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으로 마음을 열고, 이야기로 자신을 만나다
모임의 시작은 늘 가벼운 인사와 담소로 열렸다. 자리에 앉고 오늘의 흐름을 안내하면, 호기심이 깃든 눈들이 하나둘 반짝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책마움’이라는 작은 모임 공간으로 모여들었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선함으로 버텨온 책임과 역할, 웃음 사이로 배어 나오는 배려의 흔적들.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나 자신의 모습에 조금 더 가까워질 것 같은 기대와 조심스러운 긴장감이 함께 자리했다.
테이블 위에는 다양한 색의 심리 보자기가 펼쳐져 있었다. 선명한 원색부터 차분한 무채톤, 이름 붙이기 어려운 중간 색들까지. 나는 참여자들에게 지금 자신의 마음에 가장 먼저 닿는 색을 골라 달라고 말했다. 이유는 없어도 괜찮고, 설명은 나중이어도 된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쉽게 손을 뻗지 못했다. 한 사람은 색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고, 또 다른 사람은 두세 장의 보자기를 겹쳐 들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색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마주하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만 골라야 하나요?”
“여러 개여도 괜찮아요. 지금 마음이 그렇다면요.”
그 말에 공간의 공기가 조금 느슨해졌다. 마음은 언제나 하나의 색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색을 고른 뒤에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그냥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어요.”
“요즘 이 색만 보면 마음이 좀 가라앉아요.”
“좋아하던 색은 아닌데 오늘은 이게 편하네요.”
같은 색을 들고 있어도 이유는 모두 달랐다. 색은 취향이 아니라 지금의 상태를 드러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정답도 해석도 필요 없었다. 각자의 말이 조용히 놓이고, 그 말이 있는 그대로 머무를 뿐이었다.
한 참여자는 은은한 색을 바라보다 말했다. 튀지 않는 색을 오래 좋아해 왔는데, 그것이 자신의 삶의 태도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올해 자신의 색을 주황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원래는 노란색을 오래 좋아했지만, 흔들리는 시기를 지나며 올해만큼은 오렌지를 좋아해 보고 싶어졌다고 했다. 따뜻하지만 단단해지고 싶다는 말이 덧붙여졌고, 그 문장은 설명이라기보다 조용한 다짐처럼 남았다.
이후 종이와 색연필을 나누어 주고, 자신이 고른 색과 가장 비슷한 색을 찾아 종이에 옮겨 보도록 했다. 종이와 색연필은 묘한 마법처럼 모두를 어린아이처럼 만들었다. 금세 공간은 조용해졌고, 사각사각 연필 소리만이 흐르기 시작했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서 감정은 손끝을 통해 먼저 흘러나왔다.
색을 다 칠한 뒤에는 그 옆에 단어나 문장을 적었다.
‘단단하지만 따뜻하게’, ‘은은하게 오래’, ‘쉬고 싶다’, ‘나를 소진하지 않는 삶’.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날의 마음을 정확히 품고 있었다. 누군가는 말했다. 말로 할 때는 막연했는데, 적고 나니 마음이 조금 정리되는 것 같다고. 워밍업이었지만 이미 충분히 깊은 시간이었다.
이제 그림책을 펼쳤다. 이날 함께한 책은 일본 작가의 그림책 〈아기곰의 가을 나들이〉였다. 나는 책을 손에 들고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크지 않았다. 아기곰이 가을 숲을 걷고, 멈추고, 바라보고, 다시 움직이는 단순한 흐름이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공간의 밀도는 분명히 달라졌다. 사람들은 어느새 그림 속 장면 위에 자신의 시간을 겹쳐 올리고 있었다.
낭독이 끝난 뒤, 나는 오늘 가장 마음에 남은 장면을 떠올려 보자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색을 꺼냈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색으로 표현해도 충분했다.
누군가는 숲을 닮은 초록을 집었고, 누군가는 햇살 같은 노랑을 골랐다. 한참을 망설이다 아무 색도 고르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그 침묵 역시 하나의 대답처럼 느껴졌다.
이야기는 천천히 흘러갔다. 숲 장면이 좋았다는 말 뒤에는, 사실은 지금 너무 쉬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이 따라왔다. ‘나들이’라는 단어가 계속 마음에 남았다는 말 뒤에는, 지금의 삶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숨어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누구의 말도 특별하지 않았지만, 모두의 말이 정확했다.
그때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쉬고 싶다는 마음은 약함이 아니라 오래 버텨왔다는 증거일 수 있다고, 잠시 물러나는 선택이 도망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방식일 수도 있다고. 그 말은 조언이라기보다 함께 확인하는 문장이었다.
그림책 심리는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왜 이 장면이 지금의 나에게 왔는지, 왜 이 색이 필요했는지. 한 참여자는 자신이 고른 색을 바라보다 말했다. 추구하는 삶의 모습이라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지금의 삶을 잠시 피하고 싶은 마음 같기도 하다고. 그 말은 어떤 설명보다 깊게 남았다.
이야기 속 아기곰은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지 않는다. 멈추고, 둘러보고, 다시 걷는다. 삶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움직임만큼이나 멈춤이 필요한 시기가 있었다.
모임의 마지막에 나는 다시 물었다. 처음 색을 고를 때와 지금, 마음이 조금 달라졌는지를. 누군가는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정리된 느낌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왜 힘들었는지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그림책 심리는 삶을 바꾸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색을 고르고, 말하고, 기록하는 동안 우리는 각자의 삶을 조금 더 또렷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이 시간은 누군가를 분석하는 자리가 아니라, 자기 편이 되어보는 자리였다. 그림책은 말없이 곁에 있었고,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색과 이야기로 꺼내 놓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조금 길게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내가 길게 설명했던 이야기
― 그림책은 언제나 지금의 마음을 비춘다
사람들은 종종 그림책을 이해하려고 한다. 이야기를 파악하고, 의미를 찾고, 작가가 말하고자 한 바를 짚어내려 한다. 하지만 그림책 심리에서 중요한 것은 책을 얼마나 정확히 읽었는지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장면이 남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우리는 책 전체를 기억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한 장면, 한 표정, 한 색감만 오래 붙잡는다. 그것은 책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마음이 선택한 장면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장면은 보지 않는다. 지금의 삶이 묻고 있는 질문에 닿는 부분만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같은 그림책을 읽어도 남는 장면은 매번 달라진다. 어떤 날에는 숲이, 어떤 날에는 멈춰 선 곰의 표정이, 또 어떤 날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빈 여백이 마음에 걸린다. 그 장면은 책의 메시지가 아니라 현재의 마음이 보내는 신호다.
그림책은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거울처럼 마음을 비춘다. 우리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의 자신을 읽는다. 말이 막히는 순간이 생기는 것도 그래서다. 할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언어가 되지 않은 감정이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숙성의 시간이다.
색을 고를 때 이유를 몰라도 괜찮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마음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반응한다. 의식이 설명하기 전에 이미 몸과 감정은 알고 있다. 그래서 색은 성격을 말하지 않는다. 색은 지금의 상태를 드러낸다.
그림책 심리는 무언가를 가르치기 위한 시간이 아니다. 자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통로다. 그림책은 늘 조용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서 우리는 가장 솔직한 마음을 만난다. 그리고 그 마음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그림책에는 모든 사람의 현재가 투영된다고.
그날 우리가 마주한 장면은 모두 달랐지만,
각자의 삶에는 정확히 필요한 순간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