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 마주하기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여유

by 미키

집 밖을 나온 지 벌써 반년 가까이 흘렀다. '집 나오면 개고생'이라는 걸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음에도 나는 기어이 집 밖을 나와 긴 여행 중이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나라가 바뀔 때마다 그 나라의 생활방식과 이방인으로서 겪는 불편함을 받아들이기는 여간 쉽지 않다. 특히 문화차이인지 사람차이인지 헷갈릴 정도로 황당한 경험들을 하다 보면 그동안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님을 확 깨닫는 순간들을 자주 경험한다.

그 첫 경험은 예상했던 대로 인종차별의 불편함이었다. 이미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직접 경험했을 때 그 불쾌함과 황당함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밀라노의 한 호텔에 숙박을 하기 위해 체크인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장시간의 비행에 지쳐서 조금 일찍 체크인을 하기 위해 호텔로비에서 다음 체크인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앞에 체크인 중이었던 사람들은 미국인이었는데, 리셉션에서 이탈리아인 직원이 너무 유쾌하게 영어로 소통하며 다양한 설명을 해주고, 장시간 응대하는 것을 보고 당연히 내 차례가 오면 나한테도 친절하게 응대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미국인 고객의 체크인이 끝난 후 다음 차례인 나를 당연히 응대할 줄 알았는데, 10분이 넘도록 아무 응대가 없길래 카운터에 직접 갔다. 그리고 체크인 가능하냐고 영어로 물었다. 그랬더니 아주 싸늘한 표정으로 자기가 다른 업무 중이니 기다리라는 말을 했다. 조금 느낌이 싸하긴 했지만 일단 기다렸는데 30분이 넘도록 응대를 안 했다. 나 이외에 다른 손님은 없었다. 심지어 본인이 바쁘다고 했는데, 버젓이 탕비실 안에 들어가 다른 직원들과 수다를 떠는 것이 아닌가. 나름 이름 있는 호텔 로비에서 그런 식의 대우는 처음 받아봐서 이건 아니다 싶어 다시 가서 체크인을 요청했더니 대뜸 아직 준비된 방이 없어서 이른 체크인이 안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심지어 확인도 안 하고 그렇게 말하는 태도를 보면서 직감적으로 이건 '분명 인종차별이다'라는 느낌이 왔다. 체크인시간까지 1시간 정도 남아있어서 일단 로비로 돌아왔다. 사실 상위 관리자를 불러서 난리를 칠까도 생각했지만 첫 유럽인데, 기분을 더 이상 망치고 싶지 않아 알겠다고 하고 로비에 그냥 앉아있었다. 그렇게 10분 정도 흘렀을까? 리셉션 직원이 교대를 하는 게 보였고, 다른 직원이 왔길래 그 직원한테 가서 다시 한번 이른 체크인이 가능한지 물었다. 그러자 그 직원이 당연하다는 듯이 바로 해주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일단 참고 넘어갔다.

두 번째 경험은 생활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이었다. 한국은 시스템적으로 모든 게 편리하게 세팅되어 있어 기본적인 생활방식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해외에 나오니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이 많았다. 그중 가장 불편했던 건 유럽에서 문을 여는 방식이었다. 유럽 대부분은 아직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열쇠를 이용해 문을 여는 나라들이 많았는데 이게 참 골치가 아팠다. 너무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 보니 문이 잘 안 열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어떤 날에는 문이 아예 이상하게 잠겨버려서 집주인을 불렀는데, 되려 나한테 문을 왜 이상하게 잠갔냐고 하길래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고군분투하다가 겨우 문을 열어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정말 그날은 밤도 늦어서 못 들어가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에 아찔했다.

세 번째 경험은 각 나라의 위생 개념이 다른 데서 오는 불편함이었다. 모로코에서 집을 렌트해서 장기숙박을 했던 어느날 잠을 자고 있는데, 갑자기 '파드닥'소리가 나면서 엄청 큰 생명체가 내 앞으로 날아왔다. 순간 너무 놀라 소리 지르며 일어났는데, 알고 보니 엄청 큰 바퀴벌레였다. 그 크기가 한국에서 보던 바퀴벌레와는 차원이 달라서 너무 충격적이었는데, 다행히 같이 방을 쓰던 룸메가 겨우 잡아줬다. 너무 충격적이라 집주인한테 말을 했더니 집주인이 '크기가 얼만했어?'하고 태연하게 물어봤다. 그래서 엄지손가락 크기였다고 하니까 나한테 대뜸 '그거 밖에서 들어온 거니까 안심해. 종종 들어오거든. 집에 있는 바퀴벌레는 아니니까 괜찮아.'라고 하는 게 아닌가. 아니 그럼 방충망이라도 설치를 하던가. 방역을 좀 하던가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그들에게는 워낙 일상인 것 같아서 그날 이후로 집에 온갖 창문은 다 닫고 사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외에도 불편함들이 꽤 많았는데, 그런 불편함들을 겪을 때마다 솔직히 '왜 굳이 집 떠나서 이 고생인가' 싶은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그런 불편한 경험들을 통해 이전에는 못 견뎌하던 것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폭이 조금은 넓어졌다는 것을. '어떻게 그럴 수 있어!'에서 '그래.그럴 수도 있지'라는 여유로운 사고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그래서 나는 이 여행의 끝에 나에게 얼마나 더 많은 변화들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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