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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필우입니다 Jan 25. 2024

냉전과 휴전 사이 ①

아내가 통장에 돈을 보냈다

      




냄비를 까맣게 태웠다. 손잡이와 냄비가 한 몸으로 된, 바닥이 두꺼운 스테인리스 주물 냄비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다. 그러나 반성의 기미는 보여야 한다. 그렇다고 기죽어 지낼 일도 아니다. 뱃살공주 또한 허다하게 하는 실수가 아닌가 말이다.      


물론 실수는 내 탓이다. 어느 정도는 네 탓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내 탓이다. 내 마음의 가난 탓이요, 가정사에 대해 더 공부하지 못한 탓이며, 기억력이 일천한 탓이자, 더 멀게는 어머니에게 배우지 못한 탓이며(엄마 죄송합니다), 어쩌면 조상 무덤을 잘못 쓴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직해지자. 정직한 사람은 신이 만든 것 중 최상의 작품이라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스스로 작품이 되자. 그러나 아무리 정직하려 해도 긴장은 얼굴색을 변하게 한다. 내심 모르고 지나가길 간절하게 바랐다. 그러나 냄비는 감출 수 있어도 향기는 짧은 노력으로 불가능하다. 콧구멍 평수가 넓어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대번에 알아챈다.      


그렇다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상대로 하여금 동정심을 유발하는 것뿐이다. 현대인은 타인의 동정에 매달려야 살 수 있음을 나는 확신한다. 동정 없는 세상은 팍팍하고 삭막하다. 따라서 원한을 초월하여 살 수 없지만, 은혜를 초월할 수 있다. 해서 나는 동정으로 시작해 은혜로 결론 나길 바랐다. 결국 기대하던 말이 들렸다.     


“이 뭔 냄새고?”


냄새에 둔감한 뱃살공주가 알아챘다는 것은 일반인에겐 심각한 수준이다. 나는 등진 채 싱크대 속에 검게 탄 냄비를 박박 문지르고 있었다. 어느 틈에 옆에선 그녀, 얼굴은 안 봐도 비디오다. 몸을 부들부들 떨지만 않으면 다행이다. 말소리가 들린다. 내 가슴은 새가슴인 양 쪼그라드는 것을 느낀다. 얼굴이 붉어진다. 뒷말에 나는 주부 9단은커녕 바보가 된 심정이었다.


“끓는 물에 과탄산소다 넣고 기다리면 되는 것을 냄비 다 버리고 있네.”


그리고 말을 끊는다. 속에 치밀어 오르는 부화를 참아내는 중이란 뜻이다. 하긴 철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댔으니 냄비 바닥에는 상처만 남고 검은색이 문신처럼 남아 있다. 그놈 악마구리처럼 변형된 문신이 내 가슴에 파편처럼 들어와 박힌다. 오그라든 가슴을 안은 채 고무장갑을 벗고 이선으로 물러나 이제부터 방관자가 된다. 돌이킬 수 없는 죄인이 되어......,      


아뿔싸! 냄비와 씨름하느라 저녁 준비를 못했다. 하지만 내겐 꾸미, 즉 고명이라는 히든카드가 있다. 가장 손쉽고 빠르게 할 수 있는 요리, 바로 떡국이다. 소고기 꾸미와 달걀지단 흰자 노른자 구분해 붙여 상시 냉장고에 보관 중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다시마, 다시멸치, 무, 양파와 사과를 넣고 육수를 만들어 놓은 주부 9단의 지혜가 부지런함을 동반하면서 항시 굶주림에 응전할 태세가 되어 있다. 맛있는 요리를 위해 마음속 ‘너는 너밖에 모르고, 나는 나밖에 모르고’로 시작하는 가수 문희옥의 ‘평행선’ 리듬을 타며 몸을 재빠르게 움직였다. 냄비를 태운데 대한 벌, 맛있는 떡국을 끓여 대령함으로써 사면을 기대했다.





넓은 냄비에 육수를 붓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켰다. 파란 불꽃이 요정인 양 아름답게만 보인다. 살짝 열린 베란다 문 사이로 들어온 바람에 몸을 맡긴 불꽃이 가늘게 춤을 춘다. 따라서 내 마음도 춤춘다. 그때다. 배고픔을 참지 못한 뱃살공주께서 쵸코파이 두 개를 가져와 식탁에 앉는다. 떡국이 다 될 때까지 허기를 견디지 못한 동물적 본능이다.


봉지를 뜯는다. 바지작! 하는 순간 뭔가 바닥에 떼구루루 굴러 냥이 화장실 앞에서 몸을 넓게 해 멈춘다. 초코파이가 봉지에서 찢겨 나오며 튀어 올라 바닥에 떨어져 구른 것이다. 이때 아들놈이 방에서 나오다 이 장면을 보았다. 그냥 넘어갈 것이지 수다스러운 놈이 거든다.  

   


“엄마는 초코파이에 고양이 털 묻혀서 먹나?”




