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을 살아가게 하는 찰나의 여유
이탈리아 하면 에스프레소가 바로 생각날 정도로 이탈리아 사람들의 커피부심은 대단하다. 어디를 가든 우리나라 편의점만큼이나 에스프레소 바가 많다. 사실 얼죽아만 고집하던 나에게 에스프레소란 특별한 카페를 체험하는 날에 마시는 커피였다. 근데 이탈리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스프레소를 하루 평균 2-3잔씩 마셨다. 보통 첫 잔은 아침을 시작할 때, 두 번째 잔은 이탈리아의 휴식타임(보통 3시-5시)에, 마지막 잔은 저녁 식후 소화제 개념으로. 그래서 에스프레소 바를 밥 먹듯이 방문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이 나라 사람들은 그저 커피에 중독돼서 그런가 보다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바에서 바쁘게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들의 모습 속에 묘한 여유를 느꼈다. 분명 쉴 새 없이 바쁜데 여유로워 보인다니.
처음엔 내가 여행자라 마음이 여유로워서 그렇게 보이나 싶었다. 그러다 바리스타들이 바쁜 동선 속에서도 손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찰나의 순간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묻지 않아도 단골손님의 취향에 따라 커피를 내리고 안부를 물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모두가 바쁜 아침 시간대에는 그런 과정이 단 2-3분 만에 끝나기도 했다. 그렇게 에스프레소 바는 서로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찰나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 빠르게 추출한 커피라는 뜻의 에스프레소는 마시는 방법도 찰나였는데, 그 찰나의 순간까지 삶의 여유를 놓치지 않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문화에 이상하게 마음이 따듯해졌다.
외국인인 나에게도 가끔 농담을 건네며, 내 취향에 맞춰 커피를 내려주려고 노력하는 바리스타들의 태도에서 그들이 얼마나 자신의 일과 삶을 사랑하는지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날이 너무 더워서 나는 늘 '에스프레소 꽁 기아초'를 주문했다. 직역하자면 '얼음 넣은 에스프레소'라는 뜻이다. 커피는 따듯하게 먹는 게 국룰인 나라에서 '아아'라니. 나도 처음엔 이 나라 커피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주문을 고민했는데, 살인적인 더위는 아아 수혈을 시급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늘 미소 한 바가지와 함께 '에스프레소 꽁 기아초'를 부탁했다. 그럴 때마다 어떤 바리스타들은 당황하기도 하고, 그건 커피가 아니라고 고개를 젓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내 요청에 맞춰 커피를 만들어주려 노력했다. 그 모습이 참 고맙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아아를 찾는 내가 웃기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에스프레소 바에 들릴 때마다 바에서 대화하는 이탈리아인들의 루틴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 하루하루를 버티기만 했던 과거의 나에게도 매일 이런 찰나의 소통을 통해 잠깐의 여유와 즐거움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버티는 인생이 아니라 좀 더 생기 있는 인생을 살 수 있었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에겐 그 찰나의 숨 돌릴 틈도 없었나 보다. 어디선가 들었던 얘기가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무리 심각한 일이 있어도 '일단 에스프레소 한잔!'을 외친다고. 찰나의 여유일지라도 절대 사수하겠다는 마음 같다. 그렇다면 나도 매일 ‘에스프레소 한잔!’을 외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