다’는 말은 참 모호했다.
‘염증이 없으니 아프지 않다’는 말도 모호했다.


‘내가 아픈 게 아파해도 되나’ 싶은 모호함이 늘 있다가,
이러다 딱 죽겠다 싶으면 갑자기 편두통에 밥 한 술 들어가지 않으니 말이다.


건강에 대한 소망…
한 번 아프면 오래가는 나이가 되었고,
내가 아프다고 알뜰살뜰 보살핌을 요구하지도 못할 여건에다가,
잠시 정지된 일정을 그 누구도 대신해주지 않으며,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다.


젊어 아팠을 땐, 그저 견디는 것만 할 수 있었다.
엄마가 되어 아팠을 땐, 빈 틈이 죄책감이 되어 진통제를 틀어 넣었다.


중년이 되어 아프니,
몸보다 마음이 더 빨리 아파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혈색이 반짝거리는 건강함에 대한 소망은
몸이 아플 때 밀려오는 고독함이 싫어서일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참여자 1

“저는 지금 나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해요.
전문가 과정을 밟고 있는데, 자격시험과 수련이 상당히 어렵고 고된 과정이라
그 안에서 서로 의지하고 격려할 수 있는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동료보다는 멘토에 가깝다는 생각도 들어요.
좋은 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공부하고 수련한 것을 삶에 녹여내는 그런 사람이요.”


참여자 1은 자신의 전문성을 삶에서 실천으로 보여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지적으로 매우 높은데 삶은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만났을 때 실망스럽기도 하고,
반대로 대외적으로 그렇게 뛰어난 평가를 받지 못하던 분인데
삶 자체로 전문성을 실천하고 계신 분을 보며 진짜 멋있었다고,
자신이 만났던 인격이 훌륭한 교수님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도 내 삶에서의 실행이 기반되어야만 강사로써 자격이 있다고 믿기에 가족들과 건강한 소통을 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 나의 이야기를 하며 나도 당신이 생각하는 괜찮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냐고 진심 어린 농담을 던져보았다.

작은 장난 말 하나에도 얼마나 노력했는지 인정받고 싶은 내 마음이 느껴 저 스스로도 웃음이 났다.

'그래 정말 열심히 했었지...'

한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는 길에는 참으로 길고 고된 여정이 반드시 존재한다.


참여자 1의 이야기를 듣고 나와 비슷한 가치관에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궁금함이 생겼다.

이 분이 그 과정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동료를 필요로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혹시 최근에 공감을 받고 싶었던 일이 있으셨나요?

라고 묻자, 참여자 1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사실은 어떤 일이 있었다며, 어떤 문제가 생겨서 대처하는 과정에서 직장 상사와 약간의 갈등이 있었는데, 처음 경험하는 문제 앞에서 자신이 직면한 문제를 함께 고민해 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자 나도 참여자 1의 입장이었다면 약간 무섭기도 하고 외롭고 억울할 것 같았다.

그래, 그럴 때, 노련한 선배나 통하는 동료가 있었다면 더 잘 헤쳐 나갈 수 있으니까.

나도 그 전 직장에서 어려움을 버티며 재미있게 일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동료들의 같은 경험의 지혜 나눔과 따뜻한 격려였으니까.


참여자 1

“누군가를 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결국 내가 스스로 나를 인정해 줘야겠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스스로의 깨달음까지 정리해 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역시 전문가시네요” 하며 웃음 큰 박수를 보냈다.


참여자 2

“예전에 퍼스널 컬러 진단이 유행할 때였어요.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저에게 은은한 색이 잘 어울린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저는 좀 열정적이고 싶어요.
그래서 새빨간 색으로 나를 표현해 봤어요.”


참여자 2는 이제는 은은함에서 벗어나
자신의 염원을 불태우는 열정적인 자신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요즘에는 하고 싶은 것이 폭발적으로 생겨나
이것저것 정말 많은 것을 시도하며 지낸다고 했다.


그 말을 하는 그분의 눈빛은 예쁘게 반짝였고,
설렘을 가득 담고 있는 별 바구니처럼 빛나 보였다.


“이제 좀 내가 뭘 원하는지 조금씩 알 것 같아요.”


참여자 2는 타인과 조화롭게 지내기 위해
갈등을 유발하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자신의 헌신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하지 않아도 될 양보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받은 경험을 이야기했다.


우와,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가족들이 떠올랐다.

'하지 않아도 될 양보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경험'이라니

너무 자주 발생하는 거 아냐? 가까운 사람일수록 아닐까?

그만큼 정말 많은 사람들이 흔히 겪는 일들일 것이다.

바로 맞장구치며 내 이야기가 툭 튀어나오는 것을 꾹 참고 조신하게 경청에 집중했다.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
이제는 맺어야 할 관계와 끊어야 할 관계에 대한 구분이 생기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함께 나아가는 즐거움을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내내 내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흘렀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깨질까 봐 부여잡고 있던 시간들 속에 머물러 있던 나.
그 애쓰던 나를 다시 찾아가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시간을 함께 했었기에,
나도 그 아픔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마음을 나눴던 그 기억의 미소가 마음을 따뜻하게 했다.


참여자 3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좀 큰 수술을 몇 번 했어요…”


(다음 이야기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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