만두가 든 국자 떨어트릴 뻔했다. 이럴 땐 절대로 웃으면 안 된다. 아랫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돌려 백옥 같은 뱃살공주 얼굴을 보았다. 입술이 실룩댄다. 진정으로 죽을 만큼 사랑스럽다. ‘에이 씨’ 하는 묵음이 들렸다. 과연 저것을 어떻게 할까 몹시 궁금했다. 알뜰살뜰 살림살이 뱃살공주는 절대로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초코파이를 물에 씻는 다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다.


그랬다. 안경을 코 아래로 내리고 고개를 숙인 채 초코파이에 묻은 먼지와 고양이털인지는 모르겠지만, 손으로 털어낸다. 그리고 요리조리 살피더니 상대적으로 먼지가 묻지 않은 면을 공략해 먹기 시작하더니 결국 다 먹어 치운다. 그럴 거면 순서는 왜 정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불가능한 우리 뱃살공주다.      


싱크대 물에 손을 대충 씻는다. 그리고 그릇에 떡국을 담는데 옆에서 식기 건조대에 엎어놓은 그릇에 물기를 뺀다고 설친다. 그리고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기 시작한다. 뜨거운 음식을 만질 때는 공간 확보가 우선이다. 그런데 도와준답시고 옆에서 거치적거린다는 것은 생각이 없던지, 우선순위 프로그램이 오류를 일으켜서일 것이다.      


남편이 찌개나 밥을 푸면 수저를 놓던가, 김치를 꺼내든지, 밑반찬을 챙기든지, 냄비 받침을 놓든지 하는 것이 정상인 생각이자 행동양식이다. 그런데 커피포트에 물을 끓인다? 아마 태워버린 냄비에 붓기 위한 듯했다. 역시 그랬다. 그런데 문제는 끓는 물이 남았다. 잠시 고민하더니 식기 건조대 아래 스테인리스로 된 받침에 물때를 씻는다며 남은 물을 붓는다. 그런데 받침 아래 조리용 숟가락이 놓여 있다. 그것을 꺼내기 위해 한 손으로 받침을 기울인다. 그러자 뜨거운 물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나는 본능적으로 두 다리로 튀어 올라 뒤로 피했다. 조금만 방심했어도 다리에 화상을 입을 뻔하였다. 급하게 걸레를 가져와 물을 훔치고 닦아 냈다.      


어이없다. 그녀를 바라보았다. 당당한 기색에 표정에 변화라곤 감지되지 않았다. 고의성을 따졌다.(물론 속으로…….) 단언컨대 고의는 아니다. 그냥 평소처럼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고, 앞뒤 가릴 타고난 성정이 아니기 때문에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아무리 남편이 밉다 해도 끓는 물을 쏟을 사람은 아니다.      

침묵은 요설보다 즐겁다. 나는 침묵 속 떡국을 한 그릇 비웠다. 멸시와 비난서린 눈초리를 차례로 받으면서 떡국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내가 떡국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나이를 더 많이 먹었나보다. 어쩜 꿈이 많아서 더 일찍 늙어버린 것은 아닐까. 늙은 내가 참는다. 충분히 인내할 가치가 있음을 감지하면서…….     


저녁을 먹은 뒤 소파에 앉아 딸아이에게 전화했다. 뱃살공주가 식탁에 앉아 후식으로 쵸코파이 대신 카스타드를 선택해 두 봉지째를 뜯고 있을 때다. 딸에게 아빠가 피곤하니 이번 금요일에 바쁘지 않으면 운전기사 노릇 좀 하라고 부탁하였다. 물론 일당은 넉넉하게 쳐준다는 말로 물러서지 못하게끔 밑밥을 깔았다. 뒤이어 투척, 그 도시에 사는 이모 두 명과 약속했다. 그날 수필심사가 끝나면 함께 맛있는 것 먹자며(이 대목에서는 더 큰소리로 천천히 말해야 한다) 달래듯 말했다. 아주 짧은 갈등, 알았다며 몇 시에 출발할 것이며, 어디서 만날 것까지 약속을 잡았다.

     

전화를 끊고 곁눈질로 뱃살공주 표정을 살폈다.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 자기 동생들 만나 맛있는 것 먹는다는 말에도 무덤덤한 것이 표정에 변화가 없다. 평소 같으면 이벤트 기획을 위해 치기가 번뜩였을 법한데 말이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서두를 일이 아니다. 아직 사나흘이 남았기 때문이다.      



*

그렇게 긴장과 어이없는 하루가 지나고 어김없이 뱃살공주가 아침에 집을 나갔다. 

그리고 해가 떨어지고 저녁이 찾아왔다. 낮에 막걸리 집에 들려 놋그릇 대폿잔에 막걸리 딱 석 잔을 마신 후 집으로 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두절 콩나물을 샀다. 몸통 실한 콩나물 씻어서 삶아 채반에 받쳐 놓았다. 콩나물 삶은 물로 밥솥에 밥을 안쳤다. 나물 향이 밥에 잘 베어들게 하기 위함이다. 호두 조림 잘게 부수고, 잔멸치 조림 가위로 난도질했다, 시각적으로 식욕을 자극하기 위해 당근은 채 썰어 볶고, 대파 잘게 송송 썰어 준비했다. 밥이 다 되자 큰 프라이팬에 참기름을 두르고 준비해 둔 콩나물을 넣고 물러지지 않게 열기를 가해 몸에 기름을 입혔다. 고슬고슬한 밥을 주걱으로 퍼서 넣고 준비한 당근, 호두, 멸치와 함께 골고루 익히도록 잘 비벼주었다. 끝으로 파를 뿌려 한소끔 더 비볐다.


