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어지럽다. 널뛰는 주식 차트, 전쟁 소식, AI의 진화 등, 온갖 자극적인 콘텐츠와 정보의 홍수 속에 모두가 미래를 준비하기보다는 당장 오늘의 중심을 잡아가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나에게 세상이 어지럽다는 건, 비유가 아닌 실제 상황이다.
2019년 어느 아침, 새벽 내내 뒤척이다 겨우 눈을 뜬 시간은 8시였다.
부산콘텐츠마켓 (BCM) 출장에서 돌아와 나의 잘잘못을 복기하고 후속 업무들을 생각하느라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조금만 더 뒹굴대다 출근해야겠다며 기지개를 쭉 켜고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 순간, 갑자기 세상이 빙글거렸다.
정확히는 내가 바라보는 벽이 시계 방향으로 힘차게 회전하고 있었다. 설명할 수 없는 힘이 내 뒤통수를 붙잡고 끝도 없이 아래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손을 뻗어 벽을 만져봤다. 벽은 멀쩡했다. 돌고 있는 건 나뿐이었다. 심지어 몸은 가만히 있는데도 회전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내가 이제껏 타 본 그 어떤 놀이기구보다도 빨랐다.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 재빨리 머리를 원래 자세로 돌려봤다. 언제 그랬냐는 듯 온 세상이 고요해졌다. 온몸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잠깐의 착시였겠지 싶어 다시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려봤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아까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이번엔 얼마나 오래가는지 지켜봤다. 벽은 체감상 30초 정도 돌았던 것 같다. 그 시간을 버티려고 이불을 어찌나 세게 움켜쥐었는지, 이불은 땀에 절었고 마구 구겨져 있었다.
다행히 집에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의 부축을 받아 앉은 나의 상체는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만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평소에 운동 신경이 좋다고 자부하던 내가 균형감을 잃었다는 사실에 공포가 밀려왔다. 이럴 땐 어느 병원에 가야 할지 몰랐다. 내가 우왕좌왕하는 동안, 엄마는 간호학과를 전공한 친구에게 물어 이석증이라는 힌트를 얻었다.
아침 8시 20분, 천천히 걸어 찾아간 동네 이비인후과에서 1번 순서로 진료를 받았다. 원장님은 내 증상을 듣더니 바로 검사실로 옮기자고 했다. 검사실에는 침대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기들이 차갑게 나를 맞이했다. 나는 침대에 앉아 마치 VR 고글처럼 생긴 장비를 썼다. 앞이 깜깜한 상태로 대기한 지 몇 분 후, 원장님이 들어왔다. 원장님은 매일 이 일을 해왔다는 듯, 거침없이 나의 등과 팔을 붙잡았다.
─ 몸에 힘 빼세요. 하나, 둘, 셋.
원장님은 순식간에 내 몸을 눕혔다. 고글 때문에 보이는 건 없었지만, 천장이 내 방 벽처럼 마구 회전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너무 어지러워 눈을 꼭 감고 있는 나에게 원장님은 계속 눈을 뜨고 있으라고 단호하게 명령했다.
검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원장님은 어지럼증이 가라앉는 것 같으면 다시 내 몸과 머리를 여러 방향으로 꺾고 돌리기를 반복했다. 어떨 땐 돌았고, 어떨 땐 아무 증상 없었다. 묘한 수치심이 밀려왔다. 주짓수도 아니고. 본의 아니게 엎치락뒤치락 내쳐지는 내 몸이 마치 행사장에서 춤추는 풍선 인형 같았다. 그렇게 10분쯤 지났다.
─ 오른쪽 후반고리관이었는데, 이석이 잘 들어갔어요. 며칠 정도 지켜봅시다.
후반 고리관이요? 아니, 후 반고리관이요? 이석은 또 뭔가요? 징그러운 거 아니죠?!
이런 상식도 모르냐고 무시당할까 봐 차마 묻진 못했지만, 여전히 충격에 휩싸인 엄마와 나의 표정에 원장님은 우리를 번갈아 보며 덧붙였다.
─ 우리 귀 안에는 ‘이석’이라는 돌들이 존재하는데, 제자리에 있어야 할 돌이 반고리관에 흘러 다니고 있어 전정기관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어지럼증을 느끼게 되는 거예요.
