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카페에서 찾은 즐거움
드디어 한국을 떠났다. 잠시 치앙마이를 거쳐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퇴사부터 세계여행준비까지 정신없던 날들의 연속이었다. 이탈리아에 도착해서 한숨 돌리나 했더니 생각지도 못한 인종차별을 겪었다. 그렇게 유럽여행의 시작은 날 선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심리적 위축과 함께 일정에 쫓기다 보면 금세 허기가 밀려왔다. 하지만 내 배꼽시계에 맞춰 밥 먹는 것도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식당들은 점심 장사 후 긴 휴식시간을 갖는다. 근데 나는 꼭 그 휴식시간에 배가 고팠다. 할 수 없이 이곳저곳 배회하다 근처 카페에서 허기를 채웠다.
여행 초반에는 카페에서 늘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간단히 허기만 채우고 잠시 앉아있다 일어나 다음 일정을 소화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더운 날씨 탓인지 엄청나게 갈증이 났다. 잠시 갈증을 해소하려고 카페에 들어갔고, 여느 때처럼 나는 시원한 음료를 주문했다. 그리고 같이 여행 간 친구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즐겨마시는 스프리츠를 주문했다. 사실 나는 한국에서 스프리츠를 마신 적이 있는데,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탈리아 스프리츠는 뭐가 다른지 맛이나 보자는 생각으로 친구의 스프리츠를 한입 마셨다. 그런데 웬걸. 한입 마시는 순간 엄청난 청량감에 그냥 벌컥 들이켜버렸다. 이렇게 청량하다고? 눈이 번쩍 뜨였다. 그리고 바로 스프리츠 추가주문. 그 충격의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한국에서 마신 건 스프리츠가 아니었나. 역시 처음이 중요하다.
강렬한 스프리츠 맛 때문이었을까. 그 이후로 나는 이탈리아의 나른한 오후 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 스프리츠 타임은 곧 여행의 즐거움이 되었다. 그리고 카페에 앉아있는 시간이 늘면서 서서히 이탈리아 사람들의 삶에도 호기심이 생겼다. 이 사람들은 이 시간에 일 안 하나? 도대체 무슨 할 말이 저렇게 많지? 커피 한잔 시켜놓고 3시간이나 수다 떤다고? 지극히 한국인다운 관점의 질문들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러다 문득 한국의 카페에서 나는 뭘 했었지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늘 노트북으로 밀린 일을 하거나, 커피만 수혈하고 급하게 일어났던 기억들뿐이었다. 작정하고 누군가를 만나지 않는 이상 카페는 그냥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공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탈리아 카페에서는 오랫동안 수다 떠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재밌는 건 처음 보는 옆테이블 사람들의 대화에도 서슴없이 끼어드는 오지랖이었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들인가 보다 했는데, 바로 옆 테이블의 대화를 우연히 듣다가 처음 만난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됐다. 뭔가 유쾌하고 익살스러움이 묻어나는 대화들. 그걸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 기분이 전염되는 느낌이랄까. 그 이후 나는 여행 중 무료하거나 지칠 때마다 '스프리츠 타임!'을 외쳤다. 외치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졌다. 마법의 주문처럼. It's spritz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