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에 관하여
얼마 전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에 관한 종래 입장을 변경하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하였다(대법원 2023. 9. 21. 선고 2018도13877 전원합의체 판결).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와 관련하여, 우리 법원은 지난 수십 년간 ‘상대방의 항거를 곤란하게 하는 정도’가 요구된다는 법리를 유지해 왔다. 그런데 최근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상대방 신체에 대하여 불법한 유형력을 행사(폭행)’하거나 ‘일반적으로 보아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킬 수 있는 정도의 해악을 고지(협박)’하는 것으로 기존 법리를 변경하였다.
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중 주목할 만한 점은 강제추행죄의 ‘폭행 또는 협박’의 해석과 관련하여 피해자의 ‘항거곤란’이라는 표현을 배제한 것이다.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에서 피해자의 ‘항거곤란’을 요구하는 종래 법리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현행법의 체계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한 대법원은 ‘항거곤란’이라는 개념 자체가 피해자에게 정조를 수호하는 태도를 요구하는 구시대적 고정관념이 내포되어 있다는 점도 지적하였다. 그리고 대법원은 근래의 재판 실무에서 개별 추행 행위가 넓은 의미의 폭행·협박에 해당하면 사실상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하는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점을 토대로, 종래 법리와 재판 실무 사이의 불일치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하였다.
형법 제298조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추행한 경우에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데, 형법 문언상으로도 폭행·협박의 정도를 ‘항거곤란’의 수준으로 제한하고 있지 않다. 또한 피해자의 ‘항거곤란’을 요구한다면 수사나 재판 실무에서 자칫 피해자에게 이른바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거나 2차 피해자를 야기할 수 있다는 문제점도 제기된다. 아울러 구체적 사안에서 성범죄에 대한 현실적인 처벌의 필요성 등을 감안하여 보더라도, 강제추행죄의 성립에 피해자의 ‘항거곤란’을 요구하는 종래 법리는 그 의미가 상당 부분 퇴색되었다고 생각된다.
한편, 전원합의체 별개의견에서는 강제추행에서 피해자의 '항거곤란'을 요구하는 종래의 판례 법리가 형사법 문언 및 체계에 부합하며, '종합판단기준설'에 따라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할 수 있고, 판례 변경을 정당화할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특히 별개의견은 성범죄 피해자 보호에 있어서는 무리한 법률해석보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후 국회의 입법절차를 통하여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시하였다.
2.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나타난 대법관들의 견해 차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다수보충의견에서 나타난 대법관들의 견해 차이였다. 먼저, 다수보충의견1(5인의 대법관)에서는 강제추행죄의 성립과 관련하여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정도'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한, 형사처벌의 과잉 또는 왜곡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기습추행형 강제추행을 별도로 설정할 필요 없이 강제추행죄를 일원화하자는 견해를 제시한다. 다수보충의견1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신체 접촉만으로 강제추행죄가 인정된다면, 강제추행죄의 처벌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위험성이 있고, 자칫 행위자에게 책임의 정도를 넘어서는 형사책임을 지울 우려를 고려한 입장으로 생각된다.
두 번째, 다수보충의견2(3인의 대법관)에서는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 접촉이 발생한 이상 그로써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된 것이며, 그 이상으로 본질적인 침해인지 비본질적인 침해인지 구분할 여지가 없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한 기습추행 법리에 관하여는, 대법원이 1983년 처음 설시한 이래 40여 년 동안 반복적으로 설시한 확고한 법리라는 점을 근거로, 사안 자체를 벗어나 가상적인 기습추행 사안을 상정하면서 새로운 법리를 선언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시하였다. 다수보충의견2는 사회적 인식변화에 맞춰 강제추행의 요건도 비교적 폭넓게 해석함으로써, 성범죄를 엄단하고 피해자를 널리 보호하는 입장으로 볼 수 있다.
