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견쟁이 사람들

오지랖과 따듯함 그 경계 어딘가

by 미키

여행을 하다 보니 현지인들에게 길을 묻거나 교통편에 대해 질문을 해야 되는 일들이 많다. 아무리 구글맵이 잘 되어있어도 실제 길과는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고, 구글에서 기차와 버스시간을 꼼꼼하게 알아봐도 막상 그 시간에 오지 않기도 하며, 예고 없는 파업이 잦은 이탈리아에서는 예측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현지인들에게 종종 도움을 구하는데, 신기하게도 이탈리아 사랍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도움에 흔쾌히 응했다. 뿐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경우가 많았다.


나폴리 여행을 하고 있던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버스가 제시간에 오지 않아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10분 정도 흘렀을까. 주말이기도 하고 날이 너무 더워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되나 싶은 찰나에 길건너편에서 갑자기 한 할아버지가 무단횡단을 하며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버스를 타러 건너오신 줄 알았는데, 대뜸 자기 휴대폰에 이탈리아 버스 어플을 보여주면서 버스가 5분 걸릴 거라고 말해주시더니 쿨하게 다시 길 건너편으로 가시는 게 아닌가. 고맙다며 손을 흔들어드렸더니 엄청 뿌듯한 표정으로 다시 갈길 가시는 모습이 너무 고맙고, 귀엽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5분을 더 기다려 무사히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시칠리아에서 버스를 탔던 어떤 날에는 갑자기 버스가 멈춘 적이 있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창밖을 봤더니 좁은 길이라 차 두대가 동시에 지나갈 수 없었는데, 맞은편 버스가 우리 쪽 길로 진입하는 바람에 서로 길을 막고 있는 상황이 발생했다. 근데 갑자기 얌전히 앉아있던 이탈리아 승객들이 모두 일어나더니 한 명은 기사님께 훈수를 두고, 한 명은 내려서 뒤로 후진할 수 있게 교통정리를 하고, 다른 누군가는 맞은편 버스로 가서 상황을 전달하고, 심지어 버스 밖에 서 있던 어떤 사람은 버스에 올라타더니 기사님께 자기가 버스 뒤쪽을 보고 있을 테니 자기 신호를 받고 후진하라고 하며 모두가 적극적으로 이 일에 동참하는 게 아닌가. 나는 그 상황이 너무 순식간에 일어나서 어안이 벙벙했는데, 신기한 건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발 벗고 나서서 서로 상황을 정리하고 순조롭게 길을 만들어 5분 후에 양쪽 버스가 무사히 길을 지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상황이 종료되자 버스에 올라탔던 사람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내려 자기 갈길을 가고 승객들도 다시 조용히 제자리에 앉아 자기 할 일을 했다. 나는 그 상황이 감동적이면서도 너무 재밌게 느껴졌다.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 일인 양 발생한 상황에 대해 회의를 하더니 기사님과 합심해서 해결하는 과정이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일은 항상 일상인 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와 어려운 상황을 함께 극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따듯함을 느꼈다.


생각해 보면 한국도 2000년대 초반까지는 그런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무슨 일이 발생하면 소수의 사람들만 나서거나 무관심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누군가에게 먼저 나서서 도와주는 일은 극히 드물고, 도움을 요청해도 자기 일인 양 도와주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무래도 집단보다는 개인이 중요한 사회로 발전하면서 그 양상이 더 심해진 것 같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각자 고군분투해서 살아남아야 되는 팍팍한 현실도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는 것은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이다. 우리는 그만큼 마음의 여유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다는 게 괜히 속상했다. 그리고 개인 간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타인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사회에서 유독 팍팍함을 넘어 우울함과 불안감을 느꼈던 내가 아주 잠시지만 이탈리아에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있음과 여유를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조금은 찾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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