파 향. 진한 참기름이 섞인 콩나물밥 향기가 거실 가득 퍼졌다. 나도 모르게 입속에 침이 고였다. 빨리 먹고 싶은 욕심에 마음이 급해졌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콩나물밥을 그릇에 담았다.    

  

때마침 집으로 돌아온 뱃살공주가 손발을 씻고 거실로 나왔다. 이때 누구라도 눈앞에 펼쳐진 그림을 보면 그다음은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구태여 생각하지 않아도 답은 정해져 있다. 그런데 어쩜 그 소프트웨어는 업그레이드가 안 되는지 어제와 다름없다.      





잔소리로 생각하고 상식적으로 한 번 더 생각해 보자. 식탁에 마른 김이나, 김장 김치를 준비하거나, 참기를 병이나, 비빔장, 고추장을 종지에 담아내면 얼마나 기특할까. 그런데 무슨 생각에선지 어제처럼 커피포트에 물을 끓인다. 나는 아연 긴장할 수밖에 없다. 뒤이어 베란다로 나가더니 냄비를 들고 와 싱크대에 넣고 뚜껑을 열었다. 순간 음식이 발효되어 가는 역한 냄새가 콩나물밥 향과 뒤섞여 묘한 기운을 토한다. 뒤이어 커피포트에 물이 끓자 펄펄 끓는 물을 냄비에 붓는다. 뜨거운 김과 함께 피어나는, 발효되다 못해 거품과 흰 막이 장악한 상한 김치찌개가 내는 냄새는 가히 압권이다. 유기물이 썩어서 생기는 예술적 공감각의 해감 냄새였다.


그러나 대충 냄새만 풍기게 반쯤 붓고 만족했다는 듯 만다. 그리고 국자로 바닥을 달달 긁자 더 진한 향이 거실과 식탁까지 점령하였다. 냄새가 색으로 표현되어 가라앉는 환상을 느꼈다. 아들과 나는 숨을 멈추고 식탁에 음식을 보자기로 덮어야 했다. 아들도 그런 엄마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문제는 이러한 행동이 전혀 의도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잊어버리기 전에 빨리 저 냄비를 처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녀로 하여금 행동양식 프로그램이 오작동을 일으켰다. 빨래하다가 설거지하고, 중간에 멈춘 후 바닥청소하다가 또다시 멈추고 화장실청소하다가, 재차 나와서 화분 분갈이하던 중, 깍지 벌레 잡는다고 집중한다. 온 집안이 난장판은 순식간이다. 하나씩 차례로 끝을 낸다는 것, 그녀 사전에는 있을 수 없다. 잊기 전에 시작을 해 놓아야 어떻게든 끝을 낸다는 깊은 생각일 수 있지만, 뒤를 따라다니며 마무리 해야 하는 나는 정말 정신 없다. 


각설하고, 상황을 파악하였다면 최소한 냄비 뚜껑이라도 덮을 일이다. 그냥 손만 헹구고 식탁에 앉는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뚜껑을 덮었다. 그런데 냄비 속 영상이 잔상이 되어 김치를 꺼내는 동안, 고추장을 들어내는 동안, 김을 챙기는 중에도 역한 냄새와 함께 따라다녔다. 결국 몇 술 뜨다가 숟가락을 놓아야 했다. 행복의 지저깨비마저 소멸시켜 버릴 것 같은 그녀 표정에는 변화라곤 없다. 나는 메밀눈을 뜬 채 아랑곳없이 먹는 것에 열중하는 뱃살공주 옥 같은 피부를 한 얼굴 아래위를 훑고는 비극의 향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숨과 웃음이 뒤섞인 표정으로 화장실에 들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내 잘못도 있다. 베란다 냄비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도무지 관심이 없었던 탓이다. 아마도 지난 일요일 자전거로 신천을 달리던 그날, 집에 남은 뱃살공주와 아들이 점심으로 먹고 남은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남은 것 아깝다고 곧바로 버리지 않고 내일 먹겠다고 두었던 것을 잊고 있었을 법하다.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수거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의심 하지 않은 내 잘못을 인정한다. 하지만, 하필 그때 그렇게 역겨운 냄새를 풍기면서까지 처리했어야 하는가 말이다. 순간 내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뱃살공주는 장인을 닮아 냄새를 맡는 기관이 평균 수준보다 퇴화되어 있다는 것을……. 오호, 애재라! 그건 그렇다 치고, 시각적 역겨움은 어찌 견디는지 정신적 육체적 피지컬이 장난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포커페이스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다. 무표정이 아니라 감정이 표백된 상태라니? 무섭다! 감정이 흘러넘치는 나를 대입하기 위해서는 영혼을 걸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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