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이 많던 어느 날 오랜만에 멀리있는 보고 싶은 베프에게 전화를 했다. 잘 지내? 했더니 술한잔하러 갈까. 어찌 내가 원하는 답변을 딱 하는지 눈물이 날 뻔 했다. 말이 필요없는 절친이 있는데 지금이라도 인생 후회 없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인생에 대해 공통으로 갖고 있던 근본적인 후회들 중에 친구들과 연락을 이어가지 않은 것도 하나다. 조만 간 부러라도 만나서 소주한잔 꼭 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있었다.
의지가 있으면 이루어지는 법, 수일 후 그를 만나 소주한잔 기울이게 되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그와 만남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하다. 부담없이 만나고 한잔하는게 평범하다면, 대화는 우리 삶의 얘기라 특별하다. 그는 스스로 삶을 대하는 자세가 평범하다지만, 나는 그가 말하는 보통의 삶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언제든 이렇게 평범과 특별함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을 후회없이 갖기를 소망한다.
살당보민 살아진다(표준어: 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가 삶을 대하는 자세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고단하고 힘들다. 아무 생각없이 산다는 그도 나름 자기 스스로 다독이면서 살고 있기에 내게 편안한(?) 삶을 권유할 수 있는게 아닐까. 그는 읽은 책의 내용을 소개한다. 사람들 고민중에 실제로 일어나는 건 3%도 안 된다. 97% 생기지도 않는 쓸데없는 일에 신경쓴다. 긍정보다 부정에 신경쓰는 우리들. 언제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얘기 같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특별하게 들린다. 3% 발생가능 한 일에 대한 고민, 긴장, 적당한 스트레스가 필요한 게 아닐까라는 내 질문에 그의 대답은 과연 그 답다. 스트레스는 누가 만든 말인가? 라면서, 적당한 긍정 스트레스는 거의 없다는 게 그의 인생 경험에서 나온 결론이란다. 듣고 보니 그렇다.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다. 작은 스트레스도 받지 않겠다는 그의 '살당보민 살아진다' 삶의 자세를 배운다.
일상 기록을 거부하는 것 또한 그의 삶의 자세이다. 나는 기억하기 위해서 기록을 하는데, 그는 이것마저 스트레스로 본다. 나는 어떤 기록도 남기고 싶지 않아. 마지막 삶의 순간에도 기억없이 떠나도 후회 없을 거야. 지난 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싫다. 생각나면 생각나는 것이지 들쳐 내면서 생각하는 것은 싫다. SNS 안하는 이유도 기억이 사람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거다. 그는 '살당보민 살아진다' 정말 그렇게 살고있다. 그는 편안함 이상으로 득도한 부처처럼 사람을 껴안는다. 존경심이 생긴다.
언제가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다. 언제 어떻게 고향으로 돌아가면 좋을 지에 대한 내 고민에 그의 제안은 '탄력 근무제가 가능한 과수원 농삿일'이다. 할 일 없으면 농사가 아니라, 제주 환경에서 과수원일은 우리 세대까지는 지속가능한 직업이고 심지어 서울대 출신의 한 후배는 과수원일로 꽤 성공했다는 사례도 소개한다.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그 후로 난 '스마트 팜'을 고민하고 있다. 제주 지역에 스마트 팜 보급에 일조한다면 이거야 말로 인생 2막이 의미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든다.
그와 가까운 곳에서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