엄마는 옆에서 지켜본 검사 과정에 대해 설명해 줬다. 고글은 내 눈동자 움직임을 확인하는 기계인 것 같고, 특정 자세로 누우면 내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는 것이다. 착시가 아니라 실제로 내 눈이 돌아서 어지러운 거였다.
그날은 연차를 내고 하루 종일 똑바로 누워만 있었다. 잔어지럼증이 남아 있었지만, 처방받은 약이 신경 안정 효과가 있는지, 요동치던 내 심장이 제 속도를 찾아가는 것 같았고 졸음이 쏟아졌다. 다음날까지도 약에 취해 침대 밖을 못 나오던 나는 드디어 3일째 되는 날, 어지러움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 빠른 완치에 안심하며 바로 일상으로 복귀했다.
당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이석증에 대해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1.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면역력 저하나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 의사가 나에게 행했던 치료법은 ‘이석치환술’이라 부른다.
3. 무조건 재발한다.
4. 이석이 작아 현미경으로도 볼까 말까 한 정도이며, 때문에 수술은 불가능하고 치료약도 없다.
이 밖에도 어지럼증이 심해서 구토도 하고 응급실에 실려가기까지 했다는 후기도 많이 보였다. 의사는 왜 나한테 이런 설명들을 안 해준 건지 의문이었다. 워낙 흔해서 기계적으로 응대한 걸까?
내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은 이석증을 들어는 봤어도 정확히 어떤 질병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증상을 자세히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했다. 이석치환술이라는 신기했던 경험담은 그들의 상상력으론 공감하기 역부족이었다. 나는 죽다 살아났는데 겉보기에 멀쩡한 내 모습이 억울했다.
어쨌든 완치는 됐으니 한동안 이석증을 잊고 지냈다. 하지만 약 3개월 후, 이석증은 보란 듯이 재발했다. 한 번 겪어서 그런지, 두 번째는 혼자서 씩씩하게 병원을 찾아갔다. 같은 검사실에서 고글을 쓰고 이리저리 돌다가 멀쩡히 걸어 나왔다. 원장님은 스트레스를 줄이는 게 예방법 중 하나라고 했지만, 현대 직장인에게는 무리한 부탁이라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당시 나는 새로운 회사로 갓 이직해 치열하게 적응하고 있는 중이었다. 직업 특성상 사람들 속에 파묻혀 일하느라 하루도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가진 적이 없었다. 수년간의 고단한 출장에 신체적 피로도 쌓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꾸준히 한 적은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관리하면 되는 거고, 지금부터라도 운동하면 면역력은 좋아질 거라 생각했다. 구토할 정도로 어지러운 것도 아니었으니, 돌이 빠지면 바로 병원으로 가서 도로 넣으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어지러운 세상’에 입장했다.
레벨 1으로 입장한 나는 수년간 이석증과 일상을 양 끝에 두고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했다.
수많은 미팅과 회식에 야근이 잦았고, 평일 저녁엔 영화 시사회나 드라마 제작보고회 일정을 소화했으며, 해외 업무 탓에 시차를 거스르며 밤늦게 혹은 이른 아침부터 화상 미팅에 시달렸다. 주말에는 휴식이라 착각하며 밀린 대본과 기획안들을 읽었고, 매주 방영하는 드라마들을 ‘모니터링’이라는 명분으로 시청하며 뇌를 쉬지 못하게 했다. 카페인은 무조건 하루 두 잔씩 들이켰고, 스트레스가 심한 날에는 담배로 해소했다. 수면의 질은 나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불면증 진단을 받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혹사당하는 내 몸에 탄력을 받았는지 한 번 재발했던 이석증은 길게는 6개월 만에, 짧게는 일주일 만에도 나를 찾아오곤 했다. 하지만 여전히 병원에 잠깐 들러 돌을 넣으면 평화가 찾아왔다.
그렇게 나는 이석증을 감기 정도로 여기며, 몸에서 주기적으로 보내는 적신호를 젊음이라는 패기로 무시했다.
2026년 현재, 나는 여전히 그 세상 속에 갇혀있다. 최초 이석증 발병으로부터 약 8년째다. 정신없이 일하며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던 시간 동안 이 병은 나를 조용하고 빠르게 어지러운 세상 깊은 곳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 깊은 곳에서 마주한 현실은 우울과 피폐 그 자체였고, 그 모습은 오로지 나만 보고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무심함이 나를 데려다 준 곳에는 고통과 외로움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