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노트
'하나님은 수많은 나날과 긴 여정동안 견디기 힘든 추위와 억수같은 비를 만나도록 하면서 그들의 인내심과 충성심을 시험하신 이후에야 그들의 믿음과 체념을 보상해 주신다'
믿음으로 연결되는 이 문구에서 많은 위로를 받게 된다.
가방에서 아침에 챙겨 온 노트를 꺼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내용을 요약해서 기록 해놓은 메모 노트다. 노트에는 읽은 많은 책들의 내용이 거의 다 기록되어 있다.
노트를 펼치니 튜튼 기사단 이야기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십자군 전쟁당시 활약한 독일 기사단이다. 성전회복을 위해 싸우는 기독교 기사들의 간호 등 의료사역에 주로 나섰다.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느낌이 약간 이상했다. 요즘 자주 보아왔던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좀더 노트를 넘기며 내용을 읽어 나갔다. 잠시 후 교인들 몇이 들어오면 성경공부를 진행해야 하기에 이들이 집중할 수있도록 장치 마련이 중요했다. 그래서 매 공부 때마다 성경배경지식을 나누며 그들의 관심과 이해도를 최대한 끌어 올리곤 했다. 오늘은 어떤 내용으로 이들에게 공부의 재미를 선사할까. 모두 공부가 지루한 나이대가 되었으므로 이렇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저 시간 때우기식으로 넘기고 말 것이다.
내용 중에 오늘 적용할 대상 하나를 찾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도록 마음에 담아 두었다. 그런데 노트를 덮으면서도 느낌이 남달랐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주어진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집중적으로 나누다 보니 예정된 한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마치고 가방을 싸는데 가방안을 보니 메모 노트가 두 권이었다. 오 주여. 이게 무슨 일이람. 아침에 나올때 분명 한 권이었다. 애초부터 한 권밖에 남아있지 않았기에. 그런데 갑자기 두 권이 이라니. 눈을 의심할 지경었다.
이 둘은 똑같은 모양으로 된 노트들이었다. 그리고 똑같이 여러 책들의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 중 한 권을 잃어 버렸던 것이었다. 거의 일년도 더 지났지만 여태껏 찾지 못하고 있었다. 잃은 노트를 생각하며 그동안 얼마나 애를 많이 태웠는지. 찾을 만한 곳을 다 뒤졌어도 찾지 못했다. 끝내 서울과 시골 집을 오가면서 이용했던 열차 안에 두고 내린게 분명하다고 여기기에 이르렀다. 찾기를 포기하는 수순에 다다를 정도였다.
평상시 이 노트들을 다른 것과 섞이지 않도록 하나의 서랍만 이용하며 매우 조심하며 관리 해오던 차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다른 한 권이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더이상 있을 만한 곳이 없었다. 어디로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던 것일까.
그런데 어떻게 오늘 이 순간 늘 쓰고있는 가방 안에서 이렇게 불쑥 나타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현실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꿈인가 싶었다.
겨우 돌이 지나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하는 딸에게 주고싶어 어느 날 퇴근 길에 작은 거실용 자전거를 하나 사왔다. 아빠오는 소리에 막 잠을 깬 딸이 나와서 그 자전거를 발견했다. 그런데 왠일인지 방으로 다시 들어가더란 말이지. 그 순간 장난기가 발동한 아빠가 사 온 자전거를 안보이게 숨겼다. 다시 나온 딸이 배꼼히 내다 보았지만 금방 있던 자전거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자 다짜고짜 울음을 터트렸다.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딸은. 아빠는 다시 자전거를 '여깃지롱'하고 마술 부리듯 꺼내서 딸에게로 가져다 주었다. 딸이 눈물을 그치고 뛸듯이 기뻐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오늘 나에게 그러한 일이 벌어졌다. 하나님이 윙크 하셨음이 분명하다고 여겼다. 내게는 의외였으며 믿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기적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마음이 감동으로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주일 교회 섬김을 마치고 아내와 다시 만났다. 나는 오늘 일어난 이 특별한 일을 떠올리며 '이상하다 이상하다'를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아무래도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방이 혼자 뒤집어진 채 내용물이 쏟아진 적이 있었고 그 사실을 나도 모르고 주위에 아무도 없었던 일이 언제라도 일어났단 말인가.
아내한테 잃었던 노트를 다시 찾은 사실을 말해 주었다.
아내는 주일에 교회 로비에서 영접부로 섬기고 있다. 예배후 섬기는 장소가 달라 다른 장소로 교회봉사를 가기 전에 아내한테 들러 가방을 잠시 맡겼었다. 아내는 그 가방을 받아들고는 놓아 둘 공간을 찾느라 두리번 두리번 거렸다. 그리고 한 장소를 찾았다. 그런데 그 자리에 웬 노트가 하나 놓여 있었다. 노트를 집어 드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 살짝 펼쳐 보았다. 그런데 그 안에 눈에 익은 남편의 글씨가 빼곡히 들어 차 있었다. '남편의 노트가 왜 여기있지' 하면서 노트를 가방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가방을 아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내가 찾아갔던 것이었다.
그런데 왜 노트가 영접부 그 자리에 놓여있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 장소는 아내가 영접부로 섬기면서 수없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였다. 누가 주워서 거기다 올려 놓았던 것일까. 이왕이면 진작에 영접부 안내 데스크에 맡겨 놓았더라면 더 쉽게 찾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토록 오매불망 찾고 다녔던 노트를 다시 찾았으니 그 이전의 일들이야 따져 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노트를 찾게 해주신 하나님께 오직 감사 드렸다.
2026년 4월 5일 부활주일에 잃어버린 귀중한 노트 하나를 집에서도 아닌 섬기는 교회에서 찾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혹시나 싶어 노트에 이름과 연락처부터 재빨리 기록해 두었다. 다시는 길을 잃고 헤매이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