세 번째, 다수보충의견3(1인의 대법관)에서는 성적 자기결정권의 본질적 기준이 피해자의 '저항'을 요구하던 데에서 피해자의 '동의 부재(결여)'로 보아야 함을 근거로, 피해자의 '항거곤란'을 요구하는 종래 법리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강제추행죄의 해석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은 법원의 권한이자 의무라는 점을 언급하며, 별개의견 중에서 종래 법리에 의해서도 구체적 타당성을 도모할 수 있다는 이른바 '종합판단기준설'을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다수의견에 따른 법리 변경은 자칫 법관의 법형성으로 비칠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하여 다수보충의견3은 성적 자기결정권의 본질적 관점에서 법원이 강제추행죄의 해석 기준을 명확히 할 책무가 있음을 분명히 한 입장으로 생각된다.
3. 강제추행을 포함한 성범죄 전반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
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형사법의 기본원칙을 토대로 그동안의 재판 실무와 사회적 담론을 고려하여, 입법부나 사법부가 참고할 만한 나름대로의 규준을 제시하였다고 생각된다. 그동안 강제추행과 관련된 법규나 판례가 지나치게 단순하여, 그 성립요건과 처벌범위가 다소 불명확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와 관련하여 다수보충의견1에서는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정도'인지 여부를 강제추행죄의 판단기준으로 제시하고, 나아가 기습추행형 강제추행 법리의 재검토 요구와 「성폭력처벌법」 및 「청소년성보호법」에 관한 입법적 보완을 촉구한 부분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다수보충의견1의 판시내용과 같이, 특별법상 강제추행죄의 법정형이 강간죄와 비슷한 정도로 상향되었고, 성범죄에 대하여는 신상정보등록·공개·고지명령, 수강명령, 취업제한명령, 전자장치 부착명령 등 각종 부가형이 의무화되었다. 또한 강제추행을 포함한 성범죄로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으면 「국가공무원법」, 「교육공무원법」 등 관령법령에 따라 사회생활상의 지위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이처럼 2013년 6월 성범죄 친고죄 규정이 폐지된 이후,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성범죄자에게 형사처벌과 부가형, 사회생활상의 막대한 불이익을 부과하는 방향으로 법제가 강화되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가벼운 신체접촉이나 성적 언동에 대하여도 형사절차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건들이 증가하고 있다. 성범죄 사건에서는 주로 ‘피해자(고소인)의 진술’을 중심으로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지는데, 상대방 측에서는 피해자(고소인)의 진술을 뒤집을 만한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피해자(고소인)의 진술의 신빙성을 다투는 것이 쉽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일상생활에서 상대방의 손을 잡는 행위만으로도 강제추행죄가 성립할 수 있고 형사처벌과 부가형 등 신분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제추행이나 기습추행죄의 경우 '형법의 최후수단성'이나 '책임주의 원칙'에 반한다는 비판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대법관들 사이에도 강제추행의 해석기준에 있어 상당한 견해 차이가 있는데, 우리 사회구성원 모두가 납득할 만한 일반적인 처벌규준을 제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난 10년 동안에는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거나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사건과 관련된 범죄의 법정형을 일률적으로 높이고 강력한 제재수단을 부과하는 방안에 주안점을 둔 측면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행위들을 간과한 나머지 법리와 실무의 괴리현상이 나타나거나, 구체적 사안에서 개별 행위에 비해 지나치게 가혹한 결과가 초래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강제추행과 관련된 성범죄를 엄격하게 처벌함으로써 성범죄를 근절하고자 하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수사나 재판실무의 관점에서 누구든지 형사상 억울하게 고소를 당할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고려하여 성범죄 전반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하여 일반인들도 어떠한 행위가 강제추행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명확하게 판단하고 예측할 수 있는 해석기준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성범죄 관련법제를 정비함에 있어서도 형법이 기반가치를 기반으로 보다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정리하여, 일반 국민의 눈높이와 법원의 판단기준 사이의 인식 차이를 줄여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