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고, 돌아다니는 진솔한 이야기
<원동력>
어린 시절, 나는 독서를 싫어했다. 책보단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와 야구하는 것을 좋아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축구와 야구를 즐기다가 저녁 시간 때를 놓쳐 부모님에게 혼난 적도 많다.
축구와 야구를 좋아했던 소년이 어른이 되었다고 그 일을 싫어하겠는가? 아르바이트하면서 모은 작은 돈, 한푼 두푼 모아 ‘여행’으로 행복의 영역을 넓혔다. 운전 면허증이 없었기 때문에 기차를 탔고, 땡볓 더위에도 걷는 게 좋아서 하루에 20km 가까이 걸었다. 관광지보단 지역 주민들만 알고 있는 지역을 찾으려고 물어물어 길을 떠났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기 위해 떠난 여행, 당연히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항상 야구장 혹은 축구장이었다.
축구와 야구를 빼곤 나의 인생을 논하기 힘들다. 초등학교 때부터 기억을 되돌아봐도 축구, 야구뿐이었다. 황사가 와도, 비와 눈이 세상을 덮쳐도 나는 사계절 내내 운동장으로 나갔다.
초등학교 3학년 추운 겨울, 운동장에서 축구 하고 있을 때 6학년 형들이 나에게 다가온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같이 할 수 있겠다는 설렘이 담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나에게 돌아온 것은 ‘나가’ 눈보다 차가운 두 글자였다. 힘없는 꼬마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다른 공간을 찾아 떠났지만 우리처럼 헤매고 있는 또 다른 꼬마 무리가 있었다. 많이 슬퍼하고 억울했다. 좋아하는 일을 못 하게 되었으니... 다음날 운동장을 다시 찾았고 운 좋게 이번에는 형들을 마주치지 않아서 친구들과 함께 축구와 야구를 즐겼다.
20년이 흘러 다시 찾은 운동장은 조용했다. 공 튀는 소리, 알루미늄 배트에 공이 맞는 소리, 시끄러운 꼬마들의 소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언제든 들어갈 수 있었던 학교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젠 학교 안으로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더 이상 추억이 담긴 모습은 볼 수도 소리는 들을 수 없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 TV를 켰다. 주말에는 비교적 이른 시간 야구를 시작한다. 점심 먹고 무료한 시간에 시작해서 저녁 먹기 직전까지 얼마나 완벽한 타이밍인가. 야구에는 간식이 필요하다. 물론 ‘야구’ 자체만으로도 훌륭하지만 간식이 추가되면 훌륭함을 뛰어넘어 완벽함에 가까워진다. 야구는 애석하게도 승과 패가 정해져 있다. (무승부가 나올 확률은 승,패보다 현저히 적다) 그래서 응원하는 팀이 이기지 못하거나, 경기력이 꽝이라면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다. 144경기, 봄에 시작해 무더운 여름을 지나 초가을까지 이어지는 야구는 매일 우리에게 새로운 감정을 선사한다. 잘하면 기분이 좋다. 하지만 항상 잘할 수 없기에 패하면 패하는 대로 흘러가는 물처럼 결과를 수긍하면 된다. 애석하게도 처음에는 수긍의 과정이 쉽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팀을 향한 열정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야구가 끝나고 저녁을 준비하다 보면 경기의 여운이 은은하게 남는다. 핸드폰을 켜고 비어있는 일정, 야구장을 갈 수 있는 일정을 찾는다. 그리고 그날이 올 때까지 주어진 나의 삶을 성실하게 살면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에게 문자를 남긴다. ‘여행 갈래?, 다음 주에 경기 있다는데 표는 내가 구할게!’ 이렇